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언론·시민 모두 좌우로 분열…대외신인도·민주주의 지수도 ‘빨간 불’
전한길·김민전·박지원·김용민 등, 양쪽 진영 모두 지지층 겨냥한 국론 분열성 발언
전문가 “헌재 판단에 ‘승복하는 모습’ 보여야 성숙한 민주주의”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왼쪽)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 110일이 지났다. 윤 대통령은 오는 4일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될 탄핵심판 선고 결과에 따라 대통령으로 직무 복귀를 하거나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사저널 양선영 디자이너·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지 110일이 지났다. 그동안 대한민국 정치는 좌·우가 극단으로 분열됐고, 시민들도 이념에 따라 나뉘었다. 탄핵 정국이 장기화되고, 행정부 수장의 부재가 계속되자 한국의 '대외신인도'(국가가 국제 사회에서 신뢰받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 하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을 바라보는 외국의 평가가 이를 방증한다. 2월27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4'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7.75점(10점 만점)으로 32위에 위치하며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됐다. 2023년까지만 해도 세계 22위였던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가 1년 만에 10계단이나 떨어진 것이다.
"尹 지키자"며 법원 폭동·공권력 겁박·분신까지 행한 극렬 지지층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폭동으로 인해 사법부가 위협받은 일은 많은 시민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1월19일 오전3시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를 결정했는데, 지지자들은 이를 담당한 차은경 부장판사를 찾겠다며 법원에 진입했다. 법원 후문과 정문의 유리창을 깨는 것은 물론, 소화기로 법원 내부를 무차별 난사했고,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을 향해 물리력도 행사했다.
다행히 차 판사는 당시 영장 발부를 결정한 직후 퇴근한 상태에서 화를 면했다. 그러나 흥분한 지지자들은 "차은경 나와라"를 연신 외쳤고, 끝내 그를 찾지 못하자 법원 내부는 물론 외벽을 부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서부지방법원의 상징인 대형 옥외 간판은 땅에 떨어졌고, 현장 정리를 위해 경찰기동대 1400명이 긴급 투입됐다. 시위대 85명은 소요, 공무집행방해, 건조물침입, 공용물품파손 등의 혐의로 긴급체포됐다.
한남동 관저 앞은 매일이 집회·시위의 연속이었다.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서겠다고 밝힌 순간부터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모였고, 이들은 소위 말하는 '태극기부대'원들 그리고 기독교 세력과 합세해 공권력 집행을 방해했다. 대통령 경호처까지 나서서 윤 대통령 옹위에 나서자 공수처는 체포영장 1차 집행에 실패하는 수모도 겪어야 했다.
"윤석열 대통령 만세"를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사망한 시민도 있었다. 3월7일 서울 중구에서 분신을 시도한 이 79세 남성은 결국 화상 치료를 받던 중 사망했다. 앞선 1월15일에도 윤 대통령 체포에 항의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 인근에서 50대 남성이 분신을 시도해 사망했다.
연일 보도되는 '가짜뉴스', 시민들 혼란에 빠트려
탄핵 정국 내내 여론의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일부 기성 언론과 뉴미디어도 극단으로 치달았다. '가짜뉴스'는 제대로 된 검증 없이 보도됐고, 2차·3차 재생산되며 사실인 것처럼 퍼져 나갔다.
한 지역 일간지는 탄핵 정국 내내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집회 장면을 실시간으로 네티즌들에게 공유했다. 이 매체 소속 아나운서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에 대한 인터뷰도 진행했는데, 극우 유튜버로 불리는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해 '편향적'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 '스카이데일리'는 12·3 비상 계엄 당시 계엄군이 선거연수원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을 체포했다는 내용의 오보를 내기도 했다. 또, 중국 전산조작 요원 90명이 체포돼 미국 정보요원에게 수사받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로 네티즌들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한국신문윤리위원회로부터 무더기 제재를 받았지만, 자극적인 보도로 보수 성향 네티즌들은 환호했고 성난 군중을 돋우는데 일조했다.
보수 유튜버 '신남성연대'는 텔레그램에서 단체 대화방을 운영하며 윤 대통령을 비판하는 댓글이 많이 달린 온라인 기사 링크를 대화방에 공유하고 다 같이 몰려가 윤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댓글을 단 뒤, 이를 베스트 댓글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작업을 '여론 정화'라고 불렀는데, 텔레그램방 참여 인원만 약 3만명이다.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좌·우로 분열됐다. 전문가들은 더 이상의 분열과 갈등은 없어야 한다며, 탄핵심판 선고를 기점으로 통합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챗GTP 그래픽 이미지
국회의원, 스타강사도 '선동' 최전방 공격수로
공인(公人)들도 국론 분열에 일조했다. 한국사 일타강사로 불리며 수험생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전한길씨는 탄핵 정국에서 보수 진영의 스피커가 됐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선동성 발언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 유튜브 채널에서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집 주소를 공개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선 "더불어미친당"이라며 막말을 일삼고,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향해선 "배신자. 호래자식"이라며 거친 언사를 내뱉었다. 처음 그가 등장할 때만 해도, '신선하다'는 평이 있었지만 선을 넘는 발언이 계속되자 대중들은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강성 친윤(親尹)으로 분류되는 김민전 의원도 탄핵 정국에서 잘못된 정무적 판단과 선동성 발언으로 국론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는 1980~90년대 시위 진압 전문 경찰부대를 뜻하는 '백골단'의 이름을 딴 청년 조직을 국회에서 소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후 김 의원은 자신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사과했으나, 조국혁신당에선 김민전 징계안을 발의했다. 현재 김 의원은 명예훼손·직권남용 혐의로 고발당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수사를 받고있다.
야당의 주요 스피커들도 지지층을 겨냥한 선동성 발언을 행하긴 마찬가지였다. 4선 중진이자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향한 압박성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그는 2일 라디오 방송에서 "만약 (파면에 반대하는) 그런 의견을 내는 헌법재판관은 역사적 죄인이자 제2의 이완용으로 자자손손이 대한민국에선 못 산다"고 했다.
김용민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같은 날 한 라디오 방송에서 "살인죄를 저지른 사람이 반성하지 않고 있는데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질문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승복 의사를 밝힌 국민의힘처럼 민주당은 탄핵이 기각돼도 승복하느냐'는 진행자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한민국, 갈등·분열 딛고 화합·통합 길로 가야"
윤 대통령이 탄핵 소추된 110일은 국정이 마비된 사실상 무정부 상태였다. 지난해 12월29일 발생한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에 이어 지난 3월 말에는 경남 산청과 울산, 경북 의성 등 영남권에 사상 최대 피해를 낳은 대형 산불까지 발생했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직후 보호무역 정책을 설파하며 3일 한국을 상대로 25% 상호관세 폭탄을 부과하는 등 대·내외적 악재가 쌓여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분열됐던 대한민국이 4일 있을 윤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기점으로, 미래를 향한 재도약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재판소 판결을 두고, 불복하는 일이 발생하거나 유혈사태가 발생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경고도 함께했다.
형사 사건 전문 문건일 변호사는 "탄핵 제도를 만든 취지는 공직자가 위법한 행동을 할 경우 제동을 걸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줄 탄핵이 발생해 브레이크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문 변호사는 "(탄핵 심판 선고가 날 경우) 법치주의 제도에서 입법부와 국가 기관이 움직여야 한다. 헌법재판소가 형사재판에 준하는 증거와 법리가 없어서 (판결을) 못 믿겠다고 하는 생각은 국민들이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창덕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110일간 탄핵 정국이 이어지는 동안 보여줬던 국민들의 질서있는 집회는 성숙한 참여 민주주의에 대해 상기시켜주는 기회가 됐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라도 여·야 그리고 국민들은 4일 진행될 헌재 결과에 승복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정치인들은 탄핵심판 선고를 기점으로 국민 그리고 국가를 위한 대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이제는 갈등·분열이 아닌 화합·통합의 길로 가야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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