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미디어 파도] 지브리스타일 변환·4컷만화 생성 기능 반향
이용자가 홍보하고 자발적으로 학습시켜주는 '마케팅'
AI창작의 시대? 한계 분명, 역설적으로 '질 저하' 우려도
[미디어오늘 금준경 기자]
▲ 사진=GettyImagesBank
소셜미디어와 메신저에선 자신의 얼굴을 지브리 스타일 그림으로 변환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AI가 만든 4컷 만화도 쏟아졌다. AI 창작이 전례 없이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기술의 활용도가 과장된 면도 있고 창작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샘 올트먼의 '마케팅', “공짜로 학습시켜줘”
“26개월 전 챗GPT를 출시한 후 5일 만에 가입자가 100만 명이 됐다. 지금 한 시간 만에 (챗GPT) 사용자가 100만 명 늘었다.” 지난달 31일 샘 올트먼 오픈AI CEO가 엑스(X)에 올린 글이다.
지난달 25일 오픈AI가 공개한 '챗GPT 4o 이미지 생성' 기능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년 간 국내 구글 트렌드 분석을 보면 '챗GPT' 키워드 검색 빈도는 지난 3월3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이미지를 특정 스타일로 바꿔주는 기능은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 변환'으로 알려져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 일주일 간 구글의 '챗GPT' 연관 급상승 검색어는 '지브리 이미지', '지브리 스타일 GPT' 등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오영진 서울과기대 융합교양학부 초빙조교수는 오픈AI의 '마케팅 전략'을 지적했다. 그는 “항상 무료로 풀고, 베타테스트를 한 다음 사용자들이 무엇을 주로 다루는지를 체크한다”며 “지브리풍으로 그림을 만든다고 해도 바로 완벽하게 되지는 않는다. 이 과정에서 이용자가 평가를 하게 되는데 이 역시 피드백 데이터로 가고 있다. 인간에 의해 강화를 시켜주고 있다”고 했다. 실제 누구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전세계인이 '지브리풍 그림 그리기'와 '4컷 만화'를 체험하고 결과물을 올리면서 적극 홍보가 이뤄지고 자발적으로 AI학습도 시켜주고 있다.
▲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엑스(X) 프로필 이미지.
샘 올트먼 CEO의 이 같은 '마케팅'은 처음이 아니다. 오픈AI는 지난해 5월 음성 대화가 가능한 GPT-4o를 선보였는데 AI 음성 중 하나가 영화 'Her'에서 AI 사만다의 목소리를 맡은 스칼릿 조핸슨의 목소리와 흡사해 '무단 사용'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샘 올트먼 CEO는 GPT-4o 공개 후 자신의 엑스(트위터)에 “Her”라는 글을 남기며 적극 홍보했다.
AI창작의 발전, 긍정적이기만 할까
'챗GPT 4o 이미지 생성'이 널리 쓰이면서 비윤리적 사용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른다. 미국 백악관은 지난달 27일(현지시간) 공식 엑스(X) 계정에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마약 밀매, 불법 거주 혐의로 체포된 여성의 모습을 재현한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올려 논란이 됐다. 이스라엘은 자국 군을 홍보하는 이미지를 지브리 스타일로 만들어 올렸는데 이는 전쟁에 반대해온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념과 정면 충돌한다. 미국 IT매체 더버지는 백악관 게시물에 관해 “체포된 이민자에 대한 조롱이자, 국가 차원의 사이버불링”이라며 “(오픈AI가) 아무 말 없이 용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림체를 변환해주고, 만화를 그려주고, 소설을 써주고, 영상까지 제작하는 등 AI를 통한 창작 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한다. 영상콘텐츠업계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이 점점 많아지고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AI가 사람 손과 발을 제대로 못 그렸는데 최근에는 실제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자본을 가지 못한 이들에게 기술을 통해 영상,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접근성이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 이스라엘 군 소셜미디어 계정 갈무리.
한계도 있다. 기술이 발전해도 창작의 영역을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오영진 조교수는 “수업에서도 거대언어모델을 활용해 창의적으로 쓰게 하지만 '한계도 있다'는 사실을 함께 말한다”며 “모든 것이 자동화돼서 돈을 벌 수 있다거나 (마우스로) '딸깍' 한 번에 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창의적인 인간이 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요훈 IT칼럼니스트는 부정적인 쓰임새가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요즘 실제 사람이 나온 사진은 (초상권 등의 이유로) 흐림처리를 많이 하는 반면 AI가 만든 약간의 광택이 나는 얼굴 톤의 이미지가 엄청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챗GPT의 필터를 활용하게 됐다”며 “고양이나 사람 사진이 필요하면 저작권이 있는 사진을 구매하는 대신, 저작권을 가진 사진을 AI에 입력해 그림체를 바꿔서 쓰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이요훈 칼럼니스트는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서 툴이 좋아지고,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돼 관련 전공도 많이 생겨났고, 실력도 많이 올랐다”며 “그런데 AI를 통해선 박살날 수 있다. 퀄리티는 좋지만 다 어디서 본 듯한 똑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거다. 외려 새로운 콘텐츠를 창작해낼 사람들이 사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저작권 침해 논쟁 넘어선 '규율' 고민해야
현재 저작권 침해를 둘러싸고 공방이 일고 있다. 특정 스타일을 모방한 것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하는지, AI 학습 과정에서 지브리의 이미지를 학습한 게 맞다면 문제가 되는지 등이 쟁점이다. 다만 '특정 그림'이 아닌 '그림 스타일'은 저작권 적용 대상이 아니고, AI 학습 과정에서 팬들이 그린 '팬아트'나 공개된 스틸컷 등을 학습할 경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관련 기준이 없는 건 아니다. 2023년 한국저작권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공동 발간한 '생성형 AI 저작권 안내서'에 따르면 “원하는 스타일의 AI 산출물 도출을 위해 특정 작가의 작품 또는 특정 이미지를 집중적으로 학습시켜 적용할 경우 해당 작품 등과 동일·유사한 산출물이 생성됨으로써 저작권 침해 가능성 또한 현저히 높아질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는 '안내서'일 뿐이다.
AI로 인한 창작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부 차원의 기조는 찾기 어렵고 부처마다 온도 차가 크다. 산업계에선 해외 AI기업을 따라잡기 위해 학습과 관련해선 규제 완화가 필요하단 지적을 반복하고 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산업계 주장을 비중 있게 다룬다. 최근 국회가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AI기본법은 AI산업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다.
반면 문화체육관광부는 창작자 권리에 주목하고 있지만 범정부 차원의 기조로 이어지진 못한다. 수년째 '저작권 워킹그룹'을 만들어 전문가들이 논의하고 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이요훈 칼럼티스트는 “단순히 창작자에게 보상을 하기 위한 룰이 돼선 안 된다. 보상을 한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행동 자체를 규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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