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거부권 기준에 해당 안 돼…문제점은 제도로 보완해야"
금감원 "주주 충실 의무는 글로벌 스탠다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주요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2025.3.19/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박승희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국회 문턱을 넘은 상법 개정안의 재의요구권(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반대하며 재계에 끝장 토론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법률안 거부권은 헌법 질서에 반하는 경우에 작용해야 하는데, 상법 개정은 이에 해당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금감원도 "주주 충실 의무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이 원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이 원장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기자 간담회를 열고 "재의요구권이 행사될 만한 것은 헌법 질서에 반하거나, 보충성의 원칙 등에 비춰 수용 곤란한 점이 아주 명백한 경우"라며 "상법 개정은 그런 이슈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 13일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과거 한국 상법은 회사라는 법적 주체만을 중심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를 규정해 왔으나, 이번 개정안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 등)은 '주주'를 명문화해 경영진과 지배주주가 일반주주의 이익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법적 책임의 범위를 명확하게 했다.
남은 관건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 대행의 재의요구권 행사 여부다. 여당과 재계는 최 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이 원장은 앞서 재의요구권 행사 거부에 "직을 걸겠다"고 밝히며 상법 개정안 시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이 상법 개정안 시행에 적극적으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꼭 필요하단 것이 이 원장 입장이다. 그는 "상법 개정 이슈는 자본시장법과의 데칼코마니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아울러 "재의요구권은 대통령의 권한으로 여당, 주무 부처, 법무부 의견이 전부 중요하고 경제 부처도 의견을 낼 수 있다"며 "금감원만 의견을 내지 말라 이런 것들은 그 자체가 월권이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이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이동근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 정우용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부회장 등 참석자들과 상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를 건의하는 경제8단체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2025.3.19/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이 원장은 "저는 자본시장 선진화와 관련돼서 모든 것을 걸고 험한 길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법 개정과 관련해)한국경제인협회에 공개적인 열린 토론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무엇을 걸 것인지 이야기를 나눠보자는 것"이라며 "어떤 부작용이 있고, 어떻게 추진해야 하는지 국민 앞에 논의하는 자리가 보다 건설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재계가 우려하는 지점에 대해서는 제도 보완으로 반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금까지 온 마당에 부작용 완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과도한 형사화 방지 장치, 합리적인 절차 기준 마련, 보호 제도 강화 등 부정적 측면 완화 제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전날 국회 정무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서도 "올바른 선택이 아니더라도, 이미 위험한 도로를 한참을 왔는데 뒤로 돌아가는 건 또 위험한 도로 위로 다시 가는 것 아니냐"라며 "그럴 바에야 안전벨트도 매고 승객에게 주의를 당부한 다음 빨리 하자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감원은 이날 자료를 통해서도 "이해 상충 상황에서 이사, 대주주 등의 주주 충실의무는 주요선진국에서 제도 및 법 해석 등으로 당연히 인정되는 글로벌 스탠다드"라며 "기업들의 인식 전환 및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주주 보호 원칙 등 원칙 중심(Principle-based)의 근원적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상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실제 미국과 영국은 판례법 등을 통해 주주의 이익을 보호할 충실의무(신인의무)를 '주주에 대해'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 왔으며, 전통적으로 회사 중심의 충실의무 체제를 유지해 오던 일본 또한 최근 회사와 주주 이익의 분리 가능성을 인식하면서 판례·지침 등을 통해 주주 보호 의무를 인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행이 G20 중 16개국의 주주 보호 수준을 분석한 결과, 한국은 12위에 그쳐 주주 보호 수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됐다.
금감원은 "국내 기업이 저평가되는 주요 원인으로 주요국 대비 주주 이익 보호 체계가 약하고, 배당 등 주주 환원에 매우 소극적인 점을 들 수 있다"며 "일반주주 권익이 강화될수록 기업이 주주 이익 환원을 적극적으로 실시함에 따라 기업가치가 상승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적 기업지배구조의 특수성 및 국내 증시의 투자자 보호 미흡이 밸류업의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상법 개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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