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반대파, 초반부터 극렬히 갈려
"이제 편하다"·"이재명 막아야 하는데" 다양한 반응
무당층 "뭐가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정치 혐오감도
연합뉴스.
8년 사이에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됐다. 누군가는 기뻐했고, 누군가는 분노했다. 대한민국 정치는 극단적으로 분열됐다. 정치테러까지 자행되면서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헌법재판소가 4일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을 선고하자 실시간 방송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던 20대 여성 장 모씨는 눈물을 흘리며 환호했다. 장씨는 "그간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는 것 같다"며 "열심히 시위에 참석한 보람이 있다. 이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선고 과정을 보고 있던 50대 남성 권 모씨는 "정의가 살아있다"며 "내란은 중범죄인데 이를 상식적으로 판단해 탄핵을 인용한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용산구 한남 관저 인근에서 오전 10시께부터 집회를 연 촛불행동 참가자들도 헌재의 파면 소식이 전해지자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보였다.
반면 누군가의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웠다. 국민의힘을 지지한다고 밝힌 20대 남성 김 모씨는 "더불어민주당이 입법폭주 등으로 날뛸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고, 또 다른 20대 남성 한 모씨는 "다들 탄핵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대로는 나라가 망한다"고 우려했다. 헌재 앞에서 모여 있던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소리를 지르면서 통곡하기도 했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지지자 1만5천명(경찰 비공식 추산)도 선고 결과를 듣고 "미쳐 돌았구나", "거짓말하지 말라", "이게 말이 되냐"라고 울분을 토했고,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이 윤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발언을 할 때마다 혀를 차거나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을 보였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는 탄핵 정국 초반부터 극렬히 갈려 서로를 향한 혐오를 내뱉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대통령 체포를 시도했을 때 찬성파와 반대파는 각각 집단으로 뭉쳐 시위를 진행했다. 찬성파는 반대파를 향해, 반대파는 찬성파를 향해 모욕적인 언사를 했다. 서울 서부지방법원이 지난 1월 19일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하자 지지자들은 이를 담당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겠다며 법원에 난입했다. 현판을 부수고 유리창을 깼다. 경찰을 향해서도 폭력을 휘둘렀다. 사법부가 실체적 위협을 받은 사건이어서 많은 국민이 충격을 받았다.
헌재가 윤 전 대통령에 대해 탄핵을 결정하자 헌재 앞에서는 헬멧과 방독면 등을 쓴 남성이 안국역 5번 출구 앞에 세워진 경찰버스 유리창을 곤봉으로 깨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헌재 일대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흔들며 오열하고 경찰관을 향해 욕설하는 등 격앙된 분위기를 보였다.
탄핵은 우리 모두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정치 혐오감은 심해졌다.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도 떨어졌다. 지난 2월 27일(현지시간)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 보고서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7.75점을 받았다. 2023년에서 세계 22위였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2024년에는 32위로 10위나 떨어졌다. 자신이 무당층이라고 밝힌 30대 남성은 "뭐가 좋고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며 "이제는 관심도 두기 싫다. 다 거기서 거기"라고 피로감을 드러냈다.
안소현기자 ashright@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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