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쌍의 초파리가 짝짓기를 하고 있다. Anna Schroll 제공
술을 마신 수컷 초파리가 더 매력적으로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인간 사회에서 지나치게 술을 마시고 심지어 좋지 못한 '주사'가 있는 남성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초파리 세계에서는 알코올이 매력도를 높이는 도구로 작용하는 것이다.
빌 한손 독일 막스플랑크화학생태학연구소(MPICE) 진화신경생물학부장 연구팀은 알코올 성분 중 하나인 메탄올이 수컷 초파리의 성 페로몬 분비를 증가시켜 암컷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든다고 3일 밝혔다. 연구 결과를 담은 논문은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2일(현지시간) 게재됐다.
초파리는 여름철 과일 상자나 음식물 쓰레기통 주변에서 쉽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초소형 곤충이다. 특히 잘 익거나 부패 직전의 과일에서 발생하는 알코올 냄새에 강하게 모여드는 습성이 있다. 과일이 발효되면서 효모가 증식하면 에탄올과 메탄올을 비롯한 다량의 알코올을 생성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수컷 초파리의 행동 변화를 관찰하며 알코올 섭취가 생식 행동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분석했다. 실험 결과 알코올을 섭취한 수컷 초파리는 섭취하지 않은 개체에 비해 성 페로몬을 더 많이 방출했다. 성 페로몬은 암컷 초파리의 관심을 끄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짝짓기 성공률도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됐다.
짝이 없는 수컷일수록 알코올에 강하게 끌리는 경향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무작정 알코올을 향해 날아드는 것은 아니다"라며 "초파리의 뇌는 알코올 농도를 분석해 이 냄새가 매력적인 수준인지, 중독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농도인지를 판단하고 행동을 조절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알코올에 대한 반응을 조절하는 세 가지 신경 회로를 초파리 뇌 속에서 확인했다. 그 결과 두 개의 감각 입력 경로는 각각 에탄올과 메탄올에 반응해 알코올에 끌리는 작용을 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하나의 회로는 특정 농도 이상에서는 강한 거부 반응을 유도하는 역할이 확인됐다. 이 세 가지 회로가 서로 균형을 이루면서 초파리는 알코올 섭취의 이점은 누리되 중독의 위험은 피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하나의 냄새에 대해 서로 반대 작용을 하는 신경 경로가 동시에 존재하고 그 균형을 조절해 행동을 결정하는 경우는 생태계에서 매우 드물다"며 "생존에 유리한 자극을 활용하되 위험은 회피할 수 있도록 진화한 정교한 신경 메커니즘의 사례"라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한손 부장은 “이번 연구는 화학, 생리, 행동, 생태학적 요소를 통합적으로 분석해 알코올 반응을 설명한 최초의 사례 중 하나”라며 “또한 동물 실험 모델에서 자연스러운 생태와 행동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참고 자료>
- doi.org/10.1126/sciadv.adi9683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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