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족쇄 벗은 환율…4월 인하는 가계 빚 우려에 '난망' 예상
고강도 美 관세에 복잡해진 셈법…추경 관망 후 5월 인하 무게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후 첫 주말인 5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 열린 찬반 집회 /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서울=뉴스1) 김혜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국내 정치 불확실성이 완화되면서 외환시장 내 경계감이 줄어들고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운용이 한결 자유로워졌다.
다만 정치 불확실성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과 가계부채 증가 우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국내 물가 둔화세에 대한 의구심 등은 한은의 운신을 제약한다.
당장 이달 기준금리 인하는 어렵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지만, 미국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성장 우려가 4월 인하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기된다.
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선고 이후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해외 시각은 일제히 개선되는 양상을 보였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바클리스는 "헌재 판결이 한국에 대한 투자자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시티도 "정치 불확실성이 원화에 미치는 부정 영향이 사라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물 경기에도 긍정적 영향을 예상했다. JP모건은 "헌재의 만장일치 결정이 정치 불확실성을 크게 낮췄다"면서 "정치, 제도적 안정이 법적 틀 내에서 회복돼 소비·기업 심리 하방 압력을 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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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최근 1480원을 넘기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5년 만에 가장 높게 치솟았던 달러·원 환율은 헌재 선고 직후 1430원대로 수직 하락했다.
당시 환율 하락 폭은 지난해 말 이창용 한은 총재가 국내 정치 요인에 따른 환율 상승분으로 언급했던 '30원'에 가까웠다.
한은으로서는 올해 초부터 추가 기준금리 인하를 발목 잡았던 금융 안정에 대한 우려 중 하나가 해소된 셈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지난 1월 경기 부진에도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유로 '고환율'을 들었다.
12·3 비상계엄 직전 1400원 수준이었던 환율은 계엄 후 80원 넘게 폭등했다. 한은은 예기치 못한 금융·외환 변동성 확대에 넉 달간 긴장을 유지했으나,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적어도 국내 정치에 한해서는 한숨을 돌리게 됐다.
다만 기준금리 인하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볼 순 없다.
올 초 서울시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번복 여파로 부동산 관련 가계부채 증가 우려가 확산했다. 다섯 달 연속 3000건대에 머물던 서울 월간 아파트 거래량은 2월 6000건을 돌파했고, 3월 거래량은 신고 기한이 약 한 달 남았음에도 6000건을 넘겨 7000건 돌파 가능성이 있다.
한국 경제 과거를 봤을 때 주택 거래량 증가는 1~2개월 시차를 두고 거의 반드시 가계대출 증가로 이어졌다. 지난달 은행 가계대출 증가 규모가 다소 줄었지만, 이는 올해 2~3월 거래량을 반영하지 못한 터라 한은이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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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은은 지난 3년 동안의 긴축 성과인 '가계부채 하향 안정 추세'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3분기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99.3%까지 치솟았고 금리 인상이 본격화한 2022년 말에는 97.3%로 낮아졌다. 2023년 말 93.6%, 지난해 말에는 90.5%(추정치)까지 내렸다.
이를 두고 이창용 한은 총재는 3일 한국금융연구원과 공동 개최한 콘퍼런스에서 "15년 동안 한 번도 꺾인 적 없는 가계부채 비율이 꺾인 것은 큰 변화"라면서 "잠시라도 2~3년간 이룬 성과가 악화하지 않도록 다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당국은 중장기 가계부채 하향 안정화 목표로 80% 미만을 설정했다.
반면 미국 트럼프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 계획은 역으로 금리 인하 필요성을 키운다.
한은은 지난 3일(한국 시간) 발표된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가 예상보다 강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 1.5%(2월 전망 기준)는 하향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전망의 기본 전제보다 높은 관세가 부과됐고, 미국에 대한 주요 교역국의 보복 확률도 덩달아 올라갔기 때문이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 1.5%는 잠재 성장률 추정값 2%를 크게 밑돌아 유례없는 '저성장 쇼크'로 평가된 바 있다.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눈높이가 더 낮아지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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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에 대한 25% 관세가 현실화하면 수출이 13% 내외 위축돼 성장률이 0.3%포인트(p) 이상 축소될 수 있다"면서 "올해 성장률이 1% 중반에서 0% 후반까지 하락할 위험이 증대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기관은 대체로 10~20% 관세율을 전제로 경제 영향을 분석해 왔지만, 발표된 관세율은 25%로 중국·대만보다 낮고 유럽·호주보다 높아 우호적인 대우라고 보기 어렵다"면서 "전망의 가정보다 관세 수준이 높아 당연히 성장률 등의 추가 하향 조정을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올해 한국 성장률 예상치를 0%대로 낮춘 기관이 나왔다. 영국 리서치 회사 캐피털이코노믹스는 0.9%를, 국제 신용 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1.2%를, 피치는 1.3%를, 글로벌 IB인 바클리스·HSBC는 1.4%를 제시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등 재정 확장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여, 금리 인하의 시급성을 덜어준다는 분석이 맞선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새 정부가 대규모 추경과 함께 정부 주도 성장을 도모할 것으로 예상돼 단기 성장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국내 물가 위험이 과소 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와 4월 인하 여지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고 평가된다. 시티는 최근 통계청의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로 예상(1.9%)을 웃돈 점을 지적하면서 "에너지 가격 하락과 수요 둔화에도 정부의 가격 통제 약화와 생산자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방 압력에 유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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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한은은 향후 가계대출 관련 지표, 글로벌 통상 갈등 상황, 정치권의 경기 부양책 관련 동향 등을 주시하면서 5월 인하를 저울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윤 연구원은 "이달 금통위는 미국의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과 협상의 여지, 국내 정치 불안 해소 등을 확인하면서 대응할 것"이라며 "당장보다는 5월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고 밝혔다. 바클리스도 "정부가 추진하는 10조 원보다 큰 20~25조 원 추경을 예상한다"면서 "한은은 5월쯤 금리 인하 시그널을 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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