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위대한 추억을 만든 ‘제2의 고향’이다. 이곳에서 선수 인생의 마지막을 우승으로 장식해 기쁘다.”
HL 안양의 골리 맷 달튼(39)은 은퇴 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 이렇게 말했다. 2016년 특별 귀화한 캐나다 출신 달튼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한국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문을 지켰던 선수다. 그의 한국 이름은 ‘한라성’(골문을 막는 철옹성이 돼 달라는 뜻)이다.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통산 9번째 우승을 차지한 HL 안양. HL 안양 제공.달튼은 5일 경기 안양빙상장에서 열린 레드이글스 홋카이도(일본)와의 2024~2025시즌 아시아리그 아이스하키 플레이오프 파이널(5전 3승제) 4차전에서 31세이브를 기록하며 안양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강민완(25)이 연장 피리어드에서 결승골을 터뜨린 안양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통산 9번째 파이널 우승과 세 시즌 연속 통합우승(정규리그+파이널 우승)을 이뤄냈다. 시리즈 내내 ‘선방쇼’를 펼친 달튼은 파이널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안양은 2014년 달튼이 입단한 이후 7차례 파이널 우승을 차지했다.
11년 동안 한국에서 뛴 달튼은 이번 파이널을 끝으로 빙판을 떠난다. 과거에 비해 더뎌진 체력 회복 속도 등 몸 상태가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엔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예전엔 너무나 쉽게 했던 동작들이 힘들게 느껴져서 떠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 아이스하키는 ‘파란 눈의 태극전사’ 달튼의 등장 이후 한 단계 성장했다. 한국은 2016년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 리그)에서 달튼의 선방 덕에 ‘숙적’ 일본을 상대로 34년 만에 공식 경기 첫 승을 거뒀다. 이후 한국은 달튼이 출전한 한일전에서 진 적이 없다. 달튼의 합류로 뒷문이 단단해진 한국은 2017년 세계선수권 그룹A에선 사상 첫 1부 리그 승격을 이뤄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카자흐스탄의 평가전에서 ‘이순신 헬멧’을 쓴 맷 달튼. 동아일보DB
달튼은 동료 귀화 선수 7명과 함께 평창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대회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그려진 헬멧을 준비해 ‘빙판 위의 충무공’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치적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해 올림픽 경기에선 착용하지 못했다. 달튼은 평창 올림픽에서 상대의 매서운 슈팅을 온몸을 던져 막아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귀화 선수들이 올림픽 이후 하나둘씩 한국을 떠났지만, 애국가를 능숙하게 부르고 불고기를 좋아하는 달튼은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평창 올림픽 이후 유럽 리그 팀들의 ‘러브콜’을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달튼은 “내게 많은 영광을 안겨 준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조만간 캐나다로 돌아가는 달튼은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 한국 아이스하키의 발전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달튼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안양의 골리들을 대상으로 클리닉을 열거나, 국제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의 파트타임 코치로 활동하는 것 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