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광의 '온에어' 348 ] 다큐 연출한 김동민 CBS PD 디캠프>
[이영광 기자]
지난 3일 CBS TV에서 <디캠프>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송됐다. 다큐 <디캠프> 주인공은 미국인 선교사 2세 오토 디캠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CBS를 설립해 초대 사장을 지냈다. 다큐는 오토 디캠프의 생애를 통해 그의 기독교 선교와 언론 활동을 담았다.
다큐 제작 과정이 궁금해 지난 9일 서울 목동 CBS 사옥에서 <디캠프>를 연출한 김동민 PD와 인터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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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캠프>의 한 장면 |
ⓒ CBS |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 지난 3일 CBS TV에서 방송된 다큐 <디캠프> 연출하셨잖아요. 방송 끝낸 소회가 어때요?
"사실 저희가 작년에 70주년을 맞이했어요. (CBS 설립의 주역인) 오토 디캠프의 후손들이 미국에 계시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상당히 오랫동안 서로 연락도 안 되고 만나지를 못했었어요. 그런데 내부에서 70주년이니 만나야 되지 않느냐라고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마침 우연히 이분들이 작년 9월 한국에 오셨던 거예요. 한국 떠난 지 48년 만에요. 이분들은 자기 아버지 오토 디캠프와 관련된 여러 군데를 찾아다니셨어요. 이분들은 CBS가 종로에 있는 거로 생각한 거예요. 예전에 종로 5가에 있었으니까요. 종로에서 한 무리의 미국인들이 길거리에서 헤매고 있다가 지나던 분의 도움으로 CBS가 목동에 있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작년 9월 CBS를 방문하신 거예요. 그리고 작년 12월 저희 창사 7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한 거죠. 그때 저희가 다큐멘터리를 한 일주일 동안 같이 찍게 된 거죠. 계엄 이후 사회적으로 어수선할 때 이분들이 한국에 오셔서 힘들게 촬영했었던 기억들이 납니다."
- PD님은 오토 디캠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어요?
"대부분의 저희 직원은 오토 디캠프라는 미국인 선교사가 CBS를 한국교회와 같이 설립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자세히는 몰랐죠. 이번에 제작하게 되면서 오토 디캠프라고 하는 분의 새로운 면모를 많이 알게 됐죠."
- 어떤 면이 새로웠나요?
"오토 디캠프도 굉장히 한국을 사랑하고 또 한국의 언론이나 선교에 큰 공헌을 하셨죠. 특히 CBS가 진실 보도의 저널리즘 만들어내는 데 엄청난 기여를 하셨던 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이런 건 저희 직원들뿐만이 아니라 CBS를 바라보는 많은 시·청취자들과 기독교계에 있는 많은 분이 아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게 됐어요."
- 오토 디캠프의 아들인 짐 디캠프씨가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모습으로 다큐가 시작하더라고요.
"일단 (지난해) 12월 4일 이분들이 입국했어요. 근데 그 전날 밤에 계엄이 터졌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촬영이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했죠. 다행히 계엄이 해제되면서 이분들이 입국하는 걸 찍을 수 있었어요. 인디애나폴리스에 사시는 분들인데 중간 기착지가 미니애폴리스였다고 해요. 그 공항에서 방송의 헤드라인 뉴스가 한국의 계엄 뉴스였고요. 이분들도 불안해 하면서 한국에 입국하셨던 거죠. 만나서 그 이야기를 했어요. 방송 보면 4·19 당시 CBS 활약이 중요한 이야기로 들어가 있거든요. 짐 디캠프 목사님도 자기가 어렸을 때 4.19를 경험한 거예요. 이분이 4·19 얘기도 해 주셨어요. 그런 이야기들이 CBS와 디캠프의 이야기들을 끌어 나가는 데 도입 부분으로서 모티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 오토 디캠프 고향이 한국이더라고요.
"맞아요. 오토 디캠프의 아버지가 알렌 포드 디캠프인데 1910년 한국에 오셨어요. 그래서 코리안 미션 필드라는 당시에 선교사들이 서로 보고 기고하는 잡지의 편집장을 하셨고 문서 선교를 주로 하셨죠. 때문에 1911년에 오토 디캠프가 한국에서 태어나게 된 거죠."
- 오토 디캠프는 신사 참배 문제로 서대문 형무소에 투옥되기도 했잖아요.
"여러 기록이나 당시 디캠프의 소회를 보면 어쨌거나 오토 디캠프가 (선교사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굉장히 보수적인 토양에서 공부해서 보수적인 선교사였던 걸로 보여요. 때문에 꼭 정치적인 저항으로 한 것 같지는 않고 신앙적인 차원에서 저항했을 거예요. 근데 이후에 한국에서 4·19 보도나, 박정희 정권의 여러 가지 압력 때문에 대표 자리에서 해임됐고요. 오토 디캠프가 부당한 국가 권력의 압력에 맞서 신앙적인 양심으로 계속 저항하고 바른 소리를 냈던 것이 큰 흐름 같아요. 그래서 신사를 철거했던 모습들도 하나의 신앙적인 발로, 그리고 그것이 시스템에 대한 정의의 문제로까지 나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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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BS 초대 사장 오토 디캠프 (1911~2001) |
ⓒ CBS 제공 |
- 추방된 오토 디캠프 선교사는 어떻게든 한국에 다시 오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방송 선교였나요?
"이분이 1943년부터 1946년까지 미군 군목 생활을 하셨는데 그런 와중 한국이 해방됐잖아요. 국제선교협의회 인터내셔널 미셔너리 카운슬이라는 단체가 있어요(기자주-약칭 IMC). IMC에서 2차 대전 후 각국에 라디오를 통해 미디어 선교를 하려고 했어요. 한국에서도 이걸 하고 싶어서 당시에 한국 기독교연합회(현 NCCK)에 '방송 선교를 우리가 지원해 줄 테니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거죠. 미국 교회가 아무래도 재정적으로 토대가 돼 있으니까 미국 교회 협의회의 라벰코(RAVEMCCO / 미국 NCC 산하 시청각교육위원회)라고 하는 음영 위원회에서 지원하기로 했고 오토 디캠프와 연결된 거죠. 북장로교 소속 목사였던 디캠프가 파견돼 한국으로 오게 된 거죠."
- 처음에 CBS는 독자적인 보도 활동을 하지 않았나요?
"1949년 허가 받을 당시 '시사 뉴스'라고 보도기능도 허가받았는데 1958년까지는 '독자적인 보도 활동'을 하지 않았고 KBS뉴스를 받아서 방송했어요. 1958년부터 통신사 뉴스를 받아서 자체보도 했고, 조직은 4.19 이후 보도계를 처음 만들었고요. 4.19 이전에는 기자라는 직군이 없었던 거죠."
- 그전까진 종교 방송 역할만 한 건가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당시 사회적인 분위기는 KBS만 방송으로 존재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국영 방송이 재미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좀 더 방송이 재미있고 대중적인 방송을 원했고요. CBS에게도 일반인들도 함께 들을 수 있는 방송을 해주길 원하는 요구가 있었어요. 당시 KBS가 <청실홍실>이란 드라마할 때였는데 CBS도 1957년도에 <수정탑> 같은 라디오 드라마로 큰 히트를 쳤죠. 또 오토 디캠프가 미국에서 LP판을 굉장히 많이 들여와서 계속 클래식 음악 방송을 했는데 청취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당시 CBS 청취자들의 한 70%는 비기독교인들이었다는 청취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 CBS는 개국할 때부터 선교만 목적이 아니었던 거 같아요.
"맞습니다. 1954년 12월 15일에 창사 봉헌 예배에 대한 기록이 있거든요. 거기 보면 여러 목사들과 오토 디캠프 사장의 당시 취임사를 볼 수 있어요. 강조되는 건 대북 선교, 그리고 당시 반공이라든가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했는데 한경직 목사님 같은 경우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도구로서 CBS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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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민 CBS PD가 인터뷰 하고 있다. |
ⓒ 이영광 |
- 그렇다면 CBS가 달라진 계기가 있었나요? 4.19가 중추적인 역할을 한 것 같아요.
"CBS가 4.19 보도할 당시 유명한 사진이 있어요. 당시에 종로 2가 CBS 사옥 옥상에서 내려다보면서 중계한 거였거든요. 시위대가 종로 일대에 많이 모여 있었으니까 직접 그 현장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었고요. 1960년 저희 CBS 사업 보고서가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정규 편성 중단하고 모든 직원을 다 이 특집 보도에 투입한다는 방침이 있었어요. 오토 디캠프 국장 이하 모든 간부가 숙직하면서 뉴스 제작을 지휘하고 공정한 언론으로서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까지 세운거죠. 당시 국영방송 같은 경우 정부 입장을 대변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하는 CBS에 다이얼을 맞추고 계속 현장 상황들을 들은 거죠. 60년대 여러 신문 기사나 방송 잡지를 보면 CBS 민영 방송의 활약이 매우 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2025년을 사는 언론인이 오토 디캠프 선교사에게 본받을 점이 있을 것 같아요.
"4·19 당시에만 해도 NCC조차 이승만 정부를 지지하는 상황이었는데 (기독교방송인) CBS가 그 상황에서 진실 보도를 한거죠. 어떻게 보면 이승만 정부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됐다는 건 굉장히 힘든 선택이었거든요. 저는 오토 디캠프가 결코 진보적인 인사라고 보지 않아요. 보수적인 신앙인이었어요. 근데 보수 신앙으로서의 신앙적 양심의 발로가 이러한 부정의에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거죠. 그런 그의 인생 여정이 CBS 역사와 함께 오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우리 회사의 설립자여서뿐만 아니라 방송사의 후배로서 감사할 수밖에 없는 거죠."
- 이 다큐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이게 단순히 오토 디캠프 개인에 대한 역사 그리고 CBS 방송국만의 역사가 아니에요. <디캠프> 다큐멘터리는 당시 한국에 있어서 선교의 역사 그리고 해방 이후 방송의 역사, 또 70년대 이후에 CBS와 교회 민주화 운동이 함께 했던 사회 운동사의 역사 같은 것들이 포괄적으로 담고 있어요. 특히 기독교인 시청자들이 진짜 보수 신앙이라는 게 무엇인지 오토 디캠프의 생애를 통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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