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정동 서울대 교수 인터뷰
대한민국號 벼랑 끝 상황
'가슴 뛰는 간절한 아이템'
더 이상 안주머니에 없어
정체된 국내 혁신 생태계
열개의 담대한 질문 던져
메기의 역할 될거라 기대
MZ들 워라밸만 챙긴다고?
자기성장의 욕구 큰 세대
이들에게 비전을 보여줘야
"지금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서 있습니다. 지금 특정 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이런 문제가 아니에요. 안주머니에 '가슴 뛰는 간절한 아이템'이 없다는 것,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는 "지금 한국 산업은 분야를 막론하고 중대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펀더멘탈의 위기이자, 손 쓸 틈 없이 덮쳐오는 밀물 같은 위기"라며 "그야말로 익사 직전이다. 이렇게 말하면 적절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이런 저런 도전을 하면서 논란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교수는 10년 전 펴낸 책 '축적의 시간'으로 우리 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작년에는 대한민국 과학계와 산업계가 풀어야 할 질문 10개를 추린 '그랜드퀘스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는 "불과 1년 새 체감하는 변화의 속도는 많은 전문가조차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연초 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딥시크 쇼크를 예로 들었다. 그는 "딥시크는 '선진국의 시간'을 '중국의 공간'으로 압축해 성공한 케이스"라며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줄줄이 나올 텐데, 이러다가 한국이 중국의 개념설계를 받아와서 실행하는 수준으로 전락할까 두렵다"고 했다.
'개념설계'는 이 교수가 꾸준히 강조해온 용어다. 선진국은 100년 이상 축적해온 경험으로 당면한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의적인 해법을 모색하며 발전해왔다. 한국은 그런 경험을 축적할 시간이 없었지만, 탁월한 실행 능력으로 인류사에 유례없는 성장을 이어왔다. 그런데 수십 년을 이어온 한국의 성장 모델이 이제 끝난 것이나 진배없다. 2000년대 5%대였던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대 아래로 떨어졌고, 2040년에는 0%대로 추락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선진국처럼 우리만의 고유한 개념설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지금은 글로벌 기술 패러다임이 완전히 새로운 퍼즐판을 조각하는 시기다. 이 교수는 "그 퍼즐판에 들어가려면 고유의 기술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한국은 그게 없다"면서 "우리가 판을 짜고 개념을 설계하려면 지금 당장 '도전적인 문제'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고민 끝에 뽑은 질문들이 '최고의 질문'은 아니지만, 고요한 한국의 혁신 생태계에 메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 생각이다. 기업 임원들과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도전적으로 풀어볼 만하다고 인정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는 "전 세계 태양광 업계가 30%대 효율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60% 효율이라는 숫자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이 아니겠느냐"면서 "여기에 반박하는 질문이 나온다 해도 우리 산업의 로드맵을 바꾸는 생산적인 논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요즘 신입사원들은 도전정신이 없다고 비난하지만 그건 단면만 본 것"이라며 "오히려 회사가 도전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워라밸과 돈이라도 챙기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MZ세대의 '자기성장 욕구'를 충족시켜줄 의무가 있는 기성세대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는 탓이 크다는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이자 '간절한 소망이 담긴 꿈'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 교수는 "보릿고개에도 씨앗은 베고 잔다는 속담처럼 미래 먹거리를 찾아 스스로 지도를 만들고 탐험에 나서야 한다. 시간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동 교수
서울대 공과대학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한국생산성학회 회장과 한국기업경영학회 회장, 대통령 비서실 경제과학특별보좌관을 지냈다. 2018년부터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앤드퍼블릭폴리시' 공동 편집장을 맡고 있다.
[특별취재팀=신찬옥 과학기술부장(팀장) / 박준형 기자 / 이상덕 기자 / 원호섭 기자 / 추동훈 기자 / 심희진 기자 / 김지희 기자 / 고재원 기자 / 심윤희 논설위원 / 박만원 논설위원 /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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