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명예훼손’ 혐의로 나와 김용진 전 뉴스타파 대표를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구 특수부) 검사 10여 명이 달라 붙어 1년 가까이 수사한 뒤였다. 지금까지 총 11회(공판준비기일 포함) 재판을 받았다. 재판은 주 1회, 하루종일 진행됐다. 재판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 윤석열은 여전히 내가 재판받는 법정에서 ‘명예훼손 피해자’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 논란
지난 8일 법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신청한 구속취소 신청을 받아줬다. 검찰이 ‘즉시항고’를 포기하면서, 윤 대통령은 다음날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났다.
법원이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한 이유는 크게 2가지였다. 첫째, 검사가 구속기간 만료 시점이 지나 기소했다는 것이다. 기소 만료 시점보다 9시간 45분 늦게 기소했다고 했다. 구속 피의자의 인권 보호를 위해, 구속기간 만료 시점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둘째, 윤석열을 수사하고 체포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에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였다.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를 문제삼았다. 공수처는 검찰과 마찬가지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직권남용)의 관련 범죄로 내란죄를 수사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이것이 문제라고 봤다.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하면서 법원이 낸 문서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다.(괄호는 이해를 돕기 위해 넣은 것)
…공수처법 등 관련 법령에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고, 이에 관한 대법원의 해석이나 판단도 없는 상태인바, 절차의 명확성을 기하고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관한 의문의 여지를 해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구속취소 결정을 하는 것이 상당함. 만약 이러한 논란을 그대로 두고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상급심에서의 파기 사유는 물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심 사유가 될 수 있음.
- 재판부 설명자료 (2025.3.8.)
‘재판부 설명자료’를 쉽게 정리하면 이렇다.
①법적으로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있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②이에 관한 대법원의 판례나 판단도 없다.
③공수처 수사과정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았으니 일단 풀어주는 게 맞다.
④ ‘내란죄 수사권’ 문제를 해결 안하면 본재판에서 공소기각이 날 수도 있다.
재판부 설명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떠올렸다. ‘윤석열 내란’ 사건과 똑같이 ‘수사권 문제’가 제기됐지만, 10개월이 넘도록 법원이 아무 판단도 하지 않고 재판을 하고 있어서다. 이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다.
지난 9일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 (출처:연합)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에서의 수사권 논란
뉴스타파 기자인 나와 김용진 전 대표는 20대 대선 3일 전(2022년 3월 6일) 언론보도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로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가 수사했다.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여러 논란이 일었다. “언론탄압 아니냐”,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인데, 피해자 윤석열의 처벌의사를 확인하고 벌인 수사냐” 등의 비판과 함께 “검찰에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할 권한이 있냐”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바로 전날인 2022년 5월 9일 개정된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은 ‘부패범죄’, ‘경제범죄’에 대해서만 수사 개시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명예훼손’ 사건에 대한 법적 수사 권한은 경찰에 있다.
검찰은 시종일관 “뉴스타파 등 언론사를 상대로 한 수사는 단순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라 부패범죄이자 경제범죄인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수사”라고 주장했다. 수사권이 있는 범죄와 관련된 사건이니 직접 수사 대상이 된다고 했다. 아래는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 수사책임자가 2023년 10~11월경 기자들과 나눈 질의응답 중 일부다.(이해를 돕기 위해 발언 내용을 일부 정리했다.)
- 명예훼손은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가 아닌데…
“...저희(검찰)는 직접수사 개시 범위와 관련, 사람과 증인이 공통되고 범죄사실이 공통되고 합리적 관련성이 있는 경우 직접수사 개시 범위로 판단한다.”
- 서울중앙지검 4차장 티타임 (2023.10.26.)
-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은 검찰이 수사할 수 없는 사건인가요?
“...지금 그(법률) 구조상으로는 그렇다. 그 단독 건만 있었다면 직접 수사할 수 있는지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따져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사건(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은 저희가 계속 수사했던 대장동 관련 사건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와 관련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사한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리겠다.”
- 서울중앙지검 4차장 티타임 (2023.11.2.)
검찰의 이런 주장은 공소장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문제의 뉴스타파 보도를 대장동 사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관련 내용 등과 엮어 공소장을 꾸몄다. 뉴스타파 보도와 아무 상관없는 한겨레·한국일보·중앙일보 보도 내용도 장황하게 넣었다. 뉴스타파(김용진, 한상진)가 가해자, 피해자는 윤석열인 사건인데, 70쪽이 넘는 공소장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이름이 가장 많이 등장했다.
뉴스타파의 의견서, 법원의 침묵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나와 김용진 전 대표는 의견서 등을 통해 검찰 수사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검찰이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벌였고, 이는 법률 위반 행위라는 판단이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8월 법원에 낸 의견서에 이렇게 썼다.
검사가 검찰청법을 위반하여 권한없이 피고인 김용진, 한상진에 대하여 수사를 개시한 것은 위법함을 면할 수 없고, 이러한 위법한 수사개시에 기한 공소제기는 그 절차가 법률의 규정에 반하여 무효인 때에 해당합니다.
- 뉴스타파 의견서 (2024.8.)
엉터리 공소장으로 열린 재판은, 당연히 엉터리로 진행됐다. 재판 때마다 재판장이 검찰 공소장을 문제삼는 촌극이 벌어졌다. “검찰 주장이 모호하다”, “뉴스타파 보도 내용 중 어떤 부분이 허위냐”, “뉴스타파 보도와 이재명, 한겨레·중앙일보·한국일보 보도가 무슨 관계가 있냐” 같은 말이 무한 반복됐다. “공소장을 변경해라”, “안 바꾸면 공소기각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나왔다. 결국 공소장은 3번에 걸쳐 변경됐고, 70여 쪽에서 30여 쪽으로 쪼그라들었다. 속된 말로 걸레와 다름 없는 공소장이 됐다.
그럼에도 재판은 계속 이어졌다. 희한하게도 재판부는 매번 검찰 공소장을 ‘저격’하면서도 재판을 멈춰 세우지는 않았다. ‘윤석열 구속취소’ 같은 인권 친화적인 위대한 결단은 없었다.
‘수사권 논란’이 제기된 두 사건, ‘윤석열 내란’ 사건과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을 비교하는 표를 만들어봤다.
공수처 잘못이면, 검찰에도 책임
‘윤석열 구속취소’로 인한 여파는 주로 공수처에 대한 비판과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수처가 윤석열 내란 수사에 나서지 말았어야 했다”, “공수처가 욕심을 내다 일을 망쳤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주장은 윤석열 탄핵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나오고,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쪽에서도 나온다. ‘윤석열 내란’ 이후 처음으로 국론이 하나가 됐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윤석열 내란’ 수사는 큰 문제없이 진행됐다고 본다. 공수처는 공수처법에 따라 대통령에 대한 수사권을 갖고 있고, 고위공무원의 직권남용을 수사할 권한이 있다. 경찰과 검찰에 ‘윤석열 내란 수사권’ 이첩을 요구한 것도 공수처법에 따른 조치였다.
이첩 요청을 받은 경찰과 검찰 역시 법에 따라 ‘윤석열 내란 수사권’을 공수처에 넘겼다. 검찰 일각에서 극렬 반발했지만, 법을 지키기 위해 넘겼다. 수사권을 넘겨 받은 공수처는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윤석열을 수사하고 체포했다. 절대 어거지 수사가 아니었으며, 법절차를 대체로 잘 지킨 수사였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논란이 되고 있는 공수처의 ‘윤석열 내란 수사권’은 이미 여러 번 법원 판단을 통해 그 적법성을 인정받았다. 공수처가 수사에 착수하고, 윤석열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법원은 단 한번도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일 느닷없이 공수처의 내란죄 수사권을 문제 삼기 전까진 모든 재판부가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번 법원발 ‘공수처 수사권’ 논란은 ‘윤석열 내란 재판’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수사는 공수처가 했지만, 기소와 공소유지 책임은 검찰에 있어서다. 윤석열 측과의 법정 다툼이 불가피해졌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한 법원 결정에는 또 다른 문제 소지도 있다. 수사권과는 별도로 공수처의 수사방식을 문제삼는 대목이다. ‘윤석열 구속취소’를 결정한 재판부 설명자료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실제 공수처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의 수사 과정에서 내란죄를 인지하였다고 볼만한 증거나 자료가 없음.
- 재판부 설명자료 (2025.3.8.)
한마디로, 공수처는 ‘직권남용 수사를 하다 내란죄 혐의를 인지해 수사했다’고 주장하지만, 판사 눈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은 공수처와 검찰 모두에게 있다고 하겠다. 공수처가 수사를 제대로 했는데 검찰이 공소장을 허투루 만든 것인지, 수사가 제대로 안 돼 공소장이 이 모양이 된 건지는 따져볼 문제다.
불안하고 불편한 법원의 ‘위대한 결정’
‘윤석열 내란’으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둘로 쪼개졌다.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탄핵 사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리든 당분간 국가적 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유혈사태, 내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올 만큼 상황이 심각하다.
법원은 민주공화국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아무리 생각이 달라도 법원 판단을 존중하고 따라야 하는 이유다. 법원이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하는 이유도 같다.
무엇보다 법원은 오락가락해선 안 된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판단이 달라져선 안 된다. 누구에게만 주는 권리, 누구에게만 주지 않는 권리가 있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 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사회가 된다. 정글의 법칙이 법을 대신하게 된다.
‘윤석열 명예훼손’ 사건에선 아무 판단도 하지 않던 법원이 ‘윤석열 내란’ 사건에선 피고인의 인권 보장 등을 이유로 구속기간을 ‘날’이 아닌 ‘시간’으로 계산하고, 수사권을 문제삼아 내란 혐의자 윤석열을 풀어주는 ‘위대한 결정’을 한 것이 못내 불편하고 불안한 이유다.
뉴스타파 한상진 greenfish@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