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 매니아로 알려진 정몽원(왼쪽 셋째) HL그룹 회장과 홍인화 여사와 함께 안양빙상장에서 선수들과 대화를 나눴다 [사진 HL그룹]
“2022년 5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참석하려고 북극 상공을 지날 때였다. 핀란드 승무원이 ‘한국인이 탐페레에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물었다. ‘아이스하키 관련 상을 받으러 간다’고 하니 ‘한국도 아이스하키를 합니까’ 되물었다. 우리는 죽어라 고생해서 2017년 월드챔피언십과 2018년 평창올림픽에 출전했는데, 한국아이스하키는 작은 성취를 이뤘을 뿐 성공과는 거리가 멀구나라고 느꼈다.”
지난 4일 서울 잠실 HL그룹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정몽원(69) HL그룹 회장이 최근 펴낸 에세이 제목을 『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로 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스하키 마니아’로 유명한 정몽원 HL 그룹 회장이 자신의 30년 빙판 인생을 담은 에세이『한국도 아이스하키 합니다』를 펴냈다. [사진 HL 안양]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 불모지 한국에서 ‘귀인’ 같은 존재다. 1994년 HL 안양 아이스하키단을 창단해 30년간 구단주를 맡았고, 2013년부터 8년간 대한아이스하키 협회장을 지냈다. 정 회장은 “HL 안양(당시 만도 위니아)이 1990년대 중반 캐나다 벨빌에서 피자배달원과 소방관으로 구성된 동호회팀에 크게 져서(1-8 대패) 부끄러운 시절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한국 아이스하키대표팀은 2018년 세계선수권 톱디비전으로 승격해 세계 1위 캐나다 국가대표를 상대할 만큼 상전벽해했다.
정 회장은 2016년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 출신 백지선(영어이름 짐 팩) 감독을 한국에 데려오기 위해 그의 와이프까지 직접 설득했다. 정 회장은 “디트로이트 HL 사무실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지역에서 백 감독이 코치를 맡고 있었다. 정월대보름 행사를 열고 아내를 초청해 떡국을 먹으며 마음을 돌렸다”고 전했다. 처음엔 한국행을 반대했던 백 감독의 아내는 나중엔 봉사활동에서 만난 한국 아이를 입양했다는 후문이다.
HL 안양은 지난 5일 아시아리그 최다인 9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정 회장은 지난 3일 파이널 경기가 열린 안양빙상장에 2010년 첫 우승 당시 기념모자와 유니폼, 팀 상징색인 파랑 속옷까지 챙겨 입고 갔다. 기업 총수인데도 체면을 내려놓고 관중석에서 응원 율동까지 따라할 만큼 진심이다. 정 회장은 “하도 옆 사람들이 열심히 해서 함께했다. 아내는 ‘남들 보기에 이상하다’고 말렸지만 선수와 한 마음이 된다는 생각에 열심히 했다”며 웃었다. 사실 아내 홍인화 여사는 TBC 아나운서 출신이라 평소 교양 넘치지만 하키장에서는 정 회장보다 더 열정적이다. 정 회장과 홍 여사는 지난해 12월 ‘HL 안양 30주년 기념식’이 끝난 뒤 엘리베이터 앞에서 선수 한명한명과 악수하고 90도로 인사하며 배웅하기도 했다.
달튼과 주먹 인사를 나누는 정몽원 HL그룹 회장. [사진 HL그룹]
한라그룹은 1997년 IMF 외환위기에 핵심 사업체를 잃었지만, 선수들이 1998년 코리아리그에서 우승하는 것을 보고 아이스하키팀은 해체 대신 존속을 결정했다. 정 회장은 “지금도 어려울 때마다 그 때를 생각하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정 회장의 아이스하키에 대한 열정은 HL그룹의 미래 사업핵심파트인 자율주행차량에 하키(Hockey), 순찰 로봇에 골리(Goalie)라고 이름 붙인 것에서도 느낄 수 있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는 과감하게 룰을 변경하고 스피드가 빠른 종목이다. 요즘 같은 예측불허 시대에 기업도 고객 대응·제품 개발·의사결정까지 ‘빨리빨리’ 기민하게 움직이고 선택과 집중을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이스하키 매니어 정몽원 HL그룹 회장. [사진 HL 그룹]
정 회장은 평창올림픽 당시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여자 남북단일팀 결성도 이끌어냈다. 정 회장은 “북측이 협상 끝에 경기당 3명씩만 알아서 내보내라고 했다. 북한 선수 12명이 스틱 한 자루, 스케이트 한 켤레도 안 가지고 빈손으로 내려와 당황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 업체들이 장비를 못 보내줬다”며 “아이스하키 장비는 길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고 발도 아플텐데도 북측 선수들이 너무 좋아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 때문에) 올림픽이 끝난 뒤 장비를 못 가지고 올라갔다. 정이 들어 북측으로 떠나기 전에 모두 모여 회식한 자리에서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렀다”고 말했다.
정 회장이 대한아이스키협회장에서 물러난 뒤 한국남자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지난해 3부리그까지 떨어졌다. 정 회장은 “아이스하키와 연을 맺은 지 30년이 지났지만 아직 비인기 종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하키 팬이 한 명이라도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에 책을 쓴 거다. 얼마 전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과 당구를 쳤는데, 당구는 건물마다 당구장이 있지만 아이스하키는 시설이 부족하고 접근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거인의 어깨 위에서 출발해야지, 발바닥에서 출발하면 너무 힘들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구든 골프든 강자와 붙어 깨져야 실력이 는다. 선수들의 해외 진출도 이어가야 한다. 그래도 올림픽 유산으로 ‘하키 키즈’가 늘었고, 이들이 스틱을 놓지 않도록 대학팀이나 성인팀이 생기고 상무팀도 부활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