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탄핵심판이 지연되면서 탄핵심판에 국민의 개입이 더 높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헌재는 법치주의를 표방한다. 그러나 그 정당성은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 인근에 경찰 버스로 차 벽이 둘러져 있다. ⓒ시사IN 이명익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가 계속해서 미뤄진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 대한 탄핵소추는 모두 기각되었다. 이제 헌법재판소에 대한 비판은 태극기 부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윤석열 탄핵에 찬성하는 측에서도 헌재 무용론이 나온다. 국가기관인 헌재가 국민 다수의 의사를 방기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 문제가 헌재의 속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기는 이들은 장기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국민이 탄핵심판에 직접 관여해야 여론에 부합하는 결정이 나온다는 것이다.
현 상황에 대한 불만과 의문은 헌법 ‘해석’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헌재의 역할은 헌법이 정한다. ‘헌재가 대통령 탄핵심판을 하도록 정하는 게 옳은가?’라는 질문에, 헌법학은 ‘헌법에 그렇게 쓰여 있으니 그렇다’가 최선의 답변이라고 여긴다. 도돌이표처럼 보인다. 헌재나 헌재 재판관들은 선출직으로 구성되는 헌법기관에 비해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하다는 지적이 흔히 나온다. 그런데 여기에 맞서는 헌재가 헌법 문구에만 기대는 건 아니다. 헌재라는 제도가 탄생하게 된 취지를 살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1조 제2항). 권력기관은 국민 주권을 대리할 때만 정당하다. 행정부(대통령)와 입법부(국회의원)는 투표로 선출한다. 권력 위임 과정이 자명하고, 임기가 끝나면 다시 투표로 심판한다. 이들 기관의 민주적 정당성은 직관적으로 보인다. 반면 헌법재판관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그중 3명은 국회가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상대적으로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그러나 선출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 권한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정당성 사슬’이라는 개념이 있다. 대통령부터 동사무소 직원까지 이르는 모든 권력 행사 주체를 국민이 직접 뽑을 수는 없다. 국민이 핵심 권력기관을 투표로 선출하면 이들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대리인을 임명하고, 마치 사슬처럼 그들의 권력 행사도 정당화된다는 게 정당성 사슬 이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인용 사유였던 최서원(최순실)씨의 전횡이 ‘깨진 사슬’의 전형이다. 헌법재판관의 권한 행사는 국민주권 원리에 비춰 모순이 없다.
정당성 사슬 이론은 헌재 권한의 근거를 설명할 수는 있지만, ‘내 생각이 반영되고 있다’는 효능감은 약하다. ‘국민 다수가 원하는데도 신속하게 대통령을 파면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이 지점을 향한다. 장기적으로 국민투표적 요소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나, 헌법재판관을 선출하자는 주장이 나오는 까닭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을 의회에서 담당하는 미국 사례도 거론된다. 이렇게 하면 탄핵 사건을 정치적으로 해결할 여지가 있고, 심판도 여론에 따라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런데 느린 선고를 탓하며 헌재의 대안을 논하는 것은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도 헌법재판관 개개인의 면면을 문제 삼아 재판의 권위를 흔든다. 헌재의 권위가 흔들려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자는 다름 아닌 피소추자 윤석열이다. 2월25일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기일에 출석한 윤석열은 최후진술에서 이렇게 말했다. “직선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은 다른 선출직 공직자에 비해 그 무게가 다르다. (···) 거대 야당은 대선이 끝나자마자 (···) 민주적 정당성의 상징인 직선 대통령 끌어내리기 공작을 쉼 없이 해왔다.” 맥락은 더불어민주당을 비난하며 12·3 계엄을 정당화하는 것이었지만, 사실 ‘민주적 정당성’은 헌법재판소를 향한 웅변이기도 했다.
최초의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었던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기각하며 헌재는 결정문에 이렇게 적었다. “대통령에 대한 파면 결정은,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에게 부여한 ‘민주적 정당성’을 임기 중 다시 박탈하는 효과를 가지며 (···) 파면 결정을 정당화하는 사유도 이에 상응하는 중대성을 가져야 한다.” 윤석열은 선례를 들어 선거로 선출된 제 지위의 민주적 정당성을 헌재에 강변한 것이다.
헌법학자들은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정당성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제도를 근원부터 뜯어고쳐 ‘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도 소수에 불과하다. 행정부 수장의 탄핵 소추·심판을 담당하는 기관과 그 진행 과정은 국가별로 제각각이다. 미국은 하원이 소추하고 상원이 심판한다. 일본은 중의원 의원과 참의원 의원 일부가 재판관소추위원회와 탄핵재판소를 꾸려 소추하고 심판한다. 한국은 독일 영향을 받았다. 연방의회가 소추하고 연방헌법재판소가 심판하는 방식이다.
3월21일 헌법재판소 앞에 선 남인순 민주당 의원(오른쪽)과 신재경 국민의힘 인천 남동을 당협위원장. ⓒ시사IN 박미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전 의원이자 헌법학자인 정종섭 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결정문에 대한 평석(評釋)으로 ‘탄핵심판에 있어 헌법재판소의 탄핵 여부 결정권’이라는 논문을 썼다. 여기서 그는 각국의 탄핵 제도를 ‘민주주의 모델’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결합 모델’로 나누었다. 탄핵 과정에 의회의 역할을 확장하고 탄핵 사유에 정치적 책임까지 포함하는 것이 ‘민주주의 모델’이다. 반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결합 모델’은 탄핵 사유를 위법행위로 한정하고 결정은 사법기관이 관장한다.
최초의 탄핵심판 사건이었던 만큼 노무현 탄핵 당시 정치권과 법학계에서는 ‘한국 헌법재판소는 국민이 선출하지 않았기에 위법행위가 있는지만 판단한 뒤 탄핵 여부는 소추 의견에 따라야(인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정종섭 전 교수는 논문에서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헌재는 사건을 독자적으로 심사하고 판단할 권한을 가지며 국회 의사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는 것이다.
정 전 교수는 한국의 탄핵 제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균형 모델’이라며, 이렇게 썼다. “법치주의는 민주적 정당성만에 기초하여 결정할 때 따라오는 오류를 시정하고 축소하려 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분쟁을 정치주의에 의존해 결판을 내려 하고 법치주의는 정치적 분쟁을 규범의 틀 속으로 끌어들여 사법주의에 의존하여 해결하려 한다. (···) 양자를 배합할 때 그 비율은 공동체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성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민주주의를 보완하는 법치주의’라는 논리는 일견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나 대중의 여론을 무시하는 법조 엘리트주의처럼 보인다. 정치의 사법화가 문제로 떠오르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이런 한국 헌법재판소의 성질은 확연한 지향점이 있다.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을 지낸 허완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12년 논문 ‘헌법재판소의 민주적 정당성’에서 헌법재판이 “민주주의의 실질적 완성 수단”이라고 적었다.
민주주의는 다수결 원칙을 따른다. 그런데 이상적 다수결은 소수의 완전한 배제가 아니라 상호 합의와 국민 전체의 정당화다. 헌법재판은 헌법이라는 기준에 따라 소수 의견을 경청하는 과정을 통해 “다수결 원칙을 실질화”한다고 허 교수는 썼다. 입법부나 행정부의 결정이 다수 지배로만 빠지지 않도록 헌법 원리에 따라 통제하고 교정하는 것이 헌재의 역할이다. 따라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처럼 선거로 선출하는 게 오히려 제 역할을 하는 데에 해롭다는 게 허 교수 주장이다.
헌법이라는 도구를 동원해 나온 결론은 느리고 답답하지만 다수 의견의 재확인보다 효과적이다. 사회갈등을 머릿수로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헌법의 언어로 조율하며, 소수도 납득하고 승복하게 만든다. 내전을 완충하는 효과를 낸다. 허완중 교수는 “국민투표나 선출한 재판관을 통한 파면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지금의 탄핵심판과는 이론적 층위가 완전히 다르다”라고 말했다. 여론은 더 기민하게 반영되지만 ‘헌법의 판단’이라는 심판의 성질은 희석된다.
헌법재판관을 국민이 선출하지 않는 지금도 헌재가 여론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법관 개개인에게 쏠린 주목이나 각종 비방과 신변의 위협과 다른 차원에서, 헌재는 사회의 동향을 살필 의무가 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재는, 대통령을 파면할 만한 ‘헌법 위반의 중대성’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풀이했다. “한편으로는 법 위반이 어느 정도로 헌법 질서에 부정적 영향이나 해악을 미치는지의 관점과, 다른 한편으로는 피청구인을 파면하는 경우 초래하는 효과를 서로 형량하여 (···) 결정해야 한다.”
3월22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에서 지연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탄핵 심판 선고를 촉구하며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16차 범시민대행진 집회가 진행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보호하고 준수할 의무를 지닌다. 그러나 대통령이 법을 위반할 때마다 파면 결정을 내린다면 사회에 오히려 해롭다. 따라서 다른 공무원들과 달리 대통령 탄핵 여부를 결정할 때에는 그 효과를 함께 살펴 위법의 중대성을 판단해야 한다. 이런 요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직무수행의 단절로 인한 국가적 손실과 국정 공백, 국론의 분열 현상, 정치적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따라서 “대통령의 직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헌법 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거나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여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한 경우에 한하여” 파면 결정은 정당화된다고 헌재는 밝혔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례나 그 지위에 대한 이론은 이런 결론에 도달하게 한다. 우선 ‘국민 다수의 명령을 따르라’고 헌재를 압박하는 것은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 이 기관은 정치적 다수파나 여론의 판단을 견제하기 위해 창설된 곳이다. ‘국민의 명’이란 항의를 사법권 독립을 저해하는 힘의 논리로 받아들일 공산이 높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사법 사안이니 전문가에게 맡겨두자’는 태도도 능사는 아니다. 윤석열이 국민의 ‘신임을 배신’해, 더는 대통령직을 맡길 수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명해야 한다. 선고가 사회에 미칠 여파를 살피고, 결정문을 대중에 공개해 논증하는 것까지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헌재의 책임이다. 대통령의 위헌·위법적 행위를 밝혀내 기각 시 ‘국가적 손실’이 인용 시보다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을 재판관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이를 살피는 것도 사실상 심판 과정의 일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윤석열 개인의 진퇴를 정하는 사법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현재의 충돌이 다수파와 소수파, 진보와 보수의 일상적 대결이 아니라 헌법 수호와 헌법 파괴 구도라는 점을, 법과 논리의 언어로 설득해야 한다. 이 작업을 헌재의 느릿한 법치의 과정을 견디며 해내야 한다.
헌재 스스로도 이 법정은 제구실을 입증해야 할 심판대다. 헌법재판소는 민주주의의 맹점을 해결하고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고안된 특수한 기구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우리 헌재가 그 역할에 충실한지에 대한 의문은 제기될 수 있다. 국가기관의 권력 행사는 헌법이 정당화한다. 그러나 다수 국민의 신임을 잃은 헌법 기구는 형해화된다. ‘헌법의 수호자’로 꼽히는 기구가 형해화될 때의 파급력은 이루 헤아리기 어렵다.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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