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망 이용대가 법안 논의가 다시 불붙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NTE)'를 통해 통신방송 분야에서 망 이용대가 입법 추진을 무역장벽 사례로 지목하면서다. USTR 무역장벽 보고서는 “일부 한국 통신사(ISP)는 콘텐츠제공사(CP)이기도 해서 미국CP가 지불하는 수수료가 한국 경쟁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며 “한국 3대 통신사의 과점을 강화해 반경쟁적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우영 더불어민주당의원·이해민 조국혁신당 의원과 이정헌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통신사와 콘텐츠제공사 간에 공정한 망 이용계약 의무를 명시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2건을 발의했다. 망 이용계약 공정화법, 망 무임승차 방지법으로도 불리는 이 법안들은 대통령 탄핵, 방송 지배구조 논쟁 등 정치 이슈에 밀려 한동안 잠잠했다. 하지만, USTR가 망 이용대가법 추진을 한국의 무역장벽이라고 주장하자 역설적으로 망 이용대가법 추진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이다.
관세 압박을 가하는 미국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한발 물러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의견도 제시되는 가운데,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은 반발하며 더욱 강력한 입법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법안을 논의해나가는 과정에서 몇가지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 있다. 우선 USTR 압박은 이미 사용된 카드다. 미국은 USTR 보고서를 발간한 이튿날 무역장벽을 명분으로 한국에 25% 관세 부과 방침을 확정했다. 미국은 이미 칼집에서 칼을 뺐다. 망 이용대가법을 철회한다고 해서 한국 상품에 대한 관세 정책을 되돌리는데 도움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망 이용대가 법안이 실제 미국 기업에 손해를 가져다주는지 살펴볼 필요도 있다.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은 일단 국내외 기업을 차별하지 않고 적용된다. 법안은 “통신사와 CP간에 공정한 망 이용계약을 체결하라”는 선언적 조항으로 구성된다. 통신사와 글로벌CP간 힘의 불균형이 발생한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 분쟁에서 망을 연결해 이용하면서도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점이 주요 분쟁 원인이 됐다. '공정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해 통신사의 협상력을 보완하는 게 법의 의도다. 이미 넷플릭스, 메타, 디즈니플러스 등 대부분의 미국 CP가 국내 통신사에 직·간접적으로 망 이용대가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화를 사용했으면 대가를 지불하는게 상식이고 일반적이고 국제적 거래 질서다. 법안은 시장지배력을 바탕으로 망 이용대가를 거부하는 일부 초거대CP를 대상으로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의도다.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미국과 분쟁이 심화될 지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준법 경영)' 문화를 고려해야 한다. 한 국회 관계자는 “미국 기업들은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는 온갖 로비력을 동원해 저지하려 노력할 때가 있지만, 일단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는 어떤 반대나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실제 부가통신사의 서비스 안정 의무를 규정한 법안(일명 넷플릭스법)이 지난 2022년 통과되기전 다양한 반대 활동이 있었지만, 안착된 이후에는 어떠한 논쟁도 없이 제대로 운영되고 있다. USTR는 서비스안정법에 대해서도 무역장벽으로 지목했지만, 통과이후에는 무역장벽 항목에서 삭제했다.
대통령 탄핵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제거되고, 국회는 차기 대통령선거를 향해 정책 논의를 재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망 이용대가 법안은 인공지능(AI) 시대 안정적 인프라 위한 재원을 확보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한 법안이다. 어렵지 않다. '공정한 망 이용계약'이라는 간단명료한 원칙이다. 국회가 망 이용대가법안을 우선순위에 놓고 활발한 논의를 전개하길 기대한다.
박지성 기자 jisung@etnews.com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