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필의 미래창
홍차가 중금속 흡착력 가장 높고
티백 소재로는 셀룰로스가 좋아
끓인 물에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찻잎이 물에 함유된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을 빨아들여 걸러내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픽사베이
차는 커피와 함께 세계인이 가장 즐겨 마시는 대표적인 기호음료다. 한 추정에 따르면 전 세계인이 하루에 마시는 차는 50억잔에 이른다.
차를 즐겨 마시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차가 우러나올 때 찻잎이 중금속을 제거해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뜨거운 물로 차를 우려내는 과정에서 찻잎이 물에 함유된 납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을 빨아들여 걸러내준다는 것이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은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차를 우려낼 때 중금속 성분이 들어 있는 물에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실험한 연구 결과를 미국화학회(ACS)가 발행하는 ‘ACS 식품 과학 및 기술’에 발표했다.
실험에 사용한 차는 홍차, 백차, 우롱차, 녹차 등 전통적인 차와 카모마일, 루이보스 같은 허브차였다.
연구진은 납과 크롬, 구리, 아연, 카드뮴을 섞은 용액을 만든 다음, 물을 끓는 온도 바로 아래까지 가열했다. 그런 다음 찻잎을 넣고 몇초에서부터 24시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 동안 우려낸 뒤, 찻잎을 넣기 전과 후의 중금속 농도를 측정해 비교했다. 그 결과 찻잎을 우려낸 물에서 일제히 중금속 농도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주사전자현미경으로 300배 확대해 본 홍차 잎. 노스웨스턴대 제공
홍차 5분간 우려내면 납 15% 제거
중금속 제거 효과가 가장 뛰어난 것은 홍차였다. 연구진은 “찻잎에는 미세한 구멍이 있는데 홍차 잎을 볶을 때 잎에 주름이 지면서 구멍이 크게 열려 중금속 흡착력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국 브린모어대 미셸 프랑클 교수(화학)는 뉴욕타임스에 “찻잎에 있는 카테킨이라는 화합물도 납 분자를 흡착하는 벨크로(찍찍이)처럼 작용한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 홍차 한 잔을 5분간 우려내면 납을 15%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차도 홍차와 거의 비슷한 양의 중금속 제거 효과를 나타냈다.
반면 어린 싹을 따서 덖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백차는 잎이 매끈해 중금속을 흡착할 표면적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카모마일차도 중금속 제거 효과는 작았다. 이는 카모마일차가 차잎이 아니라 꽃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티백 소재를 뭘로 쓰느냐도 중요했다. 면과 나일론보다 셀룰로스 티백을 쓴 차가 효과가 좋았다. 흡착력을 좌우하는 것은 표면적이다. 금속 이온이 재료 표면에 달라붙는 것은 자석이 냉장고 문에 달라붙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입자가 달라붙을 수 있는 면적이 클수록 흡착 효과가 좋다. 연구진은 목재 펄프로 만든 생분해성 천연소재인 셀룰로스가 표면이 매끈한 합성소재보다 표면적이 더 크기 때문에 흡착 효과가 더 좋다고 설명했다. 논문 제1저자인 벤저민 신델 연구원은 “면과 나일론 티백은 중금속을 거의 제거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일론 티백은 이미 미세플라스틱 방출 등의 문제점이 지적돼 오늘날 대부분의 티백 소재로는 셀룰로스를 쓰고 있다. 신델 연구원은 “셀룰로스도 미세 입자를 방출하지만, 이는 우리 몸이 처리할 수 있는 섬유질”이라고 말했다.
면과 나일론 티백보다 셀룰로스(또는 종이) 티백이 중금속 제거 효과가 훨씬 좋다. 노스웨스턴대 제공
분쇄한 잎이 통잎보다 효과 커
잎을 그대로 쓰느냐 분쇄해 쓰느냐에 따라서도 효과가 다소 차이가 났다. 잘게 분쇄된 찻잎은 통잎보다 약간 더 많은 중금속을 흡착했다. 연구진은 이것 역시 표면적 차이에 기인한 효과라고 설명했다.
중금속 흡착 정도를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우려내는 시간이었다. 우려내는 시간이 길수록 더 많은 오염 물질이 제거됐다. 연구진은 “아마도 차를 밤새도록 우려낸다면 물 속에 있는 대부분의 중금속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려내는 시간이 길수록 쓰고 떫은 맛이 추가돼 차맛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차 한 잔을 우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3~5분이다. 연구진은 이 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면 중금속 흡착과 차맛 사이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의 결과가 찻잎을 정수 필터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차를 마시는 것은 중금속 관련 질병 위험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논문 정보
More information: Brewing clean water: The metal-remediating benefits of tea preparation, ACS Food Science & Technology (2025).
dx.doi.org/10.1021/acsfoodscitech.4c01030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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