한국 수영은 과거 특출난 에이스 한 명에 의존했다. 2023년까지 한국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따낸 금메달은 '마린 보이' 박태환이 자유형 400m(2007년 멜버른·2011년 상하이 대회)에서 수확한 2개가 전부였다.
그 후 13년이 흐른 지난해, 새로운 장이 열렸다. '박태환 키즈' 김우민과 황선우가 2024 세계선수권 자유형 400m와 200m에서 차례로 우승했다. 사상 최초로 단일 대회에서 금메달 2개가 나왔고, 금메달리스트도 2명이었다. 이들은 이호준, 양재훈과 함께 단체전인 계영 800m에서 역사적인 은메달도 합작했다.
김영범. 연합뉴스
박태환 원톱 시대를 잇는 김우민-황선우 쌍두마차 시대. 이제 한국 수영은 그다음 바통을 넘겨받을 미래의 '황금 세대'를 기다리고 있다. 남자 접영 100m의 김영범(19·강원도청)과 여자 배영 100m의 김승원(15·구성중)이 일 순위 후보다.
김영범은 지난 23일 열린 2025 경영 국가대표 선발전 남자 자유형 100m 결선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47초98에 가장 먼저 터치패드를 찍어 이 종목 터줏대감 황선우를 제쳤다. 황선우가 주 종목인 200m에 집중하느라 평소보다 부진한 기록(48초41)을 내긴 했지만, 국제수영연맹 기준기록(48초34)까지 통과한 건 놀라운 성과다.
주 종목인 접영 100m에서도 목표를 이뤘다. 결선 기록은 51초83이었지만, 예선 기록 51초77이 국제연맹 기준기록과 일치했다. 그는 오는 7월 싱가포르 세계선수권에서 두 개의 개인 종목에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김영범은 강원체고 3학년이던 지난해 10월 쇼트코스(25m) 월드컵 남자 자유형 100m에서 깜짝 우승해 주목받았다. 키(1m95㎝)도 큰데, 윙스팬(양 팔을 끝까지 벌린 거리)이 2m16㎝나 된다. 처음엔 배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긴 팔의 장점을 살리려고 접영 단거리로 주 종목을 바꿨다. 그 후 접영 100m 한국 기록을 두 번이나 다시 썼다. 이제는 "둘 중 어떤 게 주 종목인지 헷갈린다"며 웃을 만큼 자유형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훌륭한 교과서도 바로 옆에 있다. 중학생 때부터 롤 모델로 삼은 황선우와 같은 팀에 몸담고 있다. 황선우는 "평소 영범이와 훈련하면서 대화를 많이 한다. 한국 남자 수영 단거리 종목에서 시너지가 생길 수 있는 발판이 될 것 같다"며 "나와 우민이형 뿐 아니라 다른 젊은 선수가 성장해 더 좋은 기록을 내면, 우리도 뿌듯하다"고 박수를 보냈다.
김승원. 연합뉴스
김승원은 아직 '월드 클래스' 선수를 배출하지 못한 한국 여자 수영의 희망이다. 중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 여자 배영 50m에서 28초00를 기록해 한국신기록을 8년 만에 바꿨다. 두 달 뒤 전국소년체육대회(27초84)에서 이 기록을 0.16초 단축했고, 올해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27초71로 0.13초를 더 당겼다.
올림픽 종목인 배영 100m에서도 김승원은 벌써 국내 최강이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1분00초28의 기록으로 1위를 차지해 세계선수권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국제연맹 기준기록(1분00초46)을 가뿐하게 넘어섰다.
초등학교 전교 회장 출신인 김승원은 포부가 크다. 올림픽 '출전'이 아닌 '금메달'을 목표로 물살을 가른다. 그는 "2028년 LA 올림픽처럼 큰 무대에서 세계 신기록을 한번 작성해보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