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국회 힘 합쳐 '비상 계엄 저지'…122일간 '파면 촉구'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날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윤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2025.4.4/뉴스1 ⓒ News1 사진공동취재단
(광주=뉴스1) 박준배 기자 =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12·3 비상계엄 내란 수괴 혐의를 받은 대통령 윤석열이 파면됐다.
헌법재판소는 4일 오전 11시 대심판정에서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를 열고 국회의 탄핵소추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22일 만, 지난해 12월 14일 탄핵소추안이 접수된 지 111일 만이다.
'윤석열 파면'은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다'고 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처럼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의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10시 23분, 윤석열 대통령은 예고 없이 대국민 긴급 담화를 발표했다. 윤 대통령은 종북과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며 담화 발표 4분 만인 10시 27분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갑작스러운 계엄 선포는 80년 5·18민주화운동 이후 45년 만에 처음이었다. 80년 5월에는 비상계엄 확대 하루 전인 17일 예비 검속을 통해 정치인과 재야인사를 잡아들였다. 하지만 이번에 '예비 검속'은 없었다.
민주당은 계엄 선포 약 12분 만인 오후 10시 40분 국회 긴급 소집을 요청했다. 이재명 당 대표도 SNS로 실시간 상황을 중계하면서 국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국회의원과 보좌진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도 속속 국회 앞으로 도착했다.
경찰은 국회 출입을 차단하고 계엄군은 국회 장악을 시도했다. 국회경비대는 국회의원까지 국회 입장을 막았다.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국회 출입문과 담장을 막아선 경찰에 맞서 의원들의 국회 진입을 도우며 "계엄철폐"를 외쳤다. 우원식 국회의장,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국회의원들은 담을 넘어 국회로 진입했다.
무장한 계엄군은 헬기로 국회 앞마당에 내려 국회의사당 본청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바리케이드를 쌓고 저항하며 계엄군의 본청 진입을 막았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들이 수도방위사령부 작전 차량과 장갑차 등을 맨몸으로 막으며 여의도 진입을 저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앞 계엄군 차량 뒤로 군 헬기가 경내로 비행하고 있다. 2024.12.4/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시민들의 저항 속에 비상계엄 선포 1시간 만에 국회의원 100여 명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했고 12월 4일 1시 1분에 재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80년 5월 17일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광주시민들도 계엄군에 맞섰다. 하지만 계엄군의 잔인한 유혈 진압으로 10일간의 항쟁은 막을 내렸다.
이번에는 계엄군도 무력 진압을 할 수는 없었다. 2024년에 '계엄 선포'라는 '정신 나간 명령'에 젊은 군인들은 동요했고 지휘도 혼선을 빚었다.
계엄을 막은 가장 큰 힘은 죽음의 공포 앞에 맞선 '시민'이었다. 이들을 지킨 건 '정보'였다. 80년에는 정보 수단이던 신문과 TV·라디오 등 언론만 통제하고 검열하면 됐다.
실제로 당시 광주의 고립과 피해 사실을 외부에선 알지 못했고 오히려 북한군이 침투했다는 등 가짜뉴스를 퍼뜨려 국민을 속였다.
이번에도 80년 5월과 똑같이 계엄포고령을 통해 정치 활동과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언론·출판을 통제하려 했으나 막지 못했다.
언론은 실시간으로 기사를 송출하고 일반 시민들도 SNS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전국의 상황을 공유했다. 전 국민은 실시간으로 '불법적인 친위 쿠데타'를 지켜보며 분노했다.
80년 5월 계엄군에 처음 대항한 이들은 '20대 대학생'이었으나 이번엔 전 국민이 참여했다.
80년 5월 수도권 주요 대학의 '서울역 회군' 이후 전남대를 비롯한 광주·전남 대학생이 중심이 돼 저항했으나 이번 '서울의 밤'에는 본무대가 국회였고 시민들이 막아서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젊은 날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50~70세대의 경험치와 교과서에서 잘못된 역사를 배운 10~40세대의 판단력이 합쳐지면서 '비상계엄 조기 종식'이 가능했다.
계엄 종식 후에 시민들은 122일간 거리에 나서 윤석열 파면을 촉구했다. 폭설에도 굴하지 않는 '키세스 시위대'와 그들을 응원하기 위한 카페 선결제가 이어졌다. 80년 광주 5·18 때 주먹밥과 물을 나눠주던 공동체가 재현됐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위대한 시민이 해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켜냈다"며 "가장 위헌적인 내란 세력을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막아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 아시아 여성 작가 중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에서 열린 노벨상 연회에서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2024.12.11/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5·18을 소재로 한 '소년이 온다'를 쓴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을 적었다고 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 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며 80년 5월 전남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됐던 박용준 열사의 마지막 일기를 소개했다.
박용준 열사는 계엄군에게 사망하기 전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한강 작가는 "그 문장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며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한다.' 45년 만에 역사의 수레바퀴는 한 바퀴 더 굴러 진일보했다.
nofatejb@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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