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 레칠레 테보고. 게티이미지


“스포츠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범죄자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2024 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금메달리스트 레칠레 테보고(21·보츠와나)가 한 말이다.

테보고는 2일 BBC를 통해 “어린 시절, 주변에 범죄가 만연했던 환경 속에서 스포츠가 유일한 탈출구였다”며 이같이 고백했다.

테보고는 보츠와나 남부 카니라는 시골 마을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는 “어릴 적 자란 동네엔 범죄자들이 많았고 그게 유일한 생존 방식인 줄 알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처음엔 축구로 시작했다. 왼쪽 윙어로 뛴 그는 초등학교 시절 육상에 입문했다. 훈련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며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위험한 유혹과는 멀어졌다. 테보고는 “학교 끝나고 훈련하느라 지치면, 길거리에 나돌 틈도 없었다”며 “친구들도 같이 훈련에 끌어들였고 지금은 다들 축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스포츠로 인생이 바뀐 경험을 바탕으로 테보고는 어린 세대에게 꿈과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그는 세계육상연맹(World Athletics) 유소년 프로그램 ‘키즈 애슬레틱스(Kids’ Athletics)’ 홍보대사로 위촉돼 아프리카 각지에서 육상을 알리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고, 큰 꿈을 꾸고, 스포츠를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며 “여가 시간이 많아지면 잘못된 길로 빠지기 쉽다. 나도 범죄, 약물, 도둑질 등이 만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세계육상연맹 세바스찬 코 회장도 그를 “재능, 자신감, 겸손함을 모두 갖춘 차세대 롤모델”이라며 “테보고 같은 선수가 등장하면, 다른 어린 선수들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말했다.

테보고는 지난주 자신이 어린 시절 훈련한 마 마시레 경기장에서 1000명이 넘는 어린이들과 릴레이 행사에 함께했다. 테보고는 “지금도 훈련 끝나고 이곳을 지날 때 예전 생각이 난다”며 “이 작은 곳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전 세계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가진 게 적더라도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 된다”고 말했다.

2024년은 테보고에게 희비가 엇갈린 해였다. 파리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기 불과 몇 달 전, 어머니 세라티와 씨가 세상을 떠났다. 그의 쾌거에 보츠와나 정부는 하루 동안 국가 공휴일을 선포했고, 수만 명의 시민이 귀국한 영웅을 맞았다.

테보고는 이어 열린 4X400m 릴레이에서도 보츠와나 대표팀의 앵커로 나서 미국에 이어 은메달을 안겼고, 세계육상연맹의 ‘올해의 선수’ 후보로도 이름을 올렸다. 테보고는 “금메달 덕분에 많은 문이 열렸다. 나 혼자 이룬 건 아니다”고 말했다. 자신을 ‘조용하고 겸손한 스타일’이라고 밝힌 테보고는 “나는 (미국 스프린터) 노아 라일스처럼 시끄럽고 튀는 스타일이 아니라 얼굴마담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테보고는 현재 기본 체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400m 출전에 집중하고 있다. 최근 네차례 400m 레이스 중 한 번 우승했다. 조만간 본래 주종목인 200m로 복귀할 예정이다. 그는 “보츠와나 국민들이 올림픽 때 내가 한 걸 다시 보고 싶어 한다”며 “그 기대에 보답하고 싶다”고 소망했다. 내년에는 보츠와나가 아프리카 대륙 최초로 세계육상 시니어 대회를 유치한다. 테보고는 “새로운 얼굴들이 2026년 대회에 등장할 것”이라며 “지금도 많은 아이들이 그 무대에 서기 위해 정말 열심히 뛰고 있다”고 말했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