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주총서 이사회 의장 선임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26일 경기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주주총회에서 이사회에 복귀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창업자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들겠다"며 "네이버만의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겠다"고 했다. /네이버
“네이버는 구글 등 빅테크에 맞서 25년 동안 견뎌오고 살아왔던 회사입니다. 항상 어렵지만 검색·동영상·숏폼·AI 등 네이버만의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내겠습니다.”
이해진(58) 네이버 창업자가 이사회에서 물러난 지 7년 만에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며 글로벌 빅테크와 AI 경쟁에 본격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네이버는 26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창업자의 사내이사 선임 건과 최수연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건이 모두 통과됐다고 밝혔다. 이 창업자는 주주총회 직후 열린 이사회를 통해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됐다. 그는 주주총회에서 “인터넷 시대에 시작된 네이버가 모바일 환경의 파고까지 넘을 수 있었던 핵심에는 혁신 기술을 이용자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로 바꾸겠다는 열정, 더 큰 시장과 자본력을 가진 기업들과 다른 방식으로 싸워온 네이버만의 투지가 있었다”며 “AI 시대를 맞은 네이버의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의 공세를 이겨내고 국내 대표 IT 기업으로 올라섰던 네이버의 성공 공식을 AI 시대에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스타트업 관계자는 “이 창업자는 이사회 의장 복귀를 결심한 후 살이 빠질 만큼 많은 고민을 한 것으로 안다”며 “경영진이 과감하게 AI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고 독려하는 역할을 맡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정인성
◇위기의 네이버, 돌아온 창업자
네이버의 글로벌 진출에 집중하던 이 창업자가 경영 일선에 복귀한 배경에는 격화하고 있는 글로벌 인공지능(AI) 경쟁이 있다. 천문학적인 투자로 AI 모델을 고도화하고 있는 글로벌 빅테크들과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AI 총력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 창업자는 이날 “네이버가 AI 시대를 이끄는 회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며 “모바일 시대에 해외로 진출했듯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진영
네이버는 AI 산업과 관련해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는 2000년대 미국 테크 기업들의 진입에도 국내 검색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국만의 독자적인 플랫폼 생태계를 만들었다. 2023년 8월에는 AI 언어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하며 AI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국내 검색 점유율마저 구글에 내주고 있고, AI의 성능이나 시장성도 빅테크에는 못 미친다는 반응이 나오며 주가는 4년 새 반 토막 났다.
이 창업자의 복귀와 함께 네이버의 ‘소버린(주권) AI’ 전략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소버린 AI는 개별 국가나 지역의 토종 AI로, 자국 언어와 문화, 사회 등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AI를 말한다. 이 창업자는 “전 세계가 한두 개의 검색 엔진과 AI만 쓰는 것은 슬픈 일”이라며 “한국에는 구글도 있고 네이버도 있는 것처럼 인터넷의 다양성을 지키는 것이 회사의 사명”이라고 했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특화한 하이퍼클로바X를 기반으로 네이버만의 AI 생태계를 구축해 AI 주권을 지키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X를 고도화하는 한편, 검색·쇼핑·지도 등 모든 서비스에 AI를 접목하는 ‘온서비스 AI’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경영진에 힘 실어
이 창업자는 “기존에 맡고 있던 글로벌투자책임자(GIO) 직을 내려놓고 이사회 의장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젊은 경영진과 기술자가 더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데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이날 주총에선 지난해 국내 인터넷 기업 최초로 연 매출 10조원을 넘긴 최수연(44) 대표가 연임에 성공했다. 네이버의 신규 임원 6명 가운데 5명이 80년대생이다. 최 대표는 “글로벌 투자나 사업을 이끄는 책임이 오롯이 경영진에게 내려왔다고 생각한다”며 “AI 사업과 관련해 좀 더 공격적인 움직임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네이버는 “창업자의 성공 경험과 연륜이 더해져 안정성을 확보하게 됐다”며 “AI 대표 기업을 향한 전략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네이버만의 독자적 방향 수립과 실행에 속도가 더해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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