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곡물협정 넘어 '제재해제 기회' 판단"
EU 아직 입장안내…관계자는 "압박 유지"
"'항구 휴전' 미포함 휴전, 러시아에 이득"

[서울=뉴시스]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흑해 해상 휴전 합의에 대(對)러시아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걸었다. 우크라이나는 반발했으나 미국이 긍정적 입장을 밝혀 러시아가 또다시 외교적 실리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대러 제재 해제에는 유럽연합(EU) 동의가 필요해 실현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사진은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서울=뉴시스] 김승민 기자 =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흑해 해상 휴전 합의에 대(對)러시아 제재 해제를 조건으로 걸었다. 우크라이나는 반발했으나 미국이 긍정적 입장을 밝혀 러시아가 또다시 외교적 실리를 얻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대러 제재 해제에는 유럽연합(EU) 동의가 필요해 실현 가능성은 낮게 점쳐진다.

미 백악관은 25일(현지 시간) 성명을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상업용 선박이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같은 입장을 냈다.

그러나 러시아는 "식품·비료 국제 무역을 지원하는 로셀호즈은행(러시아 국영 농업은행) 및 기타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고, 이를 스위프트(SWIFT·국제은행간통신협회)에 연결하며 필요한 통신 계좌를 개설한다"는 별도의 조건을 걸었다.

대러시아 경제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흑해 휴전이 발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에 대해 "모든 것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열린 입장을 내보였다.

BBC는 "그들(러시아)은 이 거래를 흑해곡물협정 부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경제 제재를 해제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고 진단했다.

서방, 러 침공 직후 스위프트 배제…"대러 압박 유지하기로"

앞서 서방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를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함으로써 달러 거래를 막았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2022년 3월 "EU는 러시아 금융·산업·부패 엘리트에 대해 무거운 제재를 채택한다"며 러시아를 스위프트에서 배제한다고 발표했다. 제재 해제 역시 EU 차원의 결정이 필요하다.

EU는 아직 러시아 요구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으나, 제재 해제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가 EU의 대러 제재를 재고할 만한 반대급부를 제시하지 않은 데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역시 "이것은 회의 전 의제에 없었다"며 제재 완화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지난 2023년에도 흑해곡물협정을 탈퇴하면서 국제연합(UN)을 통해 스위프트 제재 해제를 타진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한 EU 고위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유럽은 러시아 경제에 대한 압박을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러시아 농산물 수출 제한을 해제하려면 EU 승인이 필요한데,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다"고 전망했다.

EU의 대러 제재에 힘을 실었던 영국 역시 부정적 입장을 내보였다.

영국 총리실은 "우리는 진전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다"고 원론적으로 말한 뒤 "영국을 포함한 서방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비료·농산물 관세 인상, 특정 러시아 상품 선적 보험 제공 금지 등이 포함된 제재를 가했다"고 부연했다.

[포르토바야(러시아)=AP/뉴시스]러시아가 미국과 노르트스트림 재가동 관련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25일(현지 시간)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2010년 4월9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북서쪽으로 약 170㎞ 떨어진 포르토바아 베이의 노르트스트림 2 가스관 건설공사 현장.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 재가동 관련 논의도 본격화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타스통신에 따르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26일 "노르트스트림 파이프라인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해 러시아 가스를 거부하지 않도록 한다면 흥미로울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거래 의향 있는듯"…'항구 제외' 휴전도 러에 이득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조기 종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을 이용해 외교적 승리를 이어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가디언은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의 정치·군사적 양보와 2022년 침공 이후 시작된 국제적 고립으로부터의 탈출을 요구할 것이고, 지금까지로 보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런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는 것 같다"고 봤다.

야니스 클루게 독일국제안보연구소 연구원은 "러시아의 입장을 '미국에 대한 양보'로 판매한 다음, 그 위에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 러시아의 거래 기술"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상 휴전 합의에 '항구 공격'에 대한 구체적 조항이 포함되지 않은 것이 우크라이나에 불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은 "흑해는 우크라이나가 해상 드론과 특수작전부대를 사용해 러시아를 수세로 몰아넣은 전선이었고, 러시아 함대는 대부분 해안 근처에 고립됐다"며 해상에 국한된 휴전은 러시아의 이득이라고 했다.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러시아는 개전 이래 385개의 항구 인프라 시설을 공격해왔고, 2022년부터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 중 하나인 미콜라이프항을 봉쇄하고 있다.

세르히 보브크 수송전략센터 대표는 "우리에게 시급히 필요한 것은 항구 인프라를 미사일과 드론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라며 "백악관 성명에는 이에 대해 단 한 마디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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