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TV도 반도체관세 포함
스마트폰 60% 베트남 생산
아시아 편중 공급망 재편 고심
삼성 테일러공장 내년 가동
“대미투자 늘려야 하나” 불안
SK하이닉스도 상황 예의주시
공장 접근성 높이려 용지 이전
[사진 = 연합뉴스]
정보기술(IT) 업계에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는 물론 스마트폰, 컴퓨터, 평판 TV 디스플레이 등에 대해 품목별 관세를 예고했기 때문이다. 한국 IT 업계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면서도, 예정된 미국 시설 구축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14일 IT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매출액 가운데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0% 이상에 달한다. 미국이 세율을 얼마나 책정하느냐에 따라 실적이 출렁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ABC를 통해 “스마트폰, 컴퓨터, 평판 TV 디스플레이, 반도체 기반 저장장치 등 상호관세 면제 대상 품목은 향후 반도체 관세 범주에 포함될 것”이라며 “특히 반도체, 평판 디스플레이 같은 제품들은 반드시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T 업계는 상당한 충격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품목별 관세까지 예고됐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전자는 이들 품목 모두를 생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이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매년 2억2000만대의 휴대전화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베트남이 원산지인 제품이 60%에 달한다. 이뿐 아니라 TV, 가전제품, 디스플레이 역시 상당수를 베트남에서 생산한다.
베트남 박닌성에서 오토바이를 탄 시민이 삼성전자 공장 앞을 지나고 있다. [AFP = 연합뉴스]
베트남 정부에 따르면 삼성 베트남 법인의 수출액은 약 540억달러로, 이는 베트남 전체 수출액의 약 15%를 차지한다.
베트남은 앞서 46%의 고율 관세를 부과받았다. 25%인 한국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당초 삼성전자 안팎에서는 베트남 대신 한국 구미 공장이나 브라질 공장에서 미국향 스마트폰을 일정 부분 생산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뀐 것이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관세 품목이 워낙 급변해서 종잡을 수 없다”면서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건설 중인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 = 연합뉴스]
반도체도 비상이다. 미국이 주말을 전후해 관세를 유예하기로 했다가 또다시 번복했기 때문이다.
이종욱 삼성증권 연구원은 “이는 중국의 후공정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미국 내 생산시설 유치를 위한 비용 격차를 관세로 보전해 주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면서 “미국 기술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반도체를 특정해 면세 비중을 높일 수 있고, 특히 서버는 인공지능(AI)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면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원가 기준 ‘20% 룰’을 적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반도체 비용 중에서 미국산 장비·소프트웨어·설계 라이선스가 차지하는 비용이 20%를 초과할 경우 미국산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미국산우선구매법에 해당 룰이 적용된 바 있다.
반도체 업계는 시설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TSMC가 올 1월부터 4㎚(나노미터) 칩에 대한 양산에 돌입했고, 마이크론 테크놀러지는 2028년부터 D램을 뉴욕 인근에서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370억달러를 투자해 3㎚·4㎚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하고, 2026년 가동할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보조금 수령 여부와 무관하게 투자 전략 수정은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 = SK하이닉스]
또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를 투자해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으며, 2028년 가동이 목표다.
SK하이닉스는 “관세 적용 여부는 여전히 불확실해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와 용지 조성을 담당하는 퍼듀대 연구재단은 접근성이 보다 좋은 지역으로 시설 용지를 이전하는 방안을 놓고 주민 설득에 나선 상태다. 용지 이전안은 오는 5월 5일 시의회에서 최종 투표로 결정된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 기준은 안갯속이다. 예를 들어 원산지 기준을 전공정인 웨이퍼로 할지, 아니면 후공정인 패키징으로 할지에 따라 업체마다 관세가 달라져 희비가 갈릴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수요 위축이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품목별 관세와 국가별 상호관세가 적용되면 글로벌 IT 수요가 위축될 수 있다”고 염려했다.
더 큰 문제는 중국의 보복이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중국은 웨이퍼를 기준으로 반도체 원산지를 삼는다는 방침을 공지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강대국이 관세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만큼, 반도체 시설 전략은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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