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해커 일러스트. /연합뉴스
기업은 물론 개인들까지 AI(인공지능)에 점점 의존하게 되면서 사이버 보안 위협 역시 커지고 있습니다. AI가 탑재된 시스템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때 겪는 혼란은 이제 더 이상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조선일보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보스턴컨설팅그룹(BCG) 코리아가 앞으로 벌어질 사이버 전쟁을 예측하고 금융·제조·의료·유통 등 각 산업별 대응 전략을 제시합니다.
갑작스러운 통신 두절, 자율 주행 차량의 집단 오작동, 그리고 누구도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는 기술 시스템의 붕괴까지. 그동안 영화에서나 보던 사이버 공격이 AI(인공지능) 기술 확산으로 곧 우리 앞에 닥칠 일이 됐다. 사이버 공격으로 AI가 탑재된 시스템들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지는 순간 벌어질 일이다.
구글 클라우드가 작년 말 발표한 ‘2025년 사이버 보안 전망’ 보고서에는 “앞으로 사이버 공격은 더 증가할 것이며 각종 기술이 발전하고 글로벌 위협도 증가해 사이버 보안 환경은 더욱 복잡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AI를 악용한 사이버 위협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AI는 검색 엔진에서 의료 진단, 자율 주행, 군사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판단을 대체하거나 보조하는 ‘두뇌’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AI가 악의적인 의도로 조작되거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오작동할 경우 그 여파는 단순한 해킹 사고 이상의 재앙이 될 수 있다. 기존에 세워뒀던 보안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AI 위협, 인간이 감당 못 할 방식과 속도로 진화
사이버 위협은 더 이상 해커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픈소스 모델과 생성형 AI 툴의 보급으로 비전문가도 AI를 활용한 사이버 공격을 가능하게 됐으며, AI 의존 사회로 갈수록 사이버 위협에 대한 취약성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의료, 금융, 교통 등 핵심 인프라가 AI에 의존할수록, 공격 성공 시 사회적 파장이 훨씬 커지게 된다. 2030년의 사이버 위협은 단순한 데이터 탈취가 아니다. 스마트 시티의 신호등, 자율 주행차, 의료용 웨어러블 해킹으로 도시 전체가 마비되고, 환자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은 도시 설계와 인프라 구조의 핵심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비밀번호’나 ‘OTP’ 대신 생체·행동 기반 인증 방식이 일반화될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AI 딥페이크나 디지털 트윈을 통해 위조 가능해지면서 ‘나’라는 존재 자체의 진위를 검증하는 방식이 보안 기술 강화의 핵심 영역이 될 것이다. 또한 동시에 AI 자체도 공격 대상이 된다. AI 학습용 데이터에 악의적 정보를 주입해 AI의 오작동을 유도하는 데이터 중독이나 AI의 학습 정보를 역으로 추출해 기밀을 유출하는 모델 탈취, 또 인간의 눈에는 똑같은 데이터로 보이지만 AI가 인식하지 못하도록 교묘히 변형하는 AI 교란이 가능해졌다.
지금까지 사이버 공격의 주요 대상은 ‘데이터’였다. 기업의 고객 정보, 정부의 기밀 자료, 금융 계좌 정보 등 민감한 데이터를 탈취하거나 암호화해 금전적 이득을 추구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 일반적인 공격 방식이었다. 오랫동안 사이버 보안이 ‘정보 보안’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다. 그러나 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는 이러한 전통적인 사이버 전쟁의 양상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과거에는 공격자들이 서버, 데이터베이스, 웹사이트 등 정적인 자산을 겨냥했다면, 이제는 AI가 작동하는 ‘행동 그 자체’가 공격의 새로운 표적이 되고 있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이민경
◇사이버 전쟁의 새 국면은… AI vs AI
AI 기술 고도화는 사이버 보안 구조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에는 인간이 중심이 되어 보안 전략을 설계하고 대응하는 가운데 AI가 이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AI가 전면에서 공격과 방어를 주도하는 자동화된 실시간 전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공격하는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안 시스템의 반응 패턴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그 결과를 학습해 새로운 취약점을 스스로 탐색한다. 예컨대, 방화벽의 응답 속도, 로그인 실패 처리 방식, 이메일 필터링 알고리즘 등을 면밀히 분석해 이를 우회하거나 무력화할 전략을 능동적으로 생성한다. 딥페이크, 자동화된 피싱 이메일, 제로데이 취약점 탐색 등도 모두 AI에 의해 한층 정교해지고 있다.
반면 ‘방어하는 AI’는 수천 개의 네트워크 로그, 사용자 행동 패턴, 트래픽 흐름 등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인간이 인지하기 어려운 이상 징후를 선제적으로 감지하고 차단한다. 머신러닝 기반의 방어 AI는 스스로 판단 기준을 조정하며, 새롭게 등장하는 공격 유형에 대한 대응 전략을 실시간으로 학습하고 적용한다.
이처럼 공격과 방어 모두 AI가 주도하는 사이버 전장에서는 인간의 역할 또한 변화하고 있다.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직접 판단하고 대응하는 ‘판단자’가 아닌, AI 전투를 설계하고 통제하는 ‘조정자’이자 전략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이제 사이버 전쟁은 끊임없이 학습하고 대응하는 알고리즘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고 있으며, 누가 더 정교하고 민첩한 AI를 운영하는가가 국가와 기업의 사이버 생존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사이버 보안, ‘차단’에서 ‘예측’으로
결국 사이버 보안의 본질적 전략이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제 사이버 위협은 물리와 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보다 빠르게 진화하는 속도로 우리를 위협한다. 이런 환경에서 기존의 보안 전략, 즉 침입을 ‘차단’하고 ‘봉쇄’하는 방식만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 앞으로의 보안은 사전에 예측하고, 공격이 발생하더라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구조, 즉 복원력 중심의 보안 체계로 진화해야 한다.
사이버 보안 전략의 핵심은 ‘사이버 레질리언스(Cyber Resilience)’가 될 것이다. 이 전략의 핵심은 공격을 100% 차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피해 발생 이후 얼마나 빠르게 핵심 시스템을 복구하고, 업무를 재개할 수 있느냐가 경쟁력의 기준이 된다. 이를 위해 기업과 기관들은 자동 백업 시스템, 롤백 기능, 데이터 무결성 검증 등 비즈니스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술적 구조를 선제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인간 면역 체계에서 영감을 얻은 ‘디지털 면역 시스템(Digital Immune System)’ 구축에도 서둘러야 한다. 구글, IBM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AI, 머신러닝, 자동화 툴을 통합해, 스스로 이상 징후를 감지하고, 학습하며, 대응까지 자동화하는 보안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과거에는 정해진 룰에 따라 반응하는 시스템이 주류였다면, 앞으로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고, 스스로 진화하는 자율적 방어 체계가 사이버 보안의 주역이 될 것이며, 보안은 ‘자동화’를 지나 ‘자율화’를 거쳐, 결국 자가 진화(Self-Evolving)의 단계로 나아갈 것이다.
기술적 진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개인의 얼굴을 모방하고, 대화를 재현하며, 행동 패턴까지 예측 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윤리’라는 새로운 방어선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업과 기술 개발자는 단순한 보안 제품의 공급자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지는 보안 설계자로서의 역할을 자각해야 한다. 결국 사이버 보안의 미래는 단순한 방어 기술의 발전이 아닌, 복원력·자율성·윤리성이라는 세 가지 축이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니라, 침입에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이버 보안의 새로운 표준이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디지털 자산 편입된 금융시장, 새로운 공격 대상
앞으로 사이버 보안은 단일 해답으로 수렴하지 않는다. 산업군마다 디지털 전환의 방향과 속도, AI 및 데이터 의존도의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 산업은 고유한 보안 위협과 과제를 안고 있으며, 그에 맞는 전략적 대응이 필요하다. 각 산업군별로 대응 전략은 이렇다. 우선 금융 분야는 디지털 자산이 주류 금융 시장에 편입됐다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 가상 화폐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가 보편화되는 미래에는 자산 자체가 디지털 코드로 존재한다. 이는 새로운 공격 대상이 된다. 특히 양자 컴퓨팅의 발전은 기존 암호 알고리즘의 안전성을 위협하며, 이에 따라 양자 내성 암호 기술의 도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것이다. 더불어 AI를 활용한 자동화 금융 서비스와 이상 거래 감지 시스템도 공격자에 의해 교란될 수 있어, 알고리즘의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 역시 핵심 보안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
제조업과 인프라 산업은 스마트팩토리, 지능형 전력망, 자율 운송 시스템 등의 확산과 함께 사이버 보안이 물리적 안정성과 직결되는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각종 설비와 장비가 센서와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산업 사물인터넷(IoT) 환경에서는 기존의 폐쇄형 운영 기술(OT) 시스템이 외부와 연결되면서 IT-OT 간 보안 게이트웨이의 필요성이 급증하고 있다. 또한 실제 공정을 반영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반 시뮬레이션은 운영의 최적화를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위협이 시뮬레이션 단계부터 침투할 수 있다는 새로운 보안 리스크도 만든다. 물리적 시스템의 고장을 유발할 수 있는 ‘사이버-물리 통합 공격(CPS Attack)’에 대한 대비가 산업 보안의 중심축이 될 것이다.
◇의료 분야도 AI...AI가 내린 오진은 누구 책임?
의료 분야는 유례없는 디지털 정밀화 시대로 진입 중이다. 환자의 유전체 정보, 생체 신호, 생활 습관 데이터가 통합되어 맞춤형 치료를 설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처럼 민감한 생체 정보와 유전 정보가 디지털화될수록, 의료 보안은 단순한 개인 정보 보호의 수준을 넘어 생명권 보호와 직결된 문제가 된다. 또한, AI가 병의 진단과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보편화되면서, AI의 판단이 오진으로 이어질 경우 책임의 주체는 누구인가에 대한 윤리적·법적 논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의료 보안의 미래는 기술적 대응을 넘어, AI와 인간 간의 책임 분담 체계를 포함하는 전방위적 거버넌스가 선제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유통과 소비재 산업에서는 데이터가 곧 자산이다. 고객의 구매 패턴, 이동 경로, 검색 히스토리 등 실시간 데이터가 AI 마케팅의 핵심 원천이 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이를 통해 개인화된 추천, 실시간 가격 조정, 위치 기반 광고 등 초정밀 마케팅 전략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데이터의 과도한 수집과 활용은 소비자에게 데이터 피로감과 불신을 유발한다. 미래의 유통 보안 전략은 ‘고객 정보 보호’라는 방어적 관점에서 더 나아가, 소비자의 데이터 주권(Data Sovereignty)을 보장하는 구조로 진화해야 한다. 따라서 고객이 자신의 데이터를 열람하고, 관리하고,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법제화가 중요하다.
그래픽=김현국
◇사이버 보안, 사회적 신뢰 유지하는 최소한의 기반
2030년의 사이버 안보는 디지털 주권 확보 여부와 직결된다. 클라우드, 반도체, 운영체제, 보안 AI 등 핵심 인프라가 외산 플랫폼에 의존하는 한 사이버 방어는 근본적 제약을 안고 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국가 차원의 기술 자립도 향상, 나아가 사이버 면역 시스템의 독자 구축이 목표가 돼야 한다.
이러한 흐름에서 사이버 보안은 점점 더 방위 산업의 한 축으로 통합될 가능성이 크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기술뿐 아니라 ‘규범’과 ‘철학’도 힘이다. 전 세계가 AI 윤리, 디지털 프라이버시, 사이버 평화에 대한 기준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은 AI 윤리 원칙, 디지털 신원 보호 모델, 공공·민간 협업 체계 등의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수출 가능한 사이버 보안 규범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이러한 K사이버 규범은 한국의 새로운 외교 자산이자 소프트 파워가 될 수 있으며, 국가 위상을 기술력뿐 아니라 ‘신뢰와 책임’의 리더십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다.
2030년의 사이버 보안은 단순히 해커를 막는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디지털 세계에서 신뢰를 유지하고, 안전하게 상호작용하며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이 된다. AI, 메타버스, 초연결 네트워크로 구성된 미래 사회에서 신뢰 없는 디지털은 곧 혼란이며, 불신은 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한국이 이 미래를 선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빠른 기술 경쟁이 아니라, 깊은 통찰과 장기적 전략이다. 사이버 보안은 단기적 대응이 아닌 국가적 방향성을 내포하는 미래 철학이어야 하며, 지속 가능하고 자율적인 디지털 사회를 설계하는 중심 축이 되어야 한다.
장진석 BCG코리아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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