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즉생' 삼성전자, 북미 스마트폰 새 판 짠다
프리미엄폰 강화 경영진단
'애플 천하' 깰 전략 마련
삼성그룹 감사·컨설팅 컨트롤타워인 삼성글로벌리서치 경영진단실이 북미 스마트폰 사업 경영진단에 들어갔다.
“사즉생의 각오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주문에 따라 주력 사업(스마트폰)의 핵심 시장(북미)에서 ‘필승 전략’을 찾기 위해 컨설팅에 나선 것이다.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경영진단실은 지난 1월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에 이어 지난달부터 북미 스마트폰 사업을 경영진단하고 있다. 북미 시장은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스마트폰 시장이자, 6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제품만 놓고 보면 세계 최대 시장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2월 출시한 세계 최초 ‘인공지능(AI)폰’인 갤럭시S24가 흥행하며 출하량 기준으로 지난해 애플(18%)을 누르고 세계 1위(19%)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매출 기준 점유율(15%)은 애플(46%)에 크게 밀렸다. 그만큼 저가폰 판매량이 많았다는 얘기다. 삼성전자는 샤오미 등 중국 업체가 치고 들어오는 저가폰보다 수익성이 좋은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는 게 낫다고 판단해 경영진단실과 함께 해법 찾기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경영진단실은 6개월가량 종합 컨설팅을 통해 북미 시장에서 애플과의 격차를 좁히고 ‘AI폰 1위’ 자리를 굳힐 마케팅 및 판매 전략을 마련할 계획이다. 컨설팅에서 지적한 개선사항은 차기 프리미엄 폰 전략에 반영할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는 이 회장이 ‘위기’를 거론하며 비상 경영 의지를 밝힌 만큼 진단 결과에 따라 큰 폭의 사업 계획 수정 등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것으로 관측했다.
DX부문도 '현미경 진단'…북미 스마트폰 새판짜기
갤S24 출시 후 역대급 프로모션…美법인매출 2년새 6조 넘게 감소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애플의 위상을 보여주는 몇몇 수치가 있다. 먼저 출하량. 삼성은 지난해 글로벌 시장 점유율 19%로 애플(18%)을 누르고 세계 1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매출로 보면 삼성은 더 이상 애플의 적수가 아니다. 삼성의 매출 기준 점유율(15%)은 애플(46%)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600달러가 넘는 프리미엄폰 시장은 ‘애플 천하’라는 얘기다.
삼성글로벌리서치 경영진단실이 스마트폰사업을 담당하는 삼성전자 디지털솔루션(DX) 부문의 첫 감사·컨설팅 대상으로 북미 스마트폰사업부를 찍은 이유다. 세계에서 프리미엄폰이 가장 많이 팔리는 북미 시장에서 밀리는 이유를 알아야 개선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시장에선 삼성이 프리미엄폰 시장에서 애플 추격 전략을 짠 다음에는 중국 업체들에 따라잡힌 중저가폰 시장 수성 방안 마련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AI폰 선점에도…애플 매출의 20%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에서 프리미엄 시장과 중저가 시장을 모두 겨냥하는 ‘투 트랙’ 전략을 쓰고 있다. 최고 성능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장착한 S시리즈와 여기에 폴더블 기능까지 넣은 Z시리즈가 프리미엄 시장을 겨냥한 모델이라면 이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A시리즈는 중저가 시장을 노린 모델이다. 삼성은 투 트랙 전략으로 시장을 잘 방어한 덕분에 아직 ‘챔피언’ 타이틀을 지키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저가 시장에선 ‘가성비’를 앞세운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에 점점 밀리고 있고 프리미엄 시장에선 애플과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서다. 업계에선 삼성과 중국 업체 간 기술 격차가 거의 사라진 반면 가격 차는 여전하다는 점에서 삼성의 영토가 붉게 물드는 건 시간문제로 본다.
“삼성이 가야 할 길은 죽으나 사나 프리미엄 시장”이란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미국 2030 세대를 사로잡은 ‘애플 제국’을 흔드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애플이 ‘스마트폰의 미래’로 불리는 AI폰을 삼성전자보다 훨씬 늦게 냈는데도 시장 점유율은 요지부동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실적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 매출은 지난해 117조원으로 애플(574조원)의 5분의 1에 그쳤다. 영업이익 차이는 17배(삼성 MX사업부 10조6000억원, 애플 180조원)에 이른다. 더구나 삼성전자 MX사업부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정체 상태다.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미국법인(SEA) 매출은 2022년 46조7400억원에서 지난해 40조6000억원으로 뒷걸음질쳤다.
◇프리미엄폰 판매 확대 주력
경영진단실은 삼성 스마트폰의 힘이 빠진 이유와 개선 방안을 찾는 데 역량을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뉴저지총괄법인과 텍사스댈러스통신법인 등을 둘러보며 북미 마케팅과 영업 전략 등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갤럭시S24 시리즈와 갤럭시Z 폴드·플립6 시리즈 등 프리미엄 제품 판매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비를 대폭 늘렸지만 애플의 아성에는 별다른 흠집을 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엔 미국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와 주요 판매 사이트에서 20~30% 세일을 했지만 ‘반짝 효과’에 그쳤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기술력과 파격적인 마케팅에도 실제 판매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삼성이 작년 말 인사에서 ‘AI폰 마케팅’을 지휘해 성과를 낸 정윤 MX사업부 전략마케팅실장(부사장)을 북미총괄로 옮긴 것도 이런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의 ‘현미경 진단’을 통해 삼성 스마트폰이 좋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판매로 연결되지 않는 원인을 찾기로 한 것”이라며 “북미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면 다른 나라 판매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단이 마무리되면 삼성전자 북미 스마트폰사업 전략에 상당한 변화가 있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김채연/황정수/박의명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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