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조급함에 빠진 듯한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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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다 고개를 떨구고 있다. |
ⓒ 연합뉴스 |
"선수들이 홈에서 경기할 때 부담을 너무 많이 갖는 것, 분위기 자체가 저희가 집중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이 조금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정확하게 뭐 때문에 우리가 홈에서 이기지 못했다라는 (이유를) 찾지 못했지마는..."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홍명보 감독이 25일 오후 8시 경기 수원 빅 버드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요르단과의 홈 게임을 1-1로 무기력하게 비긴 뒤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축구 게임을 치열하게 펼치다 보면 비길 수도 있지만 안방에서 연속으로 치르는 중요한 두 게임을 모두 무승부로 끝낸 뒤 감독이 밝힌 졸전 이유로는 표현 그대로 불분명하다. 누가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닐 텐데 왜 애매모호한 표현을 썼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국가대표 축구 팀 감독이 보여줘야 할 선명한 게임 플랜, 분석, 책임있는 태도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5일 전 오만과의 홈 게임을 역시 졸전 끝에 1-1로 비겼고, 그 게임에서 에이스 이강인과 백승호가 다치는 불상사도 이어졌기 때문에 이번 요르단과의 홈 게임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홍 감독 말처럼 '선수들이 부담을 너무 많이 갖는다거나 분위기 측면에서 집중할 수 없는 그런 것들'로 답하기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았다.
4만 1532명 빅 버드 만원 관중들 앞에 선 대표팀은 게임 시작 후 125초만에 미드필더 황인범의 왼발 중거리슛으로 5일 전보다 더 적극적인 승리 의지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5분도 안 돼 코너킥 세트피스로 첫 골(4분 45초, 손흥민 도움, 이재성 왼 무릎 골)을 뽑아냈으니 분위기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첫 골 이후에도 A매치 경험이 가장 적은 왼쪽 풀백 이태석이 주장 손흥민의 앞 공간을 멋지게 열어주는 기막힌 스루패스(7분)를 찔러준 것도 모자라 황인범이 빅 버드 피치를 갈라놓는 듯한 방향 전환 패스(11분)로 황희찬의 왼쪽 날개 공격을 시원하게 열어줬다.
이런 홈 게임 초반 기세를 근거로 보면 홍명보 감독이 말한 분위기 측면에서 집중할 수 없는 그런 것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반 시간이 흘러가면서 선수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13분, 요르단 공격수 야잔 알 나이맛의 과감한 오른발 슛이 날아간 것부터 조짐이 이상했다.
그러더니 미드필더 박용우의 뼈아픈 패스 미스로 시작된 요르단의 공격 상황에서 돌이킬 수 없는 동점골을 내준 것이다. 박용우가 중앙선 가까이에서 공을 빼앗긴 직후에도 너무 성급하게 달라붙는 바람에 우리 중앙 미드필더 두 명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장면까지 연출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흐무드 알 마르디의 오르발 슛이 권경원 몸에 맞고 방향이 살짝 바뀌어 우리 골문 오른쪽 구석으로 들어가기(29분 26초)까지 우리 수비수들은 요르단 위험 인물들을 제대로 밀어내지 못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동점골을 내준 이후의 게임 운영에서 드러났다. 우리 선수들이 요르단 골문을 제대로 위협한 공격 장면이 37분 황희찬의 왼발 근접슛(요르단 GK 아부라일라 슈퍼 세이브) 말고는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유망한 날개 공격수 양민혁이 이동경 대신 들어가 날카로운 돌파 실력을 뽐냈지만 요르단 수비수들을 실제로 뒤집어버리지는 못했다. 그 다음 연계 플레이가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90분에는 양민혁이 자리를 바꿔 왼쪽 측면에서 주장 손흥민의 공간 침투를 빛내주는 노 룩 스루패스까지 찔러주었지만 역시 우리 공격은 그 지점에서 멈췄다.
카드 섹션을 포함해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를 펼친 4만 1532명 홈팬들의 함성이 부담스러웠다는 뜻인지, 일기즈 탄타셰프(우즈베키스탄) 주심이 82분에 VAR 온 필드 리뷰를 시행하고도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은 것이 부담이라는 것인지. 홍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게임이었다.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표현으로 다시 돌아와, 5일 전 고양종합운동장의 잔디 상태를 말하고 싶었다면 선수들의 의견 등 구체적인 근거를 들며 더 강한 어조로 대한축구협회의 준비 수준을 질타했어야 옳다.
오는 6월 이라크와의 어웨이 게임 일정과 쿠웨이트와의 홈 게임 일정이 남았다. 수많은 홈팬들 앞에서 뛰는 진짜 홈 게임 분위기가 정말로 부담스럽다면 이라크와의 어웨이 게임 직후, 쿠웨이트와의 마지막 일정은 거기서 멀지 않은 곳으로 최상의 잔디 상태를 고려해 과감하게 제3국 경기장을 미리 제안해도 좋지 않을까?
아시아 라이벌 일본과 이란의 월드컵 본선 조기 확정 뉴스에 조급함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전향적인 계획으로 축구팬들의 답답함을 풀어주었으면 좋겠다. 11회 연속 본선 진출 세리머니는 나중에 평가전을 준비해 더 멋지게 펼치면 되지 않는가.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결과
(3월 25일 오후 8시, 수원 빅 버드)
★ 한국 1-1 요르단 [골, 도움 기록: 이재성(4분 45초,도움-손흥민) / 마흐무드 알 마르디(29분 26초)]
◇ 한국 대표팀(4-2-3-1 감독 : 홍명보)
FW : 손흥민(90+2분↔오현규)
AMF : 황희찬(68분↔양현준), 이재성, 이동경(46분↔양민혁)
DMF : 황인범(80분↔오세훈), 박용우
DF : 이태석, 권경원, 조유민, 설영우
GK : 조현우
◇ 2026 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B조 현재 순위 및 한국 팀 남은 일정
1 한국 16점 4승 4무 14득점 7실점 +7
2 요르단 13점 3승 4무 1패 13득점 7실점 +6
3 이라크 12점 3승 3무 2패 8득점 7실점 +1
4 오만 10점 3승 1무 4패 8득점 10실점 -2
5 팔레스타인 6점 1승 3무 4패 7득점 12실점 -5
6 쿠웨이트 5점 5무 3패 7득점 14실점 -7
☆ 이라크 - 한국(6월 5일, 어웨이)
☆ 한국 - 쿠웨이트(6월 10일, 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