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세영이 세계 최고 권위의 배드민턴 대회인 전영오픈에서 중국의 왕즈이를 꺾고 환호했다. ⓒ연합뉴스/AFP/AP
▲ 안세영이 세계 최고 권위의 배드민턴 대회인 전영오픈에서 중국의 왕즈이를 꺾고 환호했다. ⓒ연합뉴스/AFP/AP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아직 제 전성기는 오지 않았습니다."
환상적인 경기력에 엄청난 정신력과 무한 체력을 보여주며 세계 최고 권위의 전영 오픈까지 쓸어 담았지만, 여전히 멀었다는 '배드민턴 여왕' 안세영(삼성전기)이다.
안세영(세계랭킹 1위)은 지난 17일 영국 버밍엄에서 끝난 스포티비(SPOTV)가 중계했던 세계배드민턴연맹(BWF) 월드 투어 슈퍼 1000 전영오픈 결승에서 왕즈이(중국, 2위)를 게임 전수 2-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올해 열린 말레이시아 오픈, 인도 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에 이어 전영오픈까지 싹쓸이에 성공하며 적수가 없음을 확인한 안세영이다.
무엇보다 전영오픈은 '배드민턴 여왕'이 '여제' 가고 있음을 보여준 대회였다. "이게 맞나, 당황했다"라고 할 정도 대진표는 안세영에게 극한 도전이었다.
32강에서 가오팡제(중국, 15위)를 이긴 뒤 16강에서 홈이나 마찬가지인 커스티 길모어(스코틀랜드, 33위)를 지나 '천적' 천위페이(중국, 13위)와의 8강에서 만났다. 물론 천위페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직전 오를레랑 마스터스에서도 겨뤘다는 점에서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더 높은 곳을 생각하면 너무 일찍 만났다는 평가다.
4강에서는 난적 야마구치 아카네(일본, 3위)였다. 역시 돌파하며 이겼지만, 허벅지에 문제가 생기며 통증을 견디고 이겼다. 이후 만난 왕즈이와는 79회, 42회나 랠리를 할 정도로 피 터지게 싸웠다. 서로의 체력이 바닥이 나버렸고 누가 더 정신력으로 극복하는가에 달렸고 안세영은 1게임을 내주고도 내리 두 게임을 가져오며 1시간 35분의 대혈투 끝에 웃었다.
18일 귀국길에 취재진과 만나서도 "어차피 모두 이겨야 챔피언이 될 수 있었다. 잘 해낼 거라는 믿음으로 매일 한 게임만 생각하며 나아갔다"라며 혹독한 과정 이후의 결과를 얻기 위해 직진만 했다는 뜻을 밝혔다.▲ 안세영은 아시아선수권대회만 정상에 오르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연합뉴스/AP
▲ 안세영은 아시아선수권대회만 정상에 오르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연합뉴스/AP
고난을 겪어 오며 성장한 안세영이다. 2020 도쿄 올림픽 중도 탈락의 쓴맛이 안세영의 도전 의식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당시 만났던 천위페이는 거대한 산과 같았다. 하지만, 꾸준히 도전했고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천위페이를 다시 만났다.
시련은 실패의 어머니다. 1게임 수비 과정에 무릎이 코트와 부딪히며 통증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결국 인고의 금메달을 수확했다.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방수현이 이뤄낸 이후 무려 28년 만에 얻은 여자 단식 금메달이다.
물꼬를 튼 안세영은 2024 파리 하계올림픽에서도 미친 경기력으로 중국의 허빙자오를 꺾었다. 무릎을 끓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하는 모습은 안세영을 상징하는 장면과 같았다. 당시 '스타뉴스'가 창간 20주년 기념 한국 갤럽에 의뢰한 설문 조사에서 파리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한국 경기 1위(22%)로 안세영의 단식 금메달을 꼽은 바 있다.
2023년 전영오픈과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의 흐름을 이듬해 올림픽까지 이어간 안세영에게 남은 것은 한 가지, 아시아선수권이다. 4월 중국 닝보에서 예정된 아시아선수권까지 우승하면 주요 4개 국제 대회(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아시아 선수권)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다.
안세영의 체력은 이미 검증이 됐다. 모래사장 위를 납 주머니를 달고 뛰었던 어린 시절부터 단련이 됐다. 영리한 호흡 조절과 특유의 수비로 상대의 맥을 끊는 경기 운영 능력은 세계 최강이다.
독보적인 존재인 안세영은 한국 여자 단식에 다른 유망주가 나올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다. 동시에 남자 단식이나 복식, 여자 복식, 혼합 복식 등도 조금 더 앞으로 나갈 힘을 전달했다.
아직 전성기가 아니라는 안세영이 얼마나 더 많은 대회를 우승할 것인지가 올해 남아 있는 대회들을 흥미롭게 보는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