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8일 예정…우주선 결함으로 9개월 초과 근무
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 때의 부치 윌모어(위)와 수니 윌리엄스. 나사 제공
“재밌었다. 때때로 힘들었던 건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좌초된 것도, 갇힌 것도,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 애초 8일간 머물다 올 예정이었다가 우주선 결함으로 발이 묶였던 미국 우주비행사들이 9개월 만에 지구로 돌아왔다. 예정에 없이 긴 우주 생활을 했던 주인공은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베테랑 우주비행사 수니 윌리엄스(62)와 부치 윌모어(62)다.
두 사람을 포함해 4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운 스페이스엑스의 우주선 드래건은 18일 오전 1시5분(미 동부시각) 국제우주정거장을 출발해 17시간 만인 오후 5시57분(한국시각 오전 6시57분) 플로리다 인근 바다에 착수했다. 몇분 후 이들을 태우기 위한 선박이 우주선에 접근하자 호기심 많은 돌고래 무리가 환영파티를 하듯 우주선 주위를 원을 그리며 도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해 6월5일 지구를 출발해 286일 만이었다.
나사에 따르면 두 사람은 지구에 돌아올 때까지 우주에서 1억9528만9871㎞를 비행하면서 지구를 4576번 공전했다.
이들을 국제우주정거장에 데려간 것은 보잉이 개발한 유인 우주선 스타라이너였다. 왕복 10일 예정의 시험비행이었으나 우주정거장에 도킹해 있던 스타라이너에서 헬륨 누출 등의 결함이 발견돼 귀환하는 우주선에 탑승하지 못한 채 발이 묶였다.
“갈아입을 옷 부족한 게 제일 불편” 우주 실험·유영 등 추가 임무 수행
자기 집 덮치는 허리케인도 목격
“좌초된 것도, 버려진 것도 아니었다
이것이 우주 비행에서 일어나는 일”
이들은 애초 스타라이너에 배정된 우주비행사가 아니었다. 2019년 무인 시험비행 이후 유인 시험비행 일정이 지연되면서 2020년 교체 투입된 비행사들이다. 그러나 스타라이너 개발 일정이 계속 늦어지면서 이들 역시 오랜 기간 대기 상태에 있었다. 미국 언론은 이들이 이번 임무를 위해 훈련한 기간은 1969년 첫 유인 달 착륙에 성공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보다 더 길었다고 지적했다.
지루한 기다림의 세월을 견디고 지난해 지구를 출발할 때도 곡절이 많았다. 출발 직전 밸브 오작동 등의 문제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두차례 발사가 중단되는 일을 겪었다. 결국 첫 발사 시도 한달 후인 세번째 시도에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이미 우주정거장 생활 경험이 있었지만 예정 기간을 넘기고 장기체류에 들어간 직후엔 적응에 애를 먹었다. 무엇보다 갈아입을 옷이 부족했다. 나사가 몇달 후 화물우주선 편에 옷을 포함한 개인 물품을 보낼 때까지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체류 기간이 길어지자 나사는 두 사람을 국제우주정거장 72차 원정대에 합류시켜 우주 실험, 우주 유영 등의 과학 임무를 수행하도록 했다. 특히 경험이 많은 윌리엄스에게 아예 사령관 지위를 부여했다. 이후 두사람은 6개월 동안 나사 우주비행사로서 공식 임무를 수행한 뒤 임무 교대 일정에 맞춰 이날 귀환하게 됐다.
미국과 러시아 우주비행사 4명을 태운 스페이스엑스의 유인우주선 드래건이 18일 오후(현지시각) 낙하산을 펴고 플로리다 앞바다에 착수하고 있다. 나사 제공
윌모어는 우주정거장에 있는 동안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짧게 머물 계획이었지만 오래 머물 준비도 하고 왔다”며 “이것이 바로 유인 우주 비행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윌리엄스는 귀환 며칠 전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엔) 창밖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이 우주에서 본 것은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윌모어는 지난해 여름 허리케인이 자신의 거주지인 휴스턴을 덮치는 모습을 목격했다. 당시 허리케인 베릴의 강한 바람에 그의 집 지붕이 일부 손상됐다. 두 사람의 귀환 문제는 올해 초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 간에 정치적 공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국제우주정거장 우주비행사들은 보통 6개월을 우주에서 보낸다. 따라서 9개월이 아주 이례적으로 긴 기간은 아니다. 나사 우주비행사 중 역대 최장 체류기간은 371일이다.
윌리엄스는 2006년 처음으로 우주정거장을 방문한 이후 지금까지 세차례에 걸쳐 총 608일을 우주에서 보냈다. 이는 나사 우주비행사 중에서 두번째로 긴 기간이다. 최장 체류 기간은 지금은 은퇴한 페기 휘트슨이 갖고 있는 675일이다. 윌모어는 세번에 걸쳐 464일을 우주에서 보냈다.
우주유영 시간은 이번까지 포함해 윌모어가 31시간, 윌리엄스가 62시간이다. 윌리엄스의 우주유영 시간은 여성 우주인 중 가장 길다. 둘 다 해군조종사 출신으로 윌모어는 2000년, 윌리엄스는 1998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됐다. 윌리엄스는 인도계 미국인이다.
지구로 돌아온 두 사람은 당분간 나사의 유인 우주비행을 총괄하는 휴스턴 존슨우주센터에 머물며 건강 검진을 받게 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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