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부산교육감 재선거 개표 결과, 진보 진영 김석준 후보가 51.1%로 당선됐다. 12·3 쿠데타를 옹호하고 윤석열을 지지하는 정승윤 캠프는 득표율 40.2%에 주목한다.
4·2 부산교육감 재선거에 출마한 정승윤 후보가 4월1일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피날레 유세를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대통령이 했던 계엄, 헌법에 있는 권한입니다!” 4·2 부산교육감 재선거를 하루 앞둔 4월1일 저녁 7시, 정승윤 후보가 부산 서면에서 열린 마지막 유세에서 이렇게 외쳤다. 교육감 후보로서의 포부나 공약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정 후보가 “내일모레(4월4일) 대통령 탄핵 선고 한답니다. 정승윤을 찍어서 부산 민심을 정확하게 대한민국에 전달합시다”라고 소리치자, 유세 현장에 모인 지지자 200~300명은 “압승! 압승! 압승!”이라며 환호했다.
정승윤 후보의 마지막 유세는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와 꼭 닮아 있었다. 연달아 무대에 오른 연사들은 “우리가 압승으로 탄핵 기각을 이끌어내서 대한민국을 바로잡아야 한다(김성진 부산대 명예교수)” “목사가 정승윤 후보를 지지하는 건 공산주의와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도 김일성주의도 안 된다(부산교회총연합회 송영웅 목사)”라며 윤석열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색깔론을 부추겼다.
부산 유권자들은 새 교육감으로 정승윤 후보를 선택하지 않았다. 4월2일 개표 결과, 진보 진영 김석준 후보가 51.1%로 부산교육감에 당선됐다. 보수 진영 정승윤 후보와 최윤홍 후보는 각각 40.2%와 8.7%를 얻었다. 하윤수 전 부산교육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지난해 12월12일 벌금 700만원이 확정되면서 직을 상실했다. 그 뒤 치러진 4·2 부산교육감 재선거는 남은 임기를 책임질 부산 교육의 수장을 뽑는 선거였다. 부산에는 유치원과 초등·중·고등학교 993곳에 학생 32만9409명(2024년 4월1일 기준)과 교원 2만5521명(1월1일 기준)이 있다. 부산시 교육청이 올 한 해 다루는 예산만 5조원 규모다.
교육감 선거는 정당 공천을 하지 않지만, 정승윤 후보의 출마는 ‘윤석열 구하기 작전’에 가까웠다. 3월20일 정승윤 후보의 출정식에는 ‘정의, 승리, 윤과 함께’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 구호를 제안했다는 캠프의 핵심 관계자 ㄱ씨는 “‘윤과 함께’는 중의적으로 쓴 의미다. 윤석열의 ‘윤’과 정승윤의 ‘윤’이라는 뜻인데, 뒤늦게 최윤홍 후보가 출마하면서 잘 쓰지 않게 됐다. 후보가 원래 출마할 생각이 없었는데, 지난해 12월14일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 당장 나부터도 그렇고 주변에서 제안을 많이 했다. 탄핵심판 선고가 4월 둘째 주에 나올 거라고 예상해서, 탄핵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선거운동을 할 목적으로 출마한 것도 있다”라고 말했다.
ㄱ씨 말대로, 정승윤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은 윤석열 지지층 결집의 장이 됐다. 3월20일 열린 출정식이 대표적이다. 이날 출정식엔 공개적으로 12·3 쿠데타를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제기하는 역사 강사 전한길씨와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하는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가 무대에 올랐다. “윤 대통령 지지율도 올려드리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보수 우파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전한길).” “대통령이 계엄령을 할 수 있는데도 좌파들이 내란이라고 덮어씌워서 현직 대통령을 감옥에 집어넣어 버렸다(손현보).”
교육감 후보 유세 현장을 빌려, 군을 동원한 헌정 파괴 시도를 옹호하고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극우 세력의 발언이 고스란히 부산 거리에 전파됐다. 3월28일 부산시선거관리위원회는 정 후보와 손 목사를 공직선거법 위반(종교적 단체 등 조직 내에서 선거운동 금지) 등 혐의로 부산경찰청에 고발했다.
검사 출신 정승윤 후보는 대표적인 ‘친윤석열계’ 인사다. 윤석열 대선캠프(정책본부 공정법치분과위원장)와 인수위(정무사법행정분과 전문위원)를 거쳐, 2023년 1월 차관급인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권익위 부위원장으로서 그의 이름이 알려진 것도 ‘윤석열 구하기 작전’ 때다. 그는 지난해 6월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 조사 결과, 위반 사항이 없어 사건을 ‘종결’ 처리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사건 조사를 총괄하던 권익위 전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김 아무개씨가 종결 처리 후 두 달 뒤인 지난해 8월, 숨진 채 발견됐다. 숨진 김씨가 권익위 수뇌부의 사건 종결 압박으로 괴로워했다는 주변의 증언이 나왔다(3월31일 인사혁신처는 김씨의 순직을 인정했다). 김씨의 직속 상관이던 정 후보는 지난해 9월 사직서를 제출했지만, 그해 12월에야 권익위를 떠났다.
그 후 행보는 극우 세력과 궤를 같이했다. 세이브코리아가 주최한 윤석열 탄핵 반대 집회 무대에 올라 계엄 옹호론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치고, 윤석열 관저 앞에서 ‘대통령 즉시 석방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교육감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극우 세력을 결집해 세력을 확대했다. 그 결과가 3월9일 보수 후보 4자 단일화 승리였다(최윤홍 후보는 여론조사 조작을 주장하며 단일화를 거부했다). 또 다른 캠프 핵심 관계자 ㄴ씨는 단일화 승리가 “누가 우파의 정통성을 가졌는지, 헌법적 가치와 보수의 가치를 잘 실현할 사람인지에 대해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우파의 정통성’ ‘보수의 가치’가 극우 세력에게 있다는 해석이다.
4·2 부산교육감 재선거에 출마한 김석준 후보가 개표 결과 당선이 유력해지자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종북 좌파 이념교육으로부터 부산 아이들을 지켜내겠다”라는 정승윤 후보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그와 주변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체제 전쟁(정승윤 캠프 관계자 ㄷ씨)”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교육감 재선거 투표율은 22.8%였다. 전국 23곳에서 치러진 4·2 재보궐 선거 최종 투표율인 26.3%보다 낮았다. 다른 재보궐 선거와 비교하더라도 부산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정승윤 캠프는 득표율 40.2%에 주목한다. 극우 세력이 조직적으로 결집하면, 적어도 40%의 득표율을 얻을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는 것이다. 정승윤 캠프 핵심 관계자인 ㄱ씨는 “처음엔 ‘되겠냐’던 유권자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윤석열 탄핵이 인용되고 치러질 조기 대선에서 국민의힘 경선에 도전할 이들이, 적극적으로 극우 세력과 손을 잡은 정승윤 후보의 선거 전략 및 그에 따른 결과를 지켜봤다. 그간 제도권 주변부에 머물던 극우 세력은 규모와 영향력을 키우며, 주류에 진입하기 위한 시도를 이어갈 것이다. 대선에 도전할 보수 정치세력이 극우 세력과 단절할 수 있을까? 4·2 부산교육감 재선거가 한국 사회에 몇 가지 단서와 과제를 남겨주었다.
부산·이은기 기자 yieu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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