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내성 생긴 세균에 감염
동남아시아서만 75만 명 사망
오남용할수록 감염 위험 커져
항생제 내성이 생긴 세균에 감염돼 사망하는 전 세계 어린이가 1년에 최소 3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생제 내성은 항생제에 저항력이 생긴 세균이 죽지 않고 생존·증식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항생제를 오남용할수록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 위험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연구 결과로 해석된다.
조지프 하웰 미국 브라운대 의대 교수 연구팀은 13일(현지 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 임상 미생물학 및 감염질환 학회(ESCMID)’에서 2022년 한 해에만 최소 300만 명의 어린이가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항생제 39개를 접근(access), 주의(watch), 보류(reserve) 등 3가지 범주로 분류한다. 내성 발생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아 치료에 널리 쓰이는 항생제는 접근에 속한다. 주의는 접근 범주 항생제보다 내성 발생 위험이 높은 항생제를, 보류는 최후 수단으로 사용하는 항생제를 의미한다.
특히 보류에 속하는 항생제는 1차 치료 목적으로 사용해선 안 된다. 보류 항생제는 다제내성 병원체로 인한 중증 감염을 치료하는 데만 쓰는 마지막 수단이다. 다제내성 병원체는 여러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세균을 의미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항생제 내성이 생긴 세균에 감염돼 사망한 아동이 가장 많은 지역은 동남아시아(75만2000명)와 아프리카(65만9000명)다. 이들 지역에선 주의와 보류에 속하는 항생제 사용이 늘어난 게 특징이다. 2019∼2021년 주의에 속하는 항생제 사용이 동남아시아는 160%, 아프리카는 1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보류에 속하는 항생제 사용은 각각 45%, 125% 늘었다. 그만큼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해졌다는 뜻이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 세균 감염으로 사망한 어린이 300만 명 중 200만 명이 주의 및 보류 범주의 항생제 사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주의 및 보류 항생제 사용 증가는 심각한 장기적 위험을 초래한다”며 “사용이 급증하면 내성 위험이 더욱 높아지고 치료 옵션은 점점 제한된다”고 말했다. 또 “주의 및 보류 항생제에도 내성이 생기면 다제내성 감염을 치료할 수 있는 대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
저소득 및 중간소득 국가들은 항생제 오남용과 더불어 병원 과밀, 열악한 위생 상태, 미약한 감염 예방 조치, 진단 도구 부족, 오진, 국가 감시 프로그램 부재 등으로 항생제 내성을 극복하기 어렵다. 연구팀은 “항생제 내성 취약계층인 어린이들을 위한 글로벌 지침과 통제 개입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항생제 내성 문제는 심각하다. 지난달 17일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항생제 사용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3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75개 병원 처방 항생제 중 26.1%가 부적절하게 처방됐다.
국내에서는 최후의 보루로 불리는 강력한 항생제인 ‘카바페넴계 항생제’ 내성과 관련 있는 사망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9년 203명에서 2023년 663명으로 사망자가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항생제 내성을 막기 위해 정부가 2016년부터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을 추진 중이지만 인구 고령화와 요양병원에서의 항생제 사용 증가 및 내성률 증가 등으로 사망자는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병원에서의 항생제 사용뿐 아니라 농업, 축산업, 수산업 등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항생제 등에 대한 감시 및 관리 또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문세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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