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기각 5·각하 2·인용 1
주요 쟁점에 "중대한 헌법·법률 위반 아니다"
탄핵 의결정족수엔 "문제 없다"
헌법재판소가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을 기각했다. 국회가 제시한 탄핵 사유가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이라는 탄핵 요건에 맞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한 총리는 이날 헌재 결정과 동시에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직에 복귀했다. 지난해 12월27일 국회가 탄핵안을 의결한 지 87일 만이다. 이로써 3개월 가까이 이어진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는 종료됐다.
연합뉴스
8인의 헌재 재판관들은 이날 기각 5명, 각하 2명, 인용 1명 의견으로 한 총리 탄핵안을 기각했다. 기각과 각하의견이 대다수인 7명에 달한 것이다. 우선 이번 탄핵심판의 전제가 되는 의결정족수와 관련해 재판관 6명이 "문제없다"고 했다. 국회는 한 총리 탄핵안 가결당시 대통령의 탄핵소추 기준에 해당하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200명)을 적용하지 않고 일반 국무위원 탄핵 요건에 해당하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151명)를 적용했다. 이 부분이 부적합했다고 본 재판관은 정형식·조한창 재판관 등 2명이었다.
탄핵안 의결 자체는 적법하다고 본 재판관 6명은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에 적용되는 의결정족수는 피청구인의 본래 신분상 지위인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인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이라고 했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 시 권한대행의 탄핵 요건과 관련한 새로운 기준을 세운 셈이다.
이들 6명의 재판관 가운데 정계선 재판관(인용의견)을 제외한 5명의 의견은 모두 기각 의견이었지만 세부 의견은 4대 1로 갈렸다. 문형배·이미선·김형두·정정미 재판관 등 4명은 "한 총리 탄핵소추 사유 중 특별검사 임명 법률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 관련, 비상계엄 선포 및 내란행위 관련, 공동 국정운영 관련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 의뢰 관련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부분은 "헌법과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했다. 다만 "그 위반이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통해 간접적으로 부여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일부 헌법과 법률 위반이 있었지만 파면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김복형 재판관은 "피청구인의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도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탄핵 사유 모두 위법이 아니어서 잘못이라고 본 것이다. 각하 의견을 낸 정형식·조한창 재판관은 "대통령 권한대행 중인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에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요구되므로 이 사건 탄핵심판 청구는 헌법이 정한 탄핵소추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해 부적법하다"고 했다. 유일하게 한 총리를 파면해야 한다고 본 정계선 재판관은 "탄핵소추 사유 중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 의뢰 및 헌법재판관 임명 부작위와 관련해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반이 인정되고 위반의 정도가 피청구인의 파면을 정당화할 수 있을 정도로 중대하다"고 밝혔다.
앞서 국회는 작년 12월27일 ▲12·3 비상계엄 내란 행위 공모·묵인·방조 ▲김건희 여사 특검법 및 채상병 특검법 거부 ▲한동훈·한덕수 공동 국정운영 발표 ▲내란 상설 특검 임명 회피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등 사유로 탄핵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이에 맞서 지난달 19일 열린 탄핵심판 최종 변론에서 국회의 주장을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탄핵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핵심 쟁점 중 하나인 ‘12·3 비상계엄 내란 행위 공모·묵인·방조’와 관련해선 "여야의 극한 대립 속에 행정 각부를 통할하며 대통령을 보좌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으나 대통령이 다른 선택을 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며 "비상계엄에 대해 사전에 알지 못했고, 군과 경찰을 동원하는 일에도 일체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재판관 후보자 3인을 임명하지 않은 것과 관련해서도 "여야 합의 없는 재판관 임명은 전례가 없다"고 했다.
탄핵소추 후 직무 복귀 9명으로 늘어나
이날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현 정부 공직자 가운데 탄핵소추됐다가 직무에 복귀한 공직자는 모두 9명으로 늘어났다. 헌재는 2023년 7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심판에서 "재난안전법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며 재판관 전원일치 기각 결정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5월 ‘유우성씨 보복 기소 논란’으로 탄핵된 안동완 검사에 대해 재판관 5대 4 의견으로 역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어 지난해 8월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수사했던 이정섭 검사에 대해 "탄핵은 부적법하고 사유가 특정됐다고 볼 수 없다"며 전원일치 기각 결정을 내렸다. 가장 최근인 올해 1월에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재판관 4대4 의견으로 탄핵 기각 결정을 했다. 지금까지 국회가 탄핵소추한 윤석열 정부 주요 공직자는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해 13명인데, 24일까지 탄핵심판 선고가 나온 9명 모두가 탄핵이 기각돼 공직에 복귀한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는 빨라도 이번주 후반일 가능성이 크다. 헌재는 이틀 연속 선고한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일인 26일은 전국단위 고교생 모의고사가 실시되는 날이어서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의 후폭풍을 알고 있는 헌재가 이날을 선택할 가능성은 아무래도 낮다는 게 대체적이 시각이다. 또 헌재는 통상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 헌법 소원 등 일반 사건 선고를 해왔다. 통상의 스케줄에 따르면 28일은 일반 사건 선고가 이뤄지는 날이 된다.
‘한덕수→이재명→윤석열’로 이어지는 ‘사법 슈퍼위크’를 앞두고 지난 주말에도 윤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찬반 집회가 도심 곳곳에서 진행됐다.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지난 22일에는 양측에서 약 7만여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또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산하 ‘전봉준 투쟁단’이 오는 25일 트랙터 상경 집회를 다시 예고한 가운데,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맞대응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경찰은 물리적 충돌 등을 우려해 집회 금지를 통고했다. 탄핵심판 선고가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진영간 세 대결 양상도 갈수록 격화되고, 여야 의원들도 장외 총력전을 벌이는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헌재 앞에서 탄핵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이어가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이날부터 헌재 인근인 서울 광화문에 천막 당사를 짓고 윤 대통령 파면 때까지 상주하기로 했다.
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
염다연 기자 allsalt@asiae.co.kr
곽민재 기자 mjkwa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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