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투 초대석] 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美 거대 자본, 中 압도적 인력 사이 끼인 한국… 결국 '빈틈' 공략이 답
실패도 용인하는 혁신·도전형 R&D로 신기술 육성
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연구재단 본원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대전=이기범 기자 leekb@
"미국은 거대한 자본력을, 중국은 막대한 연구인력을 앞세워 인류가 현재로선 상상할 수 없는 수준까지 과학기술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후발주자로 출발한 데다 자본과 인력 모두 한계점이 명확한 한국이 생존할 길은 결국 '빈틈공략'입니다."
연 10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국가 R&D(연구·개발)예산을 총괄하며 국가연구과제를 선정하고 관리하는 한국연구재단(이하 연구재단)의 홍원화 이사장은 "한국 R&D의 목표와 지원방향을 재설정할 때"라며 이같이 말했다.
68조3432억원. 우리나라가 연구재단의 전신인 한국과학재단을 설립한 1977년부터 2021년까지 45년간 R&D와 인력양성에 쏟아부은 세금이다. 이 지원금을 통해 전국의 크고 작은 연구실에서 한국형 반도체, 디스플레이, 에너지기술이 나왔다. 산업계가 이를 상용화하며 수천만 일자리가 창출됐다. 몇몇 핵심기술은 재빠르게 해외로 진출해 미국, 일본을 제치고 국제표준으로 자리잡았고 이와 함께 한국 과학기술의 영향력도 높아졌다.
하지만 AI(인공지능), 양자, 첨단바이오 등 이른바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이 세계 시장을 휩쓸며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대표기업이 속속 자리를 차지하는 사이 한국은 여전히 후발주자에 머무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응용뿐만 아니라 원천기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세계 2위 수준인 R&D 투자액에 비해 연구성과는 낮다는 국제학술지의 평가를 받았다.
홍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실패까지 용인하며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모두가 놓친 틈새를 한국이 채울 수 있다"고 했다.
다음은 홍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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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가 R&D 성과 활용 체계 고도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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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연구재단 본원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대전=이기범 기자 leekb@
-경북대 총장을 지내다 연구재단 이사장에 임명된 지 4개월째입니다. 그간 소회는.
▶학자이자 교육자로서 30여년을 우리나라 학문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봉직했습니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오가는 대학도 말 그대로 '전쟁터'였지만 연 10조원 규모의 정부 R&D 예산을 총괄하는 연구재단 이사장으로 부임하고 나서는 여러 교육·과학기술 정책을 더욱 폭넓고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이달 연구재단의 첫 조직개편을 마쳤습니다. 국가와 전세계적 R&D 이슈에 전사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 기존의 7본부 4센터 19단 19실 50팀 체제가 8본부 3센터 18단 22실 50팀 체제로 바뀌었습니다. '연구정책성과전략본부' 신설이 연구재단의 앞으로 방향을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입니다. 국가 R&D지원금을 단순히 분배하는 데서 끝내지 않고 연구자와 함께 연구재단이 연구성과를 관리하고 활용할 방안을 모색하겠다는 의지입니다.
-R&D 성과 활용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재단의 핵심역할은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시대에서 한국이 미래의 성장동력과 과학기술 주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과거에 비해 정부 R&D 예산이 늘어났지만,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연구성과의 질적 수준은 정체돼 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우수한 연구성과임에도 사업화로 이어지지 않고 산업현장에서 활용되지 못하는 등 R&D 투자성과를 실제 성장동력으로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국가 R&D 성과 활용 체계를 고도화할 때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해부터 연구재단은 '선도형 R&D 프로세스 전환'을 목표로 움직이고자 합니다. 국가 R&D 유형에 따른 특성을 반영해 연구의 목표와 지원방향을 세분화하려는 것입니다. △연구기획 단계에서부터 학계, 연구계, 산업계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개방형 기획시스템을 도입하고 △강력한 권한을 가진 PM(연구책임자)을 중심으로 연구의 평가·관리시스템을 개선하며 △이를 통해 나온 성과를 민간에서 사업화할 수 있도록 성과연계 체계를 강화하는 게 골자입니다.
-선도형 R&D의 대표적인 예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이제 2년차에 접어든 혁신·도전형 R&D사업입니다. 실패 가능성이 높지만 성공시 파급력이 높은 혁신적 연구를 말합니다.
혁신·도전형 R&D는 정부가 과제주제를 지정하고 연구에 필요한 최고의 연구자를 모으는 '톱다운'(Top-down) 방식입니다. 각 연구를 맡은 책임자(IPL 또는 PM)에게 연구기획부터 평가에 이르는 강력한 전권을 부여합니다. 평가방법과 관리제도도 별도 적용합니다. 기존 경직된 R&D 시스템에서는 국제정세나 기술적 진보에 따라 연구목표를 바꿔야 할 때도 이미 시작한 연구의 기획내용을 변경하기 어려웠습니다. 혁신·도전형 과제는 연구책임자 결정하에 목표를 유연하게 바꿀 수 있습니다. 평가 역시 성공 혹은 실패로 가르지 않습니다. 연구과정을 중심으로 정성평가를 진행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1조원 투자를 시작으로 점차 지원규모를 확대해 2027년까지 전체 R&D예산의 5%를 혁신·도전형 R&D에 투자할 계획입니다.
-AI·양자·첨단바이오 등 국가전략기술에 선택과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까.
▶정부는 '3대 게임체인저'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지정해 집중투자할 계획이지만 이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적인 생존전략이 되기엔 부족합니다.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며 전략기술을 선정하되 그 안에서 아무도 선점하지 않거나 관심을 갖지 않은 틈새기술을 빠르게 발굴해 선점해야 합니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AI, 양자컴퓨터 분야에서 한국은 명백한 후발주자입니다. 예산과 인력규모만으론 미국과 중국 같은 거대세력과 경쟁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하지만 같은 시장군에도 기존 선도국이 다른 데 총력을 기하느라 놓친 분야가 반드시 있습니다. 제품의 효율성을 혁신적으로 높일 소재, 핵심부품 등이 그 예입니다. 이같은 지점을 파악해 한국의 기술을 국제표준으로 올리는 게 생존법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번 표준화를 하면 시장은 따라옵니다. 특히 전략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표준화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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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1인당 맡은 예산만 109억…인력·재원 충원으로 연구관리 전문성 높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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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원화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이 13일 대전 유성구 한국연구재단 본원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대전=이기범 기자 leekb@
-정부가 기술 위주의 대형 프로젝트에 집중하다 보면 소규모 기초연구는 소외되지 않겠습니까.
▶정부 주도의 톱다운형 대형 프로젝트와 연구자 주도의 보텀업(Bottom-up)형 연구 사이에서 국가 R&D가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추는 게 연구재단이 할 일입니다.
지난해 규모는 줄었지만 중견연구 내 창의유형 연구 등 소규모 연구에 대한 지원도 소홀함 없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드넓은 밭에 씨앗을 뿌리듯 다양한 기초연구 분야를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원해야 10년 뒤, 혹은 50년 뒤 국가를 빛낼 성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이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연구에 몰두할 수 있도록 불안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연구재단이 맡은 역할에 비해 인적·물적 인프라가 현저히 적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국내 연구관리 전문기관 중 1인당 관리예산과 과제 수가 가장 많은 기관이 연구재단입니다. 직원 한 명이 관리하는 사업비 예산만 약 109억원, 관리과제 수는 54개에 이릅니다. 국내 17개 전문기관 중 가장 열악합니다.
직원 한 명이 책임지는 과제가 과다한 것도 문제지만 특히 세금 수억 원을 투입하는 R&D 과제평가 과정에서 석학급 평가위원이 필요함에도 이들을 초빙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R&D 사전기획비, 연구과제 평가전문위원 위촉비 등 관리비(기획평가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3년째 1%로 동결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연구재단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미국의 NIH(국립보건원), NSF(국립과학재단)의 관리비가 전체 사업비의 3~4%를 웃도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부족한 수준입니다. 과학기술의 빠른 변화 속도에 맞춰 연구관리 기관이 혁신적 사업을 기획하고 성과를 면밀히 관리해야 한다는 수요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연구재단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적정수준의 인력을 충원하고 관리비 재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연구재단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구관리 전문기관으로서 학술연구 생태계를 혁신하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거듭 혁신하겠습니다.
대담=김유경 정보미디어과학부장 yunew@mt.co.kr 정리=박건희 기자 wissen@mt.co.kr 사진=이기범 기자 leekb@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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