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탄핵정국 後 점검해야 할 이슈
제1편 상법 개정안에 숨은 함의
상법 개정, 경영판단 등에 영향 없어
법원이 이사 충실의무 좁혀서 판결
당연히 도출돼야 할 주주 보호 외면
상법 개정으로 총수 사익 견제하고
계열사 경영진에 책임 물을 수 있어
탄핵정국 후 경제는 어디로 갈까. 신중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사진 | 뉴시스]
# "정의가 지연되면, 더 이상 정의가 아니다"는 말은 너무 많이 회자돼 이젠 근원을 찾기도 힘들다. 지난해 12월 3일 이후 올해 3월 셋째주까지의 기간은 어떨까. 정의는 얼마나 더 지연될 것인가, 시간이 더 필요한 걸까. 알 수 없다. 탄핵 정국에서 우리는 정의의 개념부터 실현, 그 기간까지 합의에 성공한 게 없다.
# 탄핵 후 점검할 문제도 마찬가지다. 상법 개정도, 밸류업 이슈도 '논박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어떤 논리가 합리적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를 검증해야 할 때다.
#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상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를 살펴봤다. 2편에선 우리의 밸류업 정책이 왜 성과를 내지 못했는지를 짚었다. 낙수효과 등 여전히 합의를 이루지 못한 경제 이슈들을 순차적으로 다뤄볼 계획이다.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지적했듯 우리 경제는 '창조적 파괴를 위해서 반드시 겪어야 할 사회적 갈등'을 회피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새로운 산업은 나타나지 않고, 기존 산업은 저물어가고 있다. 한국경제의 미래 먹거리를 찾는 일만은 더 이상 지연해선 안 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지난 3월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상법 일부개정법률안 가결을 선포하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바꾼 상법 개정안이 지난 3월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이들은 "상법 개정은 애초에 불필요한 일이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는 앞뒤가 뒤바뀐 얘기다. 일본 등 여러 나라의 법이 이사(경영진)의 회사 충실의무만을 명시해놓은 건 맞다. 하지만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라고 표기했더라도 법체계상 그 의무는 당연히 주주로까지 확대된다. 탄핵 後 점검해야 할 이슈 1편 '상법 개정'이다.
우리나라 법원은 현행 법체계에서 당연히 도출돼야 할 이사의 충실의무를 줄기차게 회사로만 축소 적용해 왔다. 법원은 정말 끈질기게도 이사의 충실의무가 지배주주가 아닌 다른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것을 방해했다.
이를테면, '1+1'이란 수식을 보고 모든 사람이 현실에서 사용하는 십진법으로 이해해 그 답을 '2'라고 하는데도, 유독 우리 법원은 "1+1은 이진법상 10"이라는 식으로 판결해 왔다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법원이 상식에 부합하는 판결을 내려왔다면, '상법 개정' 같은 건 필요 없는 일이었다.
사법부의 스텝이 꼬이기 시작한 건 2009년 '경영진이 회사에는 충실해야 하지만, 주주들에게는 충실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개발하면서다. 대법원은 삼성에버랜드 경영진이 전환사채(CB·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발행한 행위가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기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일 뿐이지 회사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바꿔 말하면, 이런 판례가 꾸준히 나온 덕분에 입법부는 재계와 16년간의 갈등을 겪으면서도 상법에 '주주'를 넣는 데 성공했다. 그대로 두기엔 상식과 너무나 위배하기 때문이다.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강요받고 있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조차 2021년 한 책자에서 "이사는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해 신인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3월 17일 "최 대행이 집필한 「경제정책 어젠다 2022」 4장 '공정-기업 지배구조 혁신과 공정한 경제'에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고 보도했다.
배임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도 법무부장관 시절 국회에서 "삼성에버랜드 CB 사건 이후 주주 중심이 아니라 회사 중심으로 피해자를 봐야 배임죄로 (기소에) 성공할 수 있는 구도가 됐다"며 "대륙법 체계에서는 이 부분이 없다"고 답변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3월 13일 "주주가치 제고를 둘러싼 논의를 원점으로 돌리는 형태의 의사 결정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면서 최상목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직을 걸고서라도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대륙법계가 아닌 영미권도 주주의 이익과 회사의 이익을 특별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다.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 102조 b항의 내용은 대표적이다. "이사의 신인의무(충실의무+선관주의의무)를 위반해 금전적 손해가 발생했을 때 회사 또는 회사의 주주에 대한 이사의 책임 감면 규정을 (정관에) 둘 수 있다. 하지만 회사 또는 주주를 위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정관에 두지 않는다."
미국 모범 회사법 8.31항도 이사의 책임 기준 부문에서 "이사가 회사 및 그 주주를 공정하게 대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 이사는 관련법에 따라서 소송이 가능하기 때문에 회사 또는 주주에게 책임을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참고: 신인의무는 타인의 이익을 위해서 충실하고 성실하게 행동해야 하는 의무다. 선관주의의무는 재산을 관리하는 자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무를 말한다.]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해 명시해도 상법 개정에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처럼 경영 위축은 발생하지 않는다. 이사가 사업상 결과에 책임을 면제받는 경영 판단의 원칙은 '고의 또는 중과실'이 있는 경우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진이 고의로 중대한 과실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개정 상법에 의해서도 경영자의 의사결정 권한은 제한받지 않는다.
사실상 유일한 변화는 재벌 총수와 같은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높여주던 경영 편법이 제한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 합병의 대부분은 다른 회사를 합병하는 게 아니라 계열사 간의 합병인데, 이 경우 합병 비율 산정이 총수의 지분율을 높여주는 쪽으로 결정돼 왔다.
제3자 배정 신주나 CB 등을 발행할 때도 지금까지는 상법 418조 2항에 따라서 '회사 경영상 필요시'라는 조건만 충족하면 총수의 지배력을 높이고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해도 합법이었다.
중복상장은 총수의 의결권과 재산을 불려주던 여러 편법 중 하나에 불과하다. 상법 개정안은 이런 지배주주 사익 추구에 회사 경영진을 동원하는 것을 막고, 손해배상까지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법무부 장관 시절
입증 의무가 바뀌는 것은 또 다른 중대 변화다. 지금까지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입증하는 책임은 문제를 제기한 주주에게 있었지만, 이제는 회사와 경영진이 이를 입증해야 한다. 경영진이 주주를 보호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회사 경영진의 입증 책임은 자신이 속한 회사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 회사가 소속된 기업집단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총수의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희생된 계열사 소액주주들에게까지 이사의 충실의무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업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봉건적으로 희생되는 계열사가 이제 나오기 힘들어진다는 뜻이고, 각 상장 계열 소액주주의 이익도 지켜진다는 뜻이다. 거부권에 막히든 또 어떤 장애물이 나타나든 상법 개정안을 계속해서 밀어붙여야 하는 이유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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