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탄핵정국 後 점검해야 할 이슈
2편 尹 정부 밸류업 실패 이유
韓 밸류업 1년, 코스피 2.84%↓
버핏 투자 후 닛케이지수 30%↑
日, 중복상장·순환출자 해소에 초점
증시 밸류업은 중산층 증가에 핵심
닛케이지수는 워런 버핏이 상사 투자를 시작한 후 5년간 30% 가까이 성장했다. 한 행인이 도쿄증권거래소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 | 뉴시스]
정부는 지난해 2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가 저평가)'를 해소하자며 '밸류업 정책'을 추진했다. 그 원형은 일본 증시의 밸류업이다. 일본이 2023~2024년 디플레이션에서 탈출하고,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주가가 상승세를 탔기 때문이다. 밸류업 정책을 발표한 지 1년이 지난 지금 코스피 지수는 오히려 2.84% 하락했다. 일본과 우리의 결정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탄핵 후 더 생각해 볼 문제 2편은 밸류업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무엇을 보고 일본으로 몰려들었을까.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었다. 일본의 밸류업 목표는 우리처럼 단순히 주가 끌어올리기가 아니라 아베노믹스의 장기 성장전략 중 하나인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었기 때문이다. [※참고: 아베노믹스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제시한 양적완화, 확장재정, 장기 성장전략이라는 세개의 화살을 말한다.]
'투자의 귀재'이자 '가치투자자'인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최고경영자(CEO)가 본격적으로 일본 증시에 투자하기 시작한 것은 2020년이었다. 버핏은 2020년 8월 일본 5대 종합상사 주식을 각각 전체 지분의 5% 이상씩 매입했다. 버핏이 투자한 후 일본 닛케이225 지수는 5년간 29.25% 상승했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던 일본 주식을 버핏은 왜 대량 매입했을까.
버핏이 투자한 종목에 이유가 숨어 있다. 일본 종합상사는 두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이들은 에너지·곡물과 같은 대형 국제 거래에서 큰손 역할을 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이 대기업 계열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대기업집단은 총수 개인이 지배주주였던 재벌을 거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은행이나 무역상사가 지배주주 역할을 하는 '계열'이라는 이름의 기업집단으로 변모했다. 미쓰비시그룹 계열이라는 대기업집단은 미쓰비시상사, 미쓰비시중공업, 미쓰비시UFJ은행이 다른 계열사의 지분을 대거 보유해 형성된다.
상사의 지주회사 역할이 설령 미흡해도 종합상사는 계열 기업집단에서 일종의 총수 비서실이나 기획실 역할을 한다. 결국 버핏은 일본이라는 나라의 기업 지배구조가 곧 개선될 것이라는 희망에 베팅한 셈이다.
버핏의 일본 상사 지분율은 첫 투자로부터 3년 후엔 각각 8% 이상으로, 4년 후인 지난해 말에는 각각 10%에 육박했다. 투자은행 윌리엄 블레어는 2024년 6월 공개한 '일본 기업 지배구조의 진화' 보고서에서 "아베 신조가 기업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기 위해 포괄적인 의제를 제시한 이후 일본 기업 지배구조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극찬했다.
버핏의 첫 투자로부터 4년간 일본의 기업 지배구조 개편은 착실히 진행됐다. 일본 금융청은 기관투자자의 투자 가이드라인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여러 차례 개정해 2017년에는 "기관투자자와 지분 소유자는 피투자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여야 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를 높이도록 규제했다.
2024년 6월 일본 금융청은 마침내 영국 런던에서 열린 ICGN 행사에서 "일본 상장기업이 자회사를 상장해 보유한 중복상장 비율이 2014년 9.7%에서 2023년 6.6%로 낮아졌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교차지분(상호출자) 비중도 50%를 넘나들던 수준에서 지난해 10%대로 낮아졌고, 상장사 70%가 상호출자를 곧 해소하겠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도쿄증권거래소에 제출했다(KPMG). 상장사의 중복상장 비율이 IBK투자증권 집계 기준 18.43%(2024년 2분기)에 달하고, 자산이 많은 일부 기업에만 상호출자를 제한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대조되는 수치다.
더스쿠프가 '탄핵 後 점검해야 할 이슈' 1편에서 조명한 상법 개정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출발점이자 밸류업의 전제조건이다. 적어도 기업의 지배구조 측면에서는 한국보다 월등히 뛰어난 일본조차 서구권에서는 '여전히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보다도 뒤처져 있는(윌리엄 블레어)' 나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본 상법에도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일본 법원이 오직 지배주주만을 우대하는 방식의 기괴한 판례를 내놓은 적은 없다. 굳이 이사 충실의무에 '주주'라는 문구를 넣지 않아도 당연히 주주를 도출했다는 얘기다.
2024년 6월 기업 밸류업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 세미나에 참석한 이복현 금감원장. [사진 | 뉴시스]
한 나라의 증시가 살아나야 하는 이유는 기업과 투자자에게만 국한하지 않는다. 중산층을 두껍게 만들려면 부동산 등 실물자산에 영끌하는 문화가 사라져야 하고, 대신 장기적으로 확실하게 우상향하는 증시가 자리 잡아야 한다.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994년 이후 30년간 연평균 9% 이상 성장했다. 이 기간 미국 가구가 보유한 자산 중에서 증시에 투자된 자산의 비중은 3배 이상 증가해 30%에 육박했다. 이에 따라 미국 가구의 자산은 2019~2022년에만 25% 증가했다(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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