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T(테크) 사용설명서]
[편집자주] 조금만 알면 세상이 훨씬 편리해집니다. IT 초짜 기자의 눈높이에서 제시하는 쉬운 테크 사용설명서입니다.
전한길 유튜브 캡처. 그의 공식 메일이 아직 한메일이다./사진=유튜브 캡처
"한메일, 아버지 나이대에서 쓰는 거 아닌가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입니다. '일타강사'보다 '탄핵 찬성집회 선봉장'으로 더 유명해진 전한길씨의 메일 계정이 한메일인 것도 더불어 화제가 됐습니다.
쉽게 말해 '한물갔다'는 인식이 있는 거죠. 이는 카카오가 다음(DAUM)을 분사하고 매각 수순을 밟으려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지금은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2000년대 초반, 다음은 한국 포털계를 호령하는 최강자였습니다. '국민 메일'로 명성을 날린 한메일 덕분이었죠. 네이버가 지식인 서비스로 치고 올라올 때도 '한메일은 못 이긴다'는 인식이 공고했거든요. 그래서 중소 IT 벤처 취급을 받던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할 때 다들 놀랐어요. 새우가 고래를 삼킨 느낌이었거든요.
다음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요. 지금은 쏘카의 창업주로 더 유명한 이재웅 대표가 쏘카보다 먼저 만든 이 회사, 다음의 흥망성쇠에 대해 알려드립니다.
이재웅 쏘카 창업주이자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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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카카오서 분사해도 이메일·카페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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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이미지/사진=머니투데이 DB
카카오는 지난 13일 콘텐츠 사내독립기업(CIC)인 다음을 분사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2014년 합병 후 11년 만입니다. 분사하면 다음 카페나 이메일은 어떻게 되는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카카오 측은 일단 분사하고, 추후 지분 일부를 팔 수도 있다고 여지를 뒀습니다. 일단 카카오는 한 몸통처럼 돼 있던 회사를 따로 뗀다는 거지, 문을 닫겠다는 건 아니에요. 이메일이나 카페 서비스도 그대로 유지됩니다.
그런데 왜 노동조합이 반대 기자회견까지 했을까요? 카카오 노조인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는 지난 19일 "노동자 총 1000명을 고용불안에 빠뜨릴 것"이라면서 분사를 반대했습니다.
민주노총 산하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크루유니언)가 지난 19일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 앞에서 '콘텐츠 CIC' 분사매각 철회와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뉴시스
시너지를 얻기 위해 통합했던 회사를 다시 나누는 것은 번거로운 작업입니다. 시간도, 돈도 듭니다. 그렇지만 이점이 있습니다. 카카오와 다음, 각각의 회사 가치를 따져보기에 훨씬 쉽고, 분리돼 있어야 추후 매각하기도 쉽습니다. 분사를 사실상 매각 수순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매각하면 다음을 관리하던 직원들은 고용 불안정에 시달릴 수 밖에 없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영리 기업이 이득을 추구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게 대한민국의 IT 역사에 획을 그은 기업이라면 아쉽긴 합니다. 다음과 얽힌 추억이 한국인이라면 하나씩은 있을 겁니다. 한국에서 '포털사이트' 개념을 최초로 도입한 회사가 네이버가 아닌 다음(옛 한메일넷)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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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메일'이었던 한메일, 당시 점유율이 무려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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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메일은 1997년 5월 국내 최초로 무료의 이메일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저도 아주 어릴 때(?) 이메일 계정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했던 기억이 있어요. 최초이자, 유일한 이메일이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는 점유율이 70%에 달했습니다. '국민 메일'이라고 할 만하죠. 다음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것도 1999년입니다.
승승장구하던 한메일넷, 즉 다음 존재감이 어쩌다 이렇게 줄었을까요. 빼놓을 수 없는 사건이 '온라인 우표제'입니다. 두고두고 회자하는 아쉬운 정책이죠.
3년만에 폐지한 온라인 우표제/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IT 업계에는 '락인(Rock In) 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가 다른 곳으로 쉽게 이동하지 않는 현상, 즉 초기 시장 진입자가 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현상을 일컫습니다. 한메일넷은 이 '락인 효과' 덕에 2002년까지 승승장구해요. 2002~2005년 시행된 '온라인 우표제'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1위 메일과 포털이 한메일, 다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온라인 우표제'는 쉽게 말해 무료였던 이메일을 기업에 한해 유료로 전환한 것입니다. 대량 메일을 보낼 때 기업이 일단 유료로 결제하고, 수신자가 '정보성'이라는 버튼을 누르면 발신자가 낸 우푯값을 돌려주는 방식이었어요. 성인물 광고, 불법 대출 등 당시 난무했던 스팸 메일을 차단하겠다는 취지였지만, 결국 기업들이 번거로운 한메일 사용을 거부하면서 개인 이용자도 한메일을 외면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마침 네이버가 이때 '지식인'으로 빠르게 성장할 때여서 한메일의 악재는 네이버 가입자를 늘리는 풍선효과로 이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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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했어, 라이코스!" 승자의 저주에 시대 못 따라간 서비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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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는 또 있어요. 2004년 라이코스 인수 얘깁니다. 가수 엄정화와 검은색 레트리버가 광고에 출연해 "잘했어, 라이코스!"라는 당대 최고의 유행어를 만든 그 라이코스 맞아요. 그때 저렴하게 '줍줍'했다고들 했는데, 오판이었습니다.
과거 라이코스 CF 모습/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스마트폰 보급률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모바일 세상이 열리고 있었는데, 다음은 인터넷에 집중한 거죠. 시대착오적 판단을 한 것입니다.
라이코스를 인수하면서 '승자의 저주'도 찾아와요. 인수 자금에 9500만달러(한화 1390억원)를 쓰면서 곳간이 텅 빈 다음은 돈 안 되는 서비스는 하나둘씩 접습니다. 그중 하나가 미래 잠재 고객 확보에 도움이 되는 'Daum 꿈나무'라는 아동 서비스입니다.
네이버가 어린이 전용 포털 '쥬니어네이버'를 26년간 운영하다 올해 5월에 종료하는 것과 대조적이죠. 아동 서비스를 이어갔다면, 요즘 MZ세대들에 '한메일=꼰대' 이미지는 사라졌을까요? 궁금하네요.
다음은 이후 네이버의 이메일 용량 확대, 네이버 카페, 지식인, 밴드 등의 선전에 밀려서 서서히 쇠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2011년 '한메일'이라는 이름도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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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커뮤니케이션+카카오' 합병 후 다카오→카카오…다음 흔적 지우기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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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14년, 카카오와 M&A(인수합병)를 통해 다음카카오가 탄생해요. 이때 다들 놀랐어요. 당시 카카오는 중소 벤처회사 느낌이었거든요.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죠. 합병 구조를 보면 카카오가 다음 대비 약 1.5배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게 맞았죠. 최근 다음의 국내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은 심리적 저지선이었던 4%(연평균 기준)마저 무너졌습니다.
검색엔진 시장 점유율/사진=인터넷트렌드 캡처
웹 접속데이터 분석 사이트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2024년 1월 초 4.64%로 출발한 다음의 점유율은 지난해 말 2.98%까지 떨어졌습니다. 연간 평균치는 3.72%로 네이버(58.14%), 구글(33%)에 이어 3위입니다. 올해(1월1~3월20일)는 하락세가 더 심해서 시장 점유율(기간 평균)이 2.78%를 기록하는 데 그쳤어요. 마이크로소프트 빙(3.01%)보다 낮은 4위입니다.
카카오와 합병한 직후인 2015년 1월만 해도 10.8%로 시장 점유율이 두 자릿수였지만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어요. 일반인도 작가가 될 수 있는 '브런치스토리'와 이를 추천해주는 '틈'을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었는데 접속량이 늘지는 않네요.
이것만 보면 카카오의 다음 분리·매각 수순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기도 해요. 그렇지만 카카오가 다음을 활용만 하고 내치는 것 같다는 씁쓸한 뒷맛은 어쩔 수 없네요.
카카오는 다음을 인수해서 인지도 확대는 물론, 우회상장 효과를 톡톡히 누렸거든요. 애초부터 상장을 위해 인수했다가 목적을 달성하니까 2023년 다음 조직을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분리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제 분사하면 매각도 어렵지 않겠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소연 기자 nicks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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