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F 쓰쿠바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정현. 2주 연속 정상에 오르며 희망을 찾는 모습이다. 사진 출처 머큐리 매니지먼트
정현(29)이 2주 연속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한때 메이저 대회 4강까지 갔던 그로서는 성에 안 찰 성적이지만 그래도 모처럼 느낀 승리의 쾌감은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정현은 30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에서 열린 국제테니스연맹(ITF) 쓰쿠바 대회(총상금 1만5000 달러)에서 정상에 올랐습니다. 세계랭킹 676위 정현은 단식 결승에서 일본의 구마사카 다쿠아(542위)를 2-1(6-4, 3-6, 6-1)로 눌렀습니다.
지난 23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와세다대 인터내셔널오픈에서도 역시 구마사카를 제압하고 우승한 데 이어 2연속 우승을 기록했습니다. 이로써 올해 ITF 대회 단식에서 3번째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습니다.
정현이 우승한 와세다대 인터내셔널과 쓰쿠바 대회는 ITF 대회 가운데에서도 등급이 가장 낮은 M15대회입니다. 테니스 성인 남자 국제대회는 4대 메이저 대회, 남자 프로테니스(ATP)투어, ATP 챌린저, ITF 대회 순으로 등급이 나뉩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복식에서 임용규와 금메달을 합작하며 병역 혜택을 받은 정현은 2018년 호주오픈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단식 4강에 오르는 쾌거를 거뒀습니다. 당시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까지 제압하며 기세를 올린 그는 한국 테니스 역사를 다시 쓰며 승승장구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끝 모를 부진의 늪에 허덕였습니다. 허리 부상으로 한동안 코트를 떠나 있더니 2022년부터 쳇바퀴 돌듯 복귀와 재활을 반복했습니다. 2018년 연말 25위였던 세계랭킹은 2023년 말 1092위까지 떨어졌습니다.
정현이 오랜 슬럼프에 허덕이는 동안 그의 아버지이자 영원한 스승인 정석진 전 삼일공고 감독도 병마와 싸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진> 정현의 개성 있는 포핸드 모습. 사진 출처 ITF 홈페이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간간이 대회에 출전했던 정현은 올해 1월 ITF 발리 대회(M25)에서 5년 5개월 만에 프로대회에서 우승했습니다. 2024년 말 1098위였던 세계랭킹은 726위까지 뛰어올랐죠.
세계랭킹이 워낙 떨어져 있어 당분간은 랭킹 포인트를 쌓는 데 주력해야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상 재발이 없어야 하겠죠.
과거 이형택도 ATP 투어에서 초반 탈락을 반복하며 좌절에 빠지자 한 단계 낮은 챌린저급 대회에서 승수를 쌓으며 랭킹도 방어하고 자신감도 회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주원홍 대한테니스협회장은 “하루빨리 몸 상태를 끌어올려야 한다. 아직은 투어를 뛸 컨디션을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오랜 세월 정현을 지도했던 윤용일 대한테니스협회 미래 국가대표 전임감독은 “부상 없이 2주 연속 토너먼트를 소화해 냈다는 게 큰 의미가 있다. 이제 챌린저 무대로 가서 경쟁할 수 있을 듯하다. 능력은 있는 친구이니 좀만 더 지켜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사진> 정현이 자신의 용품 스폰서인 요넥스 수주회에 참석해 김철웅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출처 테니스 코리아
요넥스 퍼셉트 97 라켓을 사용하고 있는 정현은 연초에 테니스 코리아와 인터뷰에서 “아직 ITF 대회이지만 좋은 결과를 얻어서 올해 투어를 시작하는 데 많은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 그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부상에 대한 것은 괜찮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WTA투어 선수 출신으로 은퇴 후 영국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딴 박성희 퍼포먼스 심리연구소장의 상담도 도움이 됐다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현은 “박성희 교수님의 심리 상담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된다. 교수님 역시 직접 투어에서 선수로 뛰셨던 분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나의 상황을 잘 이해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는 정현은 초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투어에 도전하는 신입생의 마음으로 한 경기 한 경기 소중하게 여기겠다고 합니다. 어쩌면 코트에 섰을 이 순간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순간 아닐까요.
김종석 채널에이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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