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주의 26.8%’ 정체불명의 입자 찾는 과학자들
우주서 눈에 보이는건 4.9%뿐
관측못하는 존재가 중력에 영향
암흑물질이 ‘우주 뼈대’ 만들어
빅뱅이후 물질·반물질 양 달라
지금은 반물질 거의 관측 안돼
비대칭 해결위해 ‘액시온’ 제안
액시온, 强자기장에 광자 변환
IBS, 라디오 주파수 찾듯 탐색
존재 파악땐 우주의 운명 가늠
그래픽=권호영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을 137억 년 전 발생한 ‘빅뱅’이라 보고 있다. 거대한 폭발 이후 지금도 팽창하고 있는 우주는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다. 태양은 지구에 환한 낮을 선사하는 밝은 빛이지만, 먼 우주에선 하나의 점으로 보일 뿐이다. 별과 별 사이 광활한 공간은 어두컴컴하기만 하다.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처럼 보인다. 그런데 과학계에선 이 빈 공간에 사실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이 들어차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보이지도 않고, 빛과 상호작용하지 않는 미지의 존재가 별들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실마리를 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정체불명의 입자를 찾아내기 위해 연구 중이다. 그리고 그 유력 후보 중 하나로 강력히 점쳐지는 것이 ‘액시온(Axion)’이다. 암흑물질은 대체 무엇이며, 어째서 우주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가? 보이지도, 만질 수도 없는 액시온은 어떻게 찾아내는가?
◇보이지 않지만 존재할 것이라 믿어지는 = 과학자들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것은 전체의 약 4.9%에 불과하다고 본다. 나머지 26.8%는 암흑물질, 68.3%는 암흑에너지로 추정된다. 관측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이 존재가 중력에 미치는 영향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근거가 ‘중력 렌즈 효과’다. 아인슈타인이 1936년 논문에서 예측한 중력 렌즈 효과란 지구에서 우주망원경을 통해 먼 곳의 천체를 관측할 때, 일부 천체의 빛이 왜곡돼 보이는 현상을 뜻한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시공간을 왜곡하는데, 빛이 왜곡된 공간을 통과할 때 휘어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질량과 중력을 가진 어떤 천체를 가운데 두고 뒤에 있는 빛을 관측할 때, 빛은 해당 천체가 가진 중력만큼 왜곡된다. 그런데 실제 관측된 천체의 질량보다 빛이 더 많이 휘는 현상이 관측됐다. 따라서 해당 천체 근처에 보이지 않지만 중력을 가진 물질이 존재한다고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벌레자리 은하단’이다. 관측 결과 이곳엔 두 은하단이 충돌하는 중심에 가스들이 몰려 있어 중력의 중심부일 것이라 추측됐으나, 실제 중력 렌즈를 분석한 결과 중심부가 아닌 외곽이 중력의 중심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권호영 기자, 게티이미지뱅크
◇액시온은 무엇이며 어떻게 찾나 = 액시온은 과학자들이 입자물리학 난제 중 하나인 ‘강한 CP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시한 개념이다. ‘CP 비대칭’은 입자와 반입자가 좌우 반전 조건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빅뱅 이후 물질-반물질 비대칭의 원인으로도 지목된다. 반물질은 물질과 대칭되는 성질을 가지며 입자에 대칭되는 반입자로 구성된다. 예컨대 음전하(-)를 가진 전자의 반입자는 양전하(+)를 띠는 양전자다. 대부분의 물리 법칙은 입자와 반입자, 또는 좌우 반전 조건에서도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우주의 기본 법칙이 대칭적이라 믿어왔다. 따라서 빅뱅의 엄청난 에너지 방출 속에선 물질과 반물질이 같은 양으로 만들어졌어야 한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빅뱅 이후 137억 년이 흐른 지금, 반물질은 거의 관측되지 않고 물질만이 남아 있다는 비대칭성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CP 비대칭을 중요한 열쇠로 보고 깊게 연구해왔는데, 양성자-중성자 수준의 강한 상호작용에서는 CP 비대칭이 예상과 달리 관측되지 않는 또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된 입자가 바로 액시온이다. 그런데 과학자들이 예상되는 특성을 바탕으로 계산해본 결과, 만약 액시온을 실제로 찾아낸다면 암흑물질일 가능성 역시 매우 크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액시온을 찾기 위한 실험 방법엔 여러 종류가 있으나, 핵심은 액시온이 광자로 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액시온은 강한 자기장을 만날 경우 광자로 변할 수 있다. 이를 액시온-광자 변환 현상이라 부른다. 광자는 X선이나 전파 등 전자기파의 기본 입자로, 과학자들은 광자가 전달하는 전자기파(마이크로파)를 감지할 수 있다. 즉, 강한 자기장을 통해 액시온을 광자로 바꾸면 액시온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액시온은 너무 조용해서 말을 듣거나 이해할 수 없지만, 자기장이라는 통역기를 이용해 빛의 언어로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셈이다.
◇라디오 채널 돌리듯 주파수 사냥 =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은 지난 10여 년간 액시온 탐색을 위한 실험 장비와 기법을 개발해왔다. 장비의 핵심은 강한 자기장을 만들어내는 초전도 자석과 극저온 환경을 구현하는 냉동기, 신호를 증폭시키기 위한 공진기다. 초전도 자석은 12테슬라(T)의 자기장을 생성하는데, 이는 지구 자기장의 약 24만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냉동기는 액시온이 내는 미약한 신호를 감지하는 데 필요하다. 아주 작은 수준의 마이크로파를 감지하기 위해선 열로 인해 발생하는 잡음을 제거해야 하는데, 냉동기는 영하 273도에 가까운 극저온을 유지함으로써 미세한 신호를 포착하기 위한 환경을 제공한다. 여기에 원통형 금속 구조의 공진기를 통해 특정 주파수의 마이크로파를 증폭시켜 포착하는 구조다. IBS 연구진은 2023년부터 2024년까지 1.025∼1.185㎓ 주파수 구간에서 액시온 질량으로는 약 4.24∼4.91μeV(마이크로전자볼트) 범위를 정밀 탐색했는데,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의 민감도다.
윤성우 IBS 암흑물질 액시온 그룹장(CI)은 액시온 탐색 과정을 ‘라디오 주파수 맞추기’와도 같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라디오 방송 채널을 찾을 때 다이얼을 돌리며 소리가 나는 대역을 찾듯, 액시온의 신호가 감지되지 않는 구간은 제외하는 소거방식으로 찾는다는 의미다. 자기장의 세기 등 일정 조건이 정해진 뒤엔 실험장비 안에 도체나 절연체를 넣어 조금씩 움직이며 자기장에 변화를 주는데, 이는 라디오 채널을 대략 정한 뒤 소리가 잘 들리도록 다이얼을 미세 조정하는 것과도 같다.
◇우주 탄생의 비밀, ‘찾으면 노벨상’ = 과학자들은 우주가 별이나 은하처럼 복잡한 구조를 가지게 된 배경에 암흑물질이 있었다고 본다. 암흑물질이 먼저 중력적으로 뭉치기 시작해 우주의 뼈대를 만들었고, 그 위에 별과 은하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암흑에너지는 우주 팽창을 가속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현재 과학계의 우주 이론이다. 암흑물질이 우주의 탄생 과정에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를 규명해냈을 때 학계에 미칠 영향도 지대할 것으로 기대된다. 윤 CI는 “액시온은 CP 문제와 암흑물질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며 “암흑물질의 특성과 존재량에 따라 우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IBS 연구팀은 앞으로 5년간 약 10㎓ 범위에서 액시온 존재를 탐색할 계획이다.
구혁 기자 gu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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