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저녁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는 영화 '쉬리'의 GV가 열렸다. '쉬리'는 4K 리마스터링 재개봉을 앞두고 강제규 감독과 함께 GV를 하게 된 것. 이날 행사에는 하정우와 강제규 감독이 참석, 김세윤 작가가 모더레이터로 참여해 진행되었다.
1999년 개봉해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쉬리'는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김윤진이 출연해 당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장을 열었다는 호평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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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감독은 "99년 영화고 26년이 된 영화다. 그 동안 깊은 지하 심연에 숨어 있었다. 이 영화를 여러분께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방법이 없어서 안타까웠다. 극적으로 이 영화를 제작한 회사가 삼성영상사업단이다. IMF때 회사가 폐업하면서 상영될 방법을 못 찾다가 작년에 판권을 찾아서 집나간 자식을 찾은 기분이다. 너무 기쁘고 반갑다"라며 영화의 재개봉 소감을 밝혔다.
서울 관객만 240만을 동원했던 '쉬리'다. 정확한 관객수 집계가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지금으로 치면 2천4백만 흥행이라고 볼수 있다는 이야기를 김세윤 작가가 덧붙였다. '쉬리'가 '타이타닉'을 이겼다는 뉴스가 나올때였다고 강조하며 그는 "역사성도 품고 있는 작품이다"라며 영화를 이야기했다.
이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주변에 이산가족이 있지도 않고 분단국가의 구성원이라는 생각을 못하고 무심하게 살았다. '은행나무침대' 시나리오를 쓸때 북경에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북한 유학생을 만났다. 그 친구들을 보며 인식이 바뀌게 되었다. 북한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해하고 알게 되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고정관념 속 북한이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와 똑같이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고 잘 살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은 동포이고 국민이더라. 그 친구들을 통해 들은 몇 러브스토리가 있었다. 남한과 북한 학생들의 비극적 사랑이야기가 많아서 그걸 영화화 하고 싶었다. '은행나무침대' 시나리오를 쓰러 갔다가 이 이야기의 힌트를 얻고 돌아왔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감독은 "처음에는 러브스토리를 하려고 했다. '은행나무침대'를 하고 나니까 또 러브스토리로 만드는게 애매해서 장르를 심기로 했다. 그때 한참 홍콩 나와르가 흥행하던 시기였다. 한국의 장르 영화가 정착화 되기 전이었다. 본격 장르영화로 안착시켜 다변화된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로 해야 변별력 있는 영화가 될거라 생각했다. 스타일과 장르가 업그레이드 되었다. 당시에는 10~15억이 평균 제작비였다. 그런데 제가 뽑아보니 28억 정도 제작비가 나오더라. 당시에 삼성전자 쪽은 22억을 준다고 하더라. 삼성의 인프라를 이용하지 않으면 50억으로도 찍을수 없는 영화라 생각되더라. 그래서 22억으로 만들었고 영화 속 많은 장면이 수원 삼성공장의 주방, 백화점도 삼성 플라자 등 다 삼성의 인프라를 이용해 찍었다. 그래서 가능했다"며 제작 비하인드를 밝혔다.
감제규 감독은 ost에 대해 "두 사람의 사랑의 매게가 되는 곡을 많이 고민했다. cd를 20개 정도 음악 감독이 가져왔더라. 조성국 배우가 편집하는데 오셔서 구경하다가 엔딩과 어울리는 곡이 있다며 when i dream을 소개하더라. 음악 감독이 가져온 cd중에 10곡을 체크했는데 거기에도 포함되어 있어서 운명이라 생각하고 썼다"며 ost의 선정 과정을 이야기했다.
영화 속 총격전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총기가 지금은 너무 보편화가 되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외국에서 총기를 전문으로 렌털하는 업체에서 빌려와야 했다. 홍콩에 가서 총기를 봤는데 고장률이 너무 높더라. 실탄 앞의 탄두를 뺀 총이었는데도 많이 위험하기도 했다. 가격이 저렴했지만 안되서 헐리우드 영화를 가장 많이 하는 업체를 접촉했었다. 총기 대여 금액이 2억 정도 되었다. 2억 5천인가 3억을 보증금을 내라고 하더라. 한국을 믿을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보증금을 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당시에 30만불이 그거 때문에 묶여있어야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한 전세계의 인식이 지금과 비교하면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며 가슴아픈 일화를 공개했다.
영화 속 축구장 장면의 비하인드에 대해 강제규 감독은 "요즘이라면 도둑촬영이 불가능한데 그 시대에는 그렇게 했다"라며 도둑촬영을 고백했다. "대한축구협회가 중계권 떄문에 허락을 하지 않았다. KBS기자를 통해 KBS스티커를 5개 정도 얻어서 촬영 카메라에 붙여서 찍었다. 한석규와 저는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경기가 진행중일때 살짝 나가서 들어오고, 카메라 세팅이 끝나면 살짝 찍고 007작전으로 진행했다. 어떻게 저런 영화를 23억에 찍겠나. 당시에 CG기술, 미니어쳐 기술이 열악했다. 한꺼번에 한 영화를 통해 통채로 실험하고 시도하고 쏟아부은 첫 영화여서 부족함이 많았다. 사운드도 다 외국가서 따온 것이다. 몰래 하고 훔쳐오고 하면서 촬영했다"며 열악했던 상황에서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고백했다.
강제규 감독은 "제 영화의 주인공은 다 착한 사람이다. 강박성도 가지고 있다. 좋은 사람을 통해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하게 된다. 지금까지 표현한 많은 인간 군상이 살아가면서 내 이웃이고 가족이라는 걸 잘 일께우고 있어서 충분히 만족한다. 최근에는 조금 박자가 빗나가고 엇나간 배드가이, 악당이 새록새록 재미있기도 하다. 준비하고 있는 다음 작품은 나쁜 인간이 주인공인 영화다. 하정우가 나온 '범죄와의 전쟁'은 착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재미있지 않나. 그런 이야기를 통해 옳고 바른 이야기를 충분히 할수 있을거 같아서 관심가지고 있다"며 영화 속 캐릭터의 특징을 이야기했다.
강제규 감독은 "우스개 소리로 재개봉한다니까 주변에서 그 헬기의 삼성 로고좀 못 지우냐는 말을 하더라. 건물 폭파 이야기도 많이 하더라. 지금 봐도 낯이 뜨거워서 숨고 싶더라. 당시에 정말 갈등을 많이 했다. 전체를 드러낼까도 생각했었다. 당시의 우리 기술로서는 건물을 미니어쳐로 만들어서 촬영했는데 지우기 어렵더라. 당시에도 영화를 까칠하게 보는 분들은 옥의 티라는 말씀을 하셨다"라며 아쉬운 장면을 이야기했다.
감독은 '마이웨이'때부터 촬영하고 삭제하는 씬이 제법 있다고 말하며 "다른 작가, 다른 회사에서 기획한 작품을 만든 경우는 그렇게 되더라. 네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만든 영화는 버릴게 없더라. 스스로 엄격하게 검열을 하며 시나리오를 썼던거 같다. 제가 조감독했을때 평균 제작비가 1억에서 1억5천 수준이었다. 필름이 2만3천피트가 맥스였다. 정말 필요한 것만 찍어야 했다. 필름도 제대로 못 쓰는 상황에서 촬영하고 정말 아껴야 하는 것에 익숙했고 스트레스를 받았다. '쉬리'때는 총탄을 제가 직접 나눠줬다. 주인공은 10발, 뒤에 있는 분은 3발 이런식으로 한발 한발을 아꺄가며 촬영했다. 촬영 끝날때까지 특수효과팀에서 총 관리를 안하고 내가 직접 했다"며 빡빡한 제작 환경에 훈련된 탓에 함부로 삭제하는 씬도 없었다는 말을 했다.
강제규 감독은 "헐리우드는 프랜차이즈를 계속하는게 미덕인데 '쉬리'의 상징성 때문에 후속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 영화가 다른 나라에서도 특히 일본에서 큰 성공을 해서 너무 많은 제안이 일본에서 들어온다. 작년에 일본에서 쉬리의 재개봉을 했다. 탑건은 30년이 지나도 속편이 나왔다는 말을 하더라. 만약 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할수 있고 관객이 실망않는 걸 내놓을수 있을까를 2년째 작가와 만지고는 있는데 마음에 안들면 안 만들 것이다"라며 '쉬리'의 속편 계획을 밝혔다.
'쉬리'는 국가 일급 비밀정보기관 OP의 특수요원 ‘유중원’(한석규)과 동료 ‘이장길’(송강호)이 북한 특수 8군단 대장 ‘박무영’(최민식)과 남파 간첩, 내부의 첩자까지, 모두에 맞서 벌이는 숨막히는 첩보전을 그린 영화로 3월 19일 재개봉한다.
iMBC연예 김경희 | 사진 iMBC연예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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