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야와 극한 갈등 속 국회 시정연설에도 불참
소통 부재 꾸준히 제기…계엄 치명적 오판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문을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3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시청하고 있다. 2024.12.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서울=뉴스1) 정지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현직 대통령으로는 11년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한 것은 2022년 5월 취임 이후 거야와 계속된 충돌이 극에 달했던 사례로 꼽힌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포함해 각종 재판을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국정 운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은 윤 대통령은 야당 강행 처리 법안에 거부권으로 맞서며 대립각을 세웠다.
의석수를 앞세운 야당 공세에 구석에 몰린 윤 대통령은 비상대권을 행사했으나 4일 탄핵심판대에서 파면이라는 최후를 맞이했다. 결과적으로 치명적인 오판을 범한 셈이 됐다.
이날 오전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며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된 윤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불통'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녔다.
2022년 5월 10일 임기를 시작한 윤 대통령은 처음부터 여소야대라는 불리한 국회 지형 속에서 첫발을 떼야 했다.
국회에서 입법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탓에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과제는 좀처럼 추진력이 붙지 못했고 오히려 야당이 여야 합의 없이 강행 처리하는 법안을 막아내기에 급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4회 국무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의결했다. (대통령실 제공) 2023.4.4/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지난 2023년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까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만 총 25건에 달한다. 사실상 1개월에 한 번꼴로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대선 패배 후 2022년 6월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하고 곧장 당권을 잡으면서 윤 대통령과 갈등은 더 격화했다.
사법리스크를 안고 있던 이 대표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정부 때리기에 열을 올렸고 윤 대통령은 강경한 태도로 맞서자 두 사람 사이에 협치가 끼어들 틈은 갈수록 좁아졌다.
재임 기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정 운영 부정평가 이유 중에서 '불통'은 상위권을 계속 차지해 왔다.
윤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의 카운터 파트너는 여당 대표라는 이유로 여러 차례에 걸친 '영수회담' 제안을 피했다. 그러나 기저에는 범죄 피의자를 대통령이 만날 수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에서조차 윤 대통령이 검사 출신인 탓에 이 대표를 야당 대표로 인정하지 못하면서 대야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에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으나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며 범야권에 192석을 내준 뒤 윤 대통령은 "앞으로 대통령인 저부터 소통을 더 많이, 더 잘해 나가겠다"고 변화를 다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첫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4.29/뉴스1(대통령실 제공) 2024.4.29/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윤 대통령이 곧이어 이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불러 첫 영수회담을 했지만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으며 대야 관계 재정립에도 실패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지난해 22대 국회 개원식에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처음으로 불참했고, 예산안 시정연설 역시 한덕수 국무총리 대독으로 진행되면서 국회와는 등을 돌리게 됐다.
여권 관계자는 "참모들 사이에서도 시정연설은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으나 국회에서 대통령이 여러 차례 수모를 겪은 터라 의견을 개진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도 야당의 일방적인 정부 예산안 삭감, 무분별한 장관 등 공직자 탄핵, 입법 강행 처리 등이었다.
지난해부터는 한동훈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야당뿐 아니라 여당과도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2024년 연초부터 이른바 '윤한 충돌'이 정국을 시끄럽게 했으며 계엄 전까지도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논란에 더해 명태균 논란으로 쇄신을 요구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마찰을 빚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특히 아끼던 후배인 데다 법무부 장관을 지낼 때는 이재명 저격수로 활약했으나 서 있는 위치가 달라지자 관계는 급변했다.
지난해 10월 어렵게 윤 대통령과 한 전 대표가 대통령실 청사 앞 파인그라스에서 81분간 회동했으나 관계는 개선되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파인그라스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면담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4.10.21/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후보 시절 "참모 뒤에 숨지 않겠다"는 약속도 대언론 관계에서는 지켜지지 않았다.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면서 시작된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은 이른바 '날리면' 논란과 MBC 기자와 충돌 등을 거치며 사라졌고,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도 특정 언론과 인터뷰로 대체됐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이후 취임 2주년 계기 두 번째 기자회견이 열리기까지는 1년 9개월이 걸렸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 논란에 지난해 11월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열고 머리를 숙였으나 한 달 후 비상계엄을 단행하며 사과가 무색해졌다.
한 번 결심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습은 '뚝심'으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타협을 모르는 불통 이미지를 강화시켰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등은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못한 탓에 역풍을 불러왔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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