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이 없는 물김 가격
국내 수급 부족에 양식장 확대
날씨까지 좋아 '과잉생산'
가격 폭락에 불법양식장 단속하자
공급부족으로 다시 치솟아
“이렇게 팔면 남는 게 없습니다. ‘물김’(김의 원료)이 ‘물’보다 싸다니까요.”
(지난 1월, 김 양식업계 관계자)
“물김이 너무 비싸서 도무지 수출 단가를 맞출 수가 없습니다. 해마다 해외 바이어들에게 매입가격을 올려달라고 하니, ‘뭐 이런 제품이 있나’고 황당해합니다.”
(올 2월, 김 수출업계 관계자)
어민이 갓 수확한 물김을 경매에 부친 후 정리하는 모습. 연합뉴스
김 시장을 취재하다 보면 ‘같은 품목이 맞나’ 싶을 때가 많다. 가격이 수시로 ‘롤러코스터’를 타서다. 올 초만 하더라도 “물김이 남아돌아서 내다 버린다”고 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비싸면 무슨 수로 수출하나”고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많다.
30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수산업관측센터 월보에 따르면 올 2월 물김 위판가격은 ㎏당 1439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월(1745원) 대비로는 17.5% 낮지만, 평년 수준을 웃도는 가격이다. 전월 대비로는 무려 88.5% 올라 한 달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방곡령이라도 해야하나" 수출 잘되니 국내 재고가 없네
최근 물김 가격을 들으면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올 1월만 하더라도 “산지에서 물김이 버려지고 있다”는 보도가 쏟아져서다.
KMI 월보에 따르면 전국 평균 물김 위판가격은 지난해 12월 ㎏당 2254원으로 2000원을 넘어섰다. 그런데 새해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 1월 1주차(12월 30일~1월 5일)에 1060원까지 떨어지더니 2주차(1월 6~12일)엔 917원을 기록하며 ‘동전주’가 됐다. 1월 전체로 보면 월평균 물김 위판가격은 ㎏당 663원으로, 전월 대비 66.1% 떨어졌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52.4% 하락했다.
특히 김 생산량이 많은 전남지역에서 물김 위판가격이 크게 올랐다. 올 1월 전남지역의 물김 위판가격은 △진도 693원 △해남 699원 △고흥 673원 이었지만, 지난달엔 1주차(2월 3~9일)에 이미 1500원에 육박했고, 3주차(2월 17~23일)엔 △진도 1983원 △해남 1846원 △고흥 188원으로 2000원 가까이 치솟았다. 한 달 만에 세배 수준으로 급등한 것이다.
도무지 ‘중간’이라곤 없는 물김 가격엔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사건의 발단은 3년 전으로 돌아간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집밥’과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한국의 김이 수출에 날개를 달았다. 코로나19 막바지였던 2022년 김 수출액은 6억4760만달러. 김의 별명이 ‘검은 반도체’로 굳어진 때다.
주무 부처인 해양수산부도 한껏 고무됐다. 급기야 해수부는 2023년 9월 ‘제1차 김 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내놓는다. 2027년까지 김 수출액 10억달러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세계 시장의 70%를 한국이 점유하고 있다는 점, 김 주요 수출국인 일본이 작황 부진을 겪는다는 점도 김 산업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김 수출은 정말 ‘날아올랐다’. 2023년 7억9250만달러(약 1조200억원)로 사상 처음 1조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9억9700만달러로 10억달러에 육박했다. 수산물 가운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수출 실적이 급성장한 품목은 찾기 어렵다. 해수부는 아예 김의 영문 표시도 일본식 명칭인 ‘노리(nori)’ 대신 한국 발음인 ‘김(gim)’으로 국제표준화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민간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어촌 어르신 중엔 자녀를 도시에 취업시키는 대신 ‘김 양식업에 도전해보라’고 권하는 경우도 늘었다.
그런데 안에서 문제가 터졌다. 국내 김이 해외로 모조리 팔려나가니 정작 한국에서 먹을 김이 부족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작년 4월 김밥용 김(중품) 도매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속(1속=100장)당 1만원을 넘어섰고, 연말엔 1만2000원까지 올랐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 김 판매대 모습. 연합뉴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빗발쳤다. 그렇다고 조선 말기 ‘방곡령’처럼 김 수출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 해수부는 지난해 ‘양식장 확대’ 카드를 내놨다. 축구장 3800개 넓이인 2700㏊ 규모의 김 양식장을 새로 허가한 것. 이에 더해 그동안 김 양식을 하지 않았던 외해 쪽에서도 약 1000㏊ 정도 김을 추가로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해수부 관계자는 “김 생산량이 전년 대비 약 7% 정도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수출은 물론 국내 소비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날씨가 좋아서...올해 5000t 넘게 내다버려
정말 7%만 늘었을까. 뜻밖에 ‘날씨 호황’이 문제가 됐다. 작년 말부터 올 1월까지 바다 수온이 물김 생장에 가장 적합한 5~10도를 유지한데다, 별다른 강풍과 파도 피해도 없었다. 물김은 무럭무럭 자랐다. 통상 물김을 한번 채취하려면 15~20일이 걸리는데, 이번엔 10~15일이면 충분했다. 해수부에 따르면 김 생산량은 작년 12월 3467만속으로 전년 동월 대비 29.8% 많았고, 올 1월에도 4206만속으로 23.3% 늘었다. KMI는 2025년산 김 생산량이 1억7645만속으로, 전년(1억4970만속) 대비 17.9%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물김이 풍년이면 수출이나 국내 수급 모두 충분할 테니 잘됐다 싶을 수 있지만, 상황은 간단하지 않다.
물김을 마른김으로 가공할 공장이 없어서다. 물김을 반찬으로 올리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물김 자체가 보관 기한이 2~3일에 불과해서다. 통상 마른김으로 1차 가공한 다음 조미김으로 2차 가공해서 밥상에 올린다. 해외에 판매하는 ‘K김’도 이 같은 조미김이다. 그런데 국내 마른김 가공 공장은 영세한 곳이 많다. 물김 생산량 확대에 맞춰 가공 시설을 늘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해마다 물김 생산량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해수부도 양식장은 늘렸지만 가공 시설엔 투자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위판장에 물김을 내놔도 사들이는 사람이 없다 보니 어민들이 멀쩡한 물김을 갖다 버렸다. 올 1월에 벌어진 일들이다. 물김은 수확한 직후 위판장에서 팔지 못하면 폐기해야 한다. 2025년산 물김 폐기량은 2월 7일까지 5690t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2021년산 1451t △2022년산 2317t △2023년산 1412t △2024년산 54t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인 규모다.
충남 홍성군 남당항 김 양식장에서 김 수확이 이뤄지고 있다. 충남 홍성군 제공
“물김을 자식처럼 키웠다”는 어민들은 뿔이 났다.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며 거세게 항의하자 해수부는 해양경찰청, 공정거래위원회까지 동원해 지난달 5일부터 주 1회 ‘현장점검’에 나섰다. 김 유통·가공업체를 대상으로 마른김과 조미김의 생산 및 유통 현황을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불법 양식장 걷어내니 물김 공급량 '뚝'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법 양식장도 단속했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불법’인 만큼 신뢰할만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에선 김 생산량의 약 30%가 불법 양식장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추산한다. 특히 최근 들어 김 양식장이 우후죽순 생겨났다는 지적이 많다. 김 수출이 호황을 맞고 물김 위판가격이 오르면서 “김을 키우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어민들이 너도나도 김 양식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여건상 일일이 바다를 돌아다니면서 어민들이 김 양식장 허가 구역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불법 양식장을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전남 고흥의 경우 합법 양식장이 40%, 불법 양식장이 60% 수준이다”며 “불법 양식장을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김발을 철거해버리니, 고흥에선 물김이 모자라 가공 공장들이 멈추는 일도 벌어졌다”고 전했다.
불법 양식장이 문을 닫자 물김 시장에선 공급이 뚝 끊겼고 가격은 다시 치솟았다. 올 2월 물김 시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물김 가격이 다시 오르니 마른김과 조미김 생산원가도 줄줄이 올랐다. 특히 국내에서 김을 가공해 해외 바이어들에게 판매하는 조미김 업체들은 울상을 짓고 있다.
한 조미김 업체 대표는 “미국에서 한국의 '김 스낵'하고 경쟁하는 제품은 '도리토스' 같은 과자”라며 “그런데 미국 매장에서 도리토스는 20~30g짜리가 보통 1.5달러 정도에 팔리는데, 지금 같은 상황에서 김은 괜찮은 제품이 5g 하나에 1달러 정도 한다”며 “아무리 김이 ‘건강식’이여도, ‘5g짜리 김 먹을래 30g짜리 도리토스 먹을래’ 하면 소비자로선 당연히 도리토스를 고르지 않겠나”고 토로했다.
결국 김 호황이 '반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생산부터 가공까지 안정적인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처럼 공급량이 그때그때 급변하면 시장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이광식 기자 bume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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