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반도체처럼 신산업 파격 지원 고민해야
1980년대만 해도 일본은 전세계 반도체 업계를 이끄는 최강자로 군림했다. 1988년 일본의 글로벌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50.3%로, 미국(36.8%)을 크게 앞서기도 했다. 잘 나가던 일본 반도체 산업이 몰락한 것은 미국의 견제, 수평 분업화 추세 외면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본 정부의 잘못된 정책 지원의 비중도 컸다. 정부가 국가 주도 프로젝트만 남발하면서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실제 첨단 반도체 개발을 목표로 정부와 기업이 기금을 모아 시작한 아스카(ASCA) 프로젝트, 차세대 반도체 개발 프로젝트(HALCA), 첨단 SoC기반기술개발(ASPLA) 등이 모조리 실패로 끝났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일본 반도체 산업의 부활을 일본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막대한 보조금, 각종 규제 완화책 등을 내세워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공장 유치전에 본격 뛰어들었다. 일본 구마모토현은 2021년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가 구마모토에 진출한 것을 계기로 일대가 7나노미터(1nm=10억분의 1m) 이하 초미세공정 제품을 만드는 글로벌 반도체 핵심 생산 거점으로 단숨에 탈바꿈했다. 일본 정부가 TMSC 구마모토 1공장 건설에 투입한 보조금은 4760억엔(약 4조 2000억원)에 달했다. 전체 건설비 절반에 가까운 파격적 지원금만큼 놀라웠던 것은 속전속결로 해결된 토지·산림 등 개발 제한지역 규제 완화였다. 2023년 당시 가마시마 이쿠오 구마모토 지사가 산업용지 전용 등을 담은 긴급 요망을 정부에 전달한 지 두 달여 만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원활한 토지 이용을 향한 규제 개혁에 임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이후 일본 정부는 지자체가 농지나 삼림 등 개발에 제한이 있는 '시가화 조정 구역'에도 건설 허가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다.
일본의 반도체 부흥 전략은 인공지능(AI)·로봇 등 미래 먹거리 전 영역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기업들은 투자 시작부터 촘촘히 쌓인 규제부터 마주한다. 이를 뚫어내는 만큼 투자의 시간은 지체될 수밖에 없다. AI용 데이터센터가 단적인 사례다. 규제가 풀리긴커녕 오히려 강화됐다. 10메가와트(MW)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사업자가 전력을 공급받을 때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전력 계통 영향평가 규정이 기존 신축 뿐 아니라 증설에도 적용된다. 각종 규제로 해외 기업 유치도 어려워지고 있다. 산업 경쟁력 향상은 단순히 기업이 지닌 기술력과 투자 능력에 기대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갈수록 심화되는 글로벌 기술 경쟁 시대를 맞아 일본처럼 우리도 때론 과감하고, 파격적인 지원 정책을 고민해 볼 때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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