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김남정 기자]
(*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즘 남편과 드라마 보는 것에 빠졌다. 저녁 산책 후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에 우리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본다. 때때로 우리 둘 모두 꽂히는 드라마가 있다. 아이유와 박보검 배우가 나오는 <폭싹 속았수다> 정말 열심히 보고 있다. 진짜 보면서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가슴 먹먹한 대사들에 눈물도 찔끔 난다.
세계인들이 보는 넷플릭스 시리즈의 <폭싹 속았수다> 영미권 제목은 'When Life You Tangerines (삶이 너에게 귤을 줄 때)'였다.
영어권의 제목은 드라마 내용과 찰떡같이 잘 맞는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에게 삶은 시큼하기도, 때론 달콤하기도 한 귤을 주니까. 외국인들에게도 공감을 얻을 수 있겠다.
국어사전을 검색해 보니 <폭싹 속았수다> 는 표준말로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정도의 뜻이다. 나무위키를 검색하니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제주어 표기법에 의거하면 쌍시옷 받침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폭싹 속았수다' 또는 '폭싹 속았우다' 가 맞는 표현이다.
남편과 나는 제목을 보고 '완전 속아서 결혼한 인생 이야기' 인줄 알았다.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잘 못 알고 있었던 표준어를 알게 되었다. 드라마의 내용과 딱 들어맞는 제목이다.
드라마가 남겨 준 인생 이야기
![]() |
▲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 넷플릭스 |
드라마는 처음 본 날부터 몰입감이 컸다. 정말 좋은 대사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게다가 친하게 지냈던 지인 고향이 제주라 제주어 들을 때마다 지인 생각이 났다.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에 와닿는 대사가 여럿 있었다. 시골에서 자랐고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그랬고 또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대학 시절이 떠올라 몰입감이 더 컸다.
"살민 살아진다"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다가 눈물이 줄줄 흘렀다. 어린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가족들. 서로 자기 잘못이라 말하는 어린아이들. 이를 보던 애순과 관식은 남은 자식 둘을 위해 결국 다시 힘을 내서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손톱이 자라듯 매일이 밀려드는데 안 잊을 재간이 있나."
매일의 삶이 손톱 자라듯 밀려드는데, 아무리 큰 고통이 있어도 잊지 않고 살 수가 없다는 뜻으로 세상살이가, 그렇게나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이었다. 주인공 애순과 관식에겐 특히 더 힘든 젊은 날이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연애편지 쓰듯했다. 그런데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겐 낙서장 대하듯 했다."
이 대사를 듣고 말 한마디에 천금이 드는 일도 아닌데 우린 왜 옆에 있는 제일 소중한 사람들에겐 소홀한 말들과 행동을 할까. 나를 뒤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부모는 미안했던 것만 사무치고 자식은 서운했던 것만 사무친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알겠다. 딸들에게 서운했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엄마로서 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날들만 기억난다.
"몸이 고되면 마음이 엄살 못 해."
정말 독하게 자식을 키우려고 해녀로 밭일로, 애를 쓰던 애순엄마 광례의 대사다. 몸이 너무너무 고되면 고민조차 사치라는 뜻이다. 기억하고 싶은 대사다.
"어망은 여기서 한규 자식 좀 봐 주소. 한규 보듯이 우리 애순이 좀 봐 주소 천지에 부빌데는 하나 있어야지. 염치없는 애 아니니깐, 소죽은 귀신처럼 잘 참는 애가 살다가 살다가 고달프다고 한마디 하거든 한규살리듯 딱 한 번만 살려줘요. 그럼 다 퉁이지. 애순애비한테 미안할거 하나 없소."
죽음을 앞둔 광례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대사다. 이 시어머니가 나중에 정말로 애순이 죽겠다고 찾아와 말도 못 하고 울고 있을 때, 그날 밤 애순을 찾아가서 이야기한다.
"엄마는 시커먼 담벼락 밑에서도 기어코 해를 찾아 고개를 드는 풀꽃 같았다. 기어코 빛을 찾아내는 사람이었다."
잠시 추억을 잊고 살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면서 반짝이던 나의 젊은 날도 뒤돌아볼 수 있었다. 최루탄 가스 때문에 눈물 흘리던 대학 시절도 아련하다. 더 가슴 아픈 건 그 시대를 살아내신 내 부모님들의 피눈물 나는 고달픈 날들이 있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그리고 현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딸들에게도 '살민 살아진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삶을 살아내고 있는 모두에게 "폭싹 속았수다(매우 수고 많았습니다)"는 인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대사에 맞는 드라마 장면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