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JTBC 이혼숙려캠프>
[이준목 기자]
일도 가족도 외면하고 세상과 단절한 채 매일 하루 24시간 바닥에만 누워 사는 남편과 그 때문에 망가진 한 가정의 이야기가 나왔다. 13일 방송된 JTBC <이혼숙려캠프>에 9기의 세 번째 출연자인 '바닥부부'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바닥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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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TBC <이혼숙려캠프>중 한 장면 |
ⓒ JTBC |
정광수-이보래 부부는 두 딸을 키우고 있는 결혼 10년 차 부부로, 아내의 출연 신청으로 함께 캠프에 참여했다. 부부는 남편의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행으로 오랫동안 갈등을 빚고 있었다. 가사조사 영상을 통해 현재 부부의 상황과 문제점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내 측 입장을 반영한 영상이 먼저 공개됐다.
부지런한 아내는 피부관리사-보험설계사-붕어빵 장사까지 무려 '쓰리잡'을 뛰고 있는 워킹맘이었다. 아내는 신혼 때부터 가계에 보탬이 되려 노력했고, 현재 가족은 아내가 번 수입으로 생활했다.
반면 남편은 수년째 이렇다 할 경제활동 없이 무직이었다. 24시간 쉴 틈 없이 일하는 아내와 달리, 남편은 24시간 집에서 빈둥거리며 육아와 집안일에도 무관심했다.
아내가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는 동안, 남편은 늦게까지 잠만 자다가 겨우 일어나서도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게임했다. 귀가한 아내가 말을 걸거나 집안일을 부탁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외면했다. 아내가 거듭 대화를 요청하자 오히려 짜증을 부리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남편은 자신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을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집안일도 전혀 하지 않는 건 그저 "귀찮아서", "일하기 싫어서"라며 이해하기 어려운 무성의한 답변만 반복했다.
패널들이 이유를 궁금해해도 남편은 입을 닫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내는 남편의 극심한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홀로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고통받아야 했다.
그런데 아내는 왜 이처럼 게으르고 무책임한 남편과 아직 헤어지지 않은 걸까. 아내는 남편이 과거에 직장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할 때는 지금과 달리 가정에도 충실했다며, 남편의 또 다른 모습을 밝혔다. 남편은 연애하던 시절에는 본인이 먼저 아내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했을 정도로 헌신적인 면모도 있었다. 아내는 만일 남편과 헤어질 경우 아이들이 받게 될 상처를 걱정했고, 스스로도 남편에 대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어서 이혼을 망설이고 있다고 고백했다.
문제없는 아내
보통 가사조사 영상은 부부 양측의 입장이 번갈아 다루어지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남편 측 영상은 없었다. 제작진은 남편의 입장에서 아내의 문제를 지적할 게 없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작진이 객관적인 입장에서 준비한 또 다른 영상에서는, 부부 공통의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바로 부부 갈등의 사각지대에서 위험하게 방치된 아이들이었다.
백수 남편은 집안일에 무관심했고, 워킹맘 아내도 바깥에서 경제활동을 하느라 자연히 집안일에는 소홀해졌다. 어른들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어린 두 딸은 분식점에서 부실하게 끼니를 때워야 했고, 몸이 아파도 제때 병원에 데려가 줄 보호자가 없었다.
심지어 부부는 아이들 앞에서도 거리낌 없이 쌍방폭언과 폭행을 주고받았다.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도 폭력적인 언행을 따라하고 있었다. 부부와 자녀들은 한집에 살면서도 가족이 모두 함께 모여 식사하거나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또한 애정 표현에 서툰 남편은 아이들이 싫어하는데도 굳이 격한 장난을 자꾸 쳤고, 아이들은 그런 아빠를 강하게 거부하며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들은 "아빠가 독방에서 평생 안 나왔으면 좋겠다", "아빠를 다른 아빠로 바꾸고 싶다"고 고백했다.
아내는 "특별하게 행복하기보다는 다른 평범한 가정처럼 그저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히며 눈물을 쏟아냈다. 참담한 가정의 현실을 목격한 패널과 부부들은 모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서장훈은 "가슴이 아프다. 이렇게 막살 거면 대체 뭐 하러 같이 사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진태현은 아이들이 그린 가족 그림에서 부모의 존재감이 사라진 모습을 언급하며 "아이들도 부모가 부모의 자격이 없다는 걸 알고 있는 거다, 아이들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부는 다음날 정신과 상담 치료 시간을 가졌다. 이광민 전문의는 현재 이 부부가 아내의 '100% 희생'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진단을 내렸다.
아내는 희생을 감수하며 남편과 살고 있는 이유를 두고 "남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다. 가족도 없는 남편이 집을 나가서 제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생각도 많이 한다"는 속내를 털어놓았다. 감탄한 전문의는 "아내에 대해서는 지적할 게 하나도 없다. 보살이고 마더 테레사와 같다.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사랑을 퍼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문가의 평
반면 남편에게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전문의는 "남편은 이 가정 내에서 기생충이자, 초기 단계의 암 조직 같은 존재"라고 독설을 날리며 "지금의 남편은 집안에서 그냥 바닥에 붙어 아내에게 큰 도움도, 피해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암세포가 주변에 퍼지듯이, 여기서 남편의 역할이 가족에게 해가 되기 시작하면 그때는 도려내는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전문의는 "남편은 만일 아내와 이혼하게 되면, 폐인처럼 떠돌아다니다가 객사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그나마 결혼 관계가 남편을 살아가게 해주고 있다. 아내가 없으면 남편은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또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남편의 의도는 애정표현이자 장난이라고 해도, 아이들에게는 폭력이자 학대가 될 수 있다"면서 "아이들이 싫어하면 거기서 멈춰야 한다. 더 나아가면 이혼이고 본인의 인생이 망하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남편은 가사조사에 이어 정신과 상담에서도 본인이 왜 대화를 단절하고 은둔생활을 하게 됐는지 이유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아내도 정확한 원인을 알지 못한 채 그저 남편에게 '마음의 병'이 있다고 막연하게 추측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부는 이번엔 심리극 치료 시간을 가졌다. 김영한 심리극 전문가는 남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설득했다.
망설이던 남편은 결국 자신이 바닥생활을 하게 된 계기를 비로소 털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남편은 결혼 이후에도 한동안 전 여자친구와 몰래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고백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아내는 전 여자친구에게 직접 연락하여 남편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강하게 경고했다.
그렇게 전 여자친구와 교류가 끊기게 된 남편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사라졌다. 그때부터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남편은 자신이 '외도'를 저질렀다는 것에 대한 문제 인식보다는, 전 여친과 연락이 끊겨서 그저 마음이 상했다는 이유로 일도 가정도 하루아침에 내팽개쳤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남편의 진실에, 아내와 다른 부부들 모두 황당하다는 반응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진 심리극 치료에서도 남편은 처음엔 무반응으로 일관하며 개선 의지에 대한 우려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먼저 다가와 손을 내민 것은 아내 쪽이었다. "제발 일어나라"는 간절한 아내의 호소에 요지부동이던 남편도 비로소 몸을 일으켜 아내를 끌어안았다.
부부는 그날 저녁 숙소로 돌아와 모처럼 둘만의 대화를 나눴다. 남편은 조심스럽게 전 여친과의 사건에 대한 아내의 생각을 물었다.
아내는 "난 아무렇지 않다. 지나간 일은 덮고 지금의 일을 해결하자. 시작은 서툴러도 결국 종착지만 가면 되는 것"이라며 모든 것을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자고 제안하며 보살의 면모를 드러냈다. "처음으로 속마음을 이야기했다"는 남편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화해와 변화를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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