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계시록>
[장혜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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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 넷플릭스 |
(*이 기사는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계시록>은 시리즈 <지옥>의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 작가의 연이은 협업 작품이다. 종교와 신념을 향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 웹툰을 영상화했다. 어긋난 신념 속에서 자기합리화에 매몰된 나약한 인간의 전형이 총망라돼 있다. 잘못된 믿음으로 수많은 사람을 고통 속에 몰아갔던 탄압, 전쟁, 폭력 등도 이와 같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고민해 볼 지점이다.
글로벌 협업도 눈에 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과 <로마>, 시리즈 <디스클레이머>로 알려진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총괄 프로듀서)라는 직함으로 참여했다. 평소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내밀하게 다룬 전력이 두 사람을 이어준 다리가 된 걸까.
우연한 오해로 비롯된 광기
한 소도시의 개척교회 담임 목사로 사역 중인 성민찬(류준열)은 모든 게 불안하다. 설마 했던 아내의 불륜은 물론이고 열심히 전도했지만 신도 수는 비례하지 않는다. 신앙의 깊이가 얕아지고 있고 생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 와중에 오랜만에 신도가 찾아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한 소녀에게 이끌려 들어온 권양래(신민재)를 전도하려 든다. 인상은 험악하지만 누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비협조적인 그를 구슬려 신도 등록 카드를 작성하려 하던 중 전자발찌를 보고 흠칫 놀라게 된다. 하지만 '교회는 죄인들이 오는 곳이다'라며 재방문해 달라고 부탁한다. 성민찬은 그를 끌어안을 준비가 돼 있었다.
얼마 후 아들이 실종되자 180도 달라진다. 그때 본 전자발찌가 떠올라 권양래를 범인으로 특정한다. 범죄자 신상 검색을 통해 집 근처를 찾아가던 중 수상한 움직임을 목격하고 실랑이를 벌이다 사고가 난다. 그때 마침 벼락이 치며 반대편 절벽에 비친 예수 얼굴을 본 성민찬은 이 모든 게 신의 계획이라며 정당성을 부여하기에 이른다.
한편, 형사 이연희(신현빈)는 동생의 죽음이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한다. 권양래 사건의 피해자였던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은 일상을 뒤덮고 객관적인 시선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그 중심에는 이상하게도 계속 성민찬이 연관돼 있어 미심쩍기만 하다. 그러던 중 또 다른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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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 넷플릭스 |
영화 <계시록>은 종교를 통해 인간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신을 확신으로 만드는 계기를 전한다. 연관 없어 보였던 세 인물이 하나의 사건으로 얽히며 연속된 파국 속으로 이끌려 간다. 모든 일이 신의 뜻이라고 믿는 목사, 동생의 죽음을 자신 탓이라 믿는 형사, 모든 게 머릿속 괴물이 시켰다고 믿는 전과자를 통해 각자의 믿음을 쫓는 과정을 보여준다.
집착이 만들어낸 허상은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진실은 가린 채 오로지 믿음을 맹목적으로 쫓는다. 세 인물은 각각의 신념을 흔들어 놓는 선입견과 착각에 빠진다.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 갇힌 꼴이다.
그 원인을 '아포페니아(Apophenia)' 형상에 빗대 설명한다. 아포페니아란 서로 연결성·연관성이 없는 무질서한 정보들 사이에서 일정한 규칙이나 패턴의 의미를 찾는 심리 성향이다. 그중 자연현상의 무작위적인 자극이나 잡음 속에서 친숙하지만 의미 없는 패턴을 이미지로 찾아내는 '파레이돌리아(Pareidolia)'라 하는데 성민찬은 이와 같은 환영을 자주 목격한다.
우발적으로 권양래를 밀쳐 절벽 아래로 떨어졌을 때 성민찬은 건너편 절벽에서 예수의 형상을 확인한다. 허름한 개척교회 대신 같은 신축공사 중인 큰 교회의 담임 목사로 결정된 후 방에서 비슷한 형상을 본다. 죽은 줄 알았던 권양래가 인근 요양원에 은신하고 있을 때 창밖에서 천사의 형상을 마주한다.
권양래의 사진이 프린트된 종이에 물이 번진 얼굴에서 악마의 형상을 기어코 찾아내고, 우연히 펼친 성경에서 신명기 24장 7절이 신의 계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일이 거듭되자 성민찬은 소녀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예배 중 천국에 갔을 거라며 확신하는 실언을 하고야 만다.
신념은 무엇으로부터 오는가
연상호 감독은 꾸준히 사회 고발적인 이슈를 인간 본성과 곁들인 염세주의적인 세계관을 유지하고 있다. <계시록>을 통해서는 다크 판타지에 주목했던 스타일을 벗어나 리얼리즘을 중시했다. CG보다는 실제 로케이션과 자연광에 공들였다. 계시가 나타나는 장면마저도 미술팀이 설치해 놓은 소품과 조명만으로 형상을 만들었다며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심리를 구현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살다 보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형용하기 힘든 일을 겪었을 경우, 벌어진 마음의 틈을 파고들어 헤집어 놓는다. 간극을 채우기 위해 조작된 진실이라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타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맞다고 생각하면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차단하고 확증편향이 생긴다.
그래서일까. 영화는 반복적이고 직관적인 이미지를 빗대 나약함과 집착을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은 개인이 통제하기 힘든 복합적인 원인에서 비롯되며 악마, 괴물, 신 등은 인간이 편의를 위해서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거다. 사태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도 말한다. 혼란에 빠진 사람을 구제할 방법은 스스로 고리를 끊어내는 것뿐이다.
세 인물의 선택을 통해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자하는 성향을 깨기란 쉽지 않음을 또다시 보여준다. 인간의 보편적인 신념과 이에 따른 행동이 타인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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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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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계시록> 스틸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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