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생태계에 악영향” vs “국민 편익 위한 것”
그래픽=양인성
국세청이 지난달 31일 새롭게 내놓은 종합소득세 환급 서비스 ‘원클릭’은 출시 1주일 만에 이용자 40만명이 몰렸다. 국세청 홈페이지(홈택스)를 통해 신청하면, 공제 항목을 재점검해 필요 이상으로 많이 낸 세금이 있으면 돌려받는 서비스다. 일주일간 환급액만 327억원에 달했다. 세금 납부자에겐 반가운 소식이지만,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 온 ‘삼쩜삼’이나 ‘토스인컴’ 같은 스타트업은 위기에 내몰리게 됐다. 복잡한 ‘연말 정산’ 때문에 고민하는 납세자의 고민을 기술로 간편하게 해결하는 것을 사업 아이템으로 잡아 창업한 기업들이다. 환급금의 10~20%를 수수료로 받으며 ‘세금 환급’이라는 시장을 개척했다. 하지만 그간 협력 기관으로 여겨온 국세청이 수수료 무료 정책을 내세운 강력한 경쟁자로 돌변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세청이 과도한 세금 징수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해 민간 기업의 창업 아이템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고 했다.
공공기관이 스타트업 서비스를 그대로 따라 하며 경쟁자로 돌변하면서 민간 시장을 고사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공공 기관이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기존에 없던 창업 아이템으로 개척한 시장을 공공기관이 정당한 대가도 없이 그대로 따라 하면서, 창업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미국 등에선 민간의 창업 아이템을 정부가 가져다 쓰는 경우는 찾기 어렵고, 필요하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다”고 말했다.
그래픽=양인성
◇민간 흑자 내자 경쟁자로 돌변한 국세청
국세청이 세금 환급 서비스를 낸 배경에는 최근 커진 민간 플랫폼 인기가 있다. 삼쩜삼과 토스인컴 같은 세금 환급 서비스를 핵심 사업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은 계속 적자를 보다가 작년 처음 흑자 전환을 했다. 누적 가입자 2300만명에 달하는 삼쩜삼을 운영하는 자비스앤빌런즈는 재작년만 해도 111억원의 영업 손실을 봤지만 작년엔 102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용자 800만명의 토스인컴도 작년 처음으로 96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두 서비스의 누적 환급 신고액을 합치면 약 2조원에 달한다. 토스인컴 관계자는 “기업이나 부유층과 달리 세무사를 이용할 수 없는 직장인과 자영업자를 겨냥해 새 시장을 개척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민간 세금 환급 서비스 인기는 국세청에 부담이 됐다. 환급금이 많다는 것은 세무 행정이 올바르지 않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국세청의 세금 환급 서비스는 현행법 위반 가능성도 있다. 공공데이터법 15조는 ‘공공기관의 장은 공공 데이터를 활용하여 개인·기업 또는 단체 등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중복되거나 유사한 서비스를 개발·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 민간 위원인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법 위반이 명백해 보이고, 안 그래도 글로벌 경쟁력이 약한 국내 소프트웨어 서비스 산업 활성화를 위해 공공 데이터를 적극 민간에 개방해 돕겠다는 국정 기조에도 걸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유지·보수 안 되는 공공 서비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의 민간 서비스 따라 하기가 일반 소비자나 이용자에게도 별다른 효용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다. 민간 플랫폼 사업은 특히 출시 후 이용자 요구를 끊임없이 반영해 서비스를 고도화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이지만, 공공 플랫폼은 통상 출시 후 제대로 된 유지·보수가 되지 않아 시장의 외면을 받고 사장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을 지낸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보통 공공기관이 내놓은 새 IT 서비스의 경우 외부 개발 업체와 계약해 용역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추가 인력이나 예산을 확보하지 않으면 유지·보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윗선의 실적을 위해 만든 서비스일수록 이런 경향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런 논란에 대해 “기존 환급 서비스를 좀 더 이용하기 쉽게 개편한 것일 뿐 민간 서비스를 따라 해 경쟁하려 한다는 것은 오해”라며 “국세청 환급 서비스가 고도화되면 이를 기반으로 서비스하는 민간 플랫폼 경쟁력도 덩달아 올라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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