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진 게 없는데도 편식하는 느낌
글로벌 겨냥 쉽고 명료하지만, 개성·깊이감 아쉬워
‘계시록’ 스틸. 사진 I 넷플릭스
“우연은 없어요. 다 하느님의 뜻이에요.”
“또 아무 것도 못하면 어떡하죠? 다 나 때문인데...”
“경찰 불러, 이 악마 새끼야! 다 외눈박이가 잡아먹었어.”
성자는 악마를 응징하란 계시를 믿고, 악마는 모든 건 괴물 때문이라 믿고, 악마와 성자를 마주한 여자는 자신 때문이라고 믿는다. 뒤틀린 믿음, 왜곡된 집착, 환상과 트라우마가 뒤섞인 소용돌이 속에서 만난 세 사람, 거짓 진실과 악마는 사라질까.
비 내리는 밤, 한 여중생이 겁에 질린 채 급히 다니던 교회로 향한다. 그 뒤로 소름끼치는 눈빛의 성범죄 전과자가 따르고, 한 여자가 그를 더 섬뜩한 눈으로 쫓는다. 교회 안에선 기타를 치는 담임 목사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찬송가가 울려퍼진다.
‘계시록’(감독 연상호·제작 알폰소 쿠아론)은 실종 사건의 범인(신민재)을 단죄하는 것이 신의 계시라 믿는 목사(류준열)와, 죽은 동생의 환영에 시달리는 실종 사건 담당 형사(신현빈)가 각자의 믿음을 쫓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다.
사진 I 넷플릭스
류준열은 개척 사명을 받고 작은 교회를 이끌며 신실한 삶을 살다 계시를 받은 뒤 시시각각 변화하는 ‘성민찬’의 심리를 서늘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해낸다. 신현빈은 실종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이연희’가 돼 차갑고도 뜨겁게, 또 처연하게 연기한다. 여중생 실종 사건의 용의자 권영래 역을 맡은 신민재는 등장부터 퇴장까지 내내 서스펜스를 불어넣는다.
이들은 완전히 다른 듯 상당히 닮았다. 권양래는 비극의 원인을 악마 때문이라고 하고, 성민찬은 하늘의 계시라고 하며, 형사 연희는 무능력한 자신 때문이라고 한다. 모두 저 마다의 이유로 사태의 원인을 하나의 대상에서 집요하게 찾는다. 그렇게 광기에 휩싸인다.
메가폰은 이들을 통해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으려 하는 아전인수식 사고방식을 꼬집는다. 비극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트라우마의 어두운 나비효과를, 이는 뒤틀린 믿음이 아닌 ‘이성’과 ‘진실’로 해결해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의 비극은 대부분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복합적인 요인에서 생긴다고, 악마 괴물 계시 등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든 거라고 직언한다.
판타지 시리즈 ‘지옥’과는 전혀 다른 방식을, 소재를 택했을 뿐, 메시지는 그간의 연니버스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판타지·오컬트란 외피는 벗어던졌으나 알맹이는 거의 같다. 글로벌 시청자를 겨냥한 탓인지, 훨씬 쉽고 직접적이며 명료해졌고, 러닝타임 대비 이야기도 촘촘한 편이다. 긴장감 넘치는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는 다소 급하고도 뻔하게 후르륵 넘어가긴 하지만, 대체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장르적 쾌감도 적절하게 유지한다.
아쉬운 건 특유의 다크한 아우라와 동일한 메시지, 비슷비슷한 캐릭터 색깔과 활용에 그럼에도 상당한 기시감이 느껴진다는 것. 무엇보다 연니버스의 오랜 마니아층에겐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새로운 것도 전혀 새롭지 않고, 도발적인 매력도, 세계관의 깊이도 얕아졌다.
류준열은 유아인(지옥)을 닮았고, 신현빈은 김현주(지옥·선산)를 떠올리게 한다. 어김 없이 종교가 가미됐고, 초자연 현상을 도구로 사용한다. (기타 등등.) 분명 다른데 같은 듯한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보이는 것만 봐도, 안 보이는 걸 캐 봐도 그렇다. 추신, 잘 나가는 연니버스도 휴식은 필요해...
오는 21일 넷플릭스 공개.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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