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는 사회가
韓 위기극복 열쇠라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사진 이충우 기자
"모든 답은 현장에 있습니다. 다른 데 가서 찾지 마세요. 우리 경제가 걱정되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이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에요. 전 국민이 각자 자리에서 '어디 한번 열심히 해보자'라는 마음만 먹으면요. 다 이겨낼 수 있습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한국 바이오업계의 전설이자 국민 멘토다. 요즘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쇼츠 플랫폼에는 '서정진 동기부여 영상'이라는 제목으로 수천 개 동영상이 돌아다닌다. 2017년 제21차 세계지식포럼 연사로 나선 서 회장이 본인의 경험담과 삶을 대하는 자세, 미래 비전을 역설한 강의 중 일부다. 당시 강의 제목도 '혁신과 변화, 당신에게는 위기입니까? 기회입니까?'였다.
서 회장은 마흔다섯 살이던 2000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창업해 세계 최초로 바이오시밀러(바이오 복제약) 산업을 개척했고, 셀트리온을 매출 3조원대(2024년 기준 3조5573억원) 기업으로 키웠다. 그런 그가 정치적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한민국이 바이오 산업을 통해 다시 한번 일어나고, '열심히 일하는 사회'로 거듭나자고 역설했다. 서 회장은 "우리가 지금 왜 힘들다고 생각하는가. 2·3세 기업인들이 1세대로부터 과수원은 물려받았지만 신품종 나무를 심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며 "성공을 하면 좀 편하게 살고 싶지만 그러면 그 기업은 정체가 된다. 이 때문에 1세대는 좀 쉬고 싶어도 희생을 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신품종 나무를 끊임없이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57년생인 그가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하면서 바이오 산업에서 신품종을 계속 심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서 회장은 인터뷰 도중에 몇 번이나 '전 국민 일하기 운동'을 하자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는 분위기다.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모두 열심히 일하게 돼 있다"면서 "모든 국민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일하면 경제는 살아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오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이) 이렇게 힘들수록 과거 새마을운동을 하듯이 일하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해야 한다. 다들 앉아만 있고 쳐다만 보고 있으면 안 된다"며 "대기업 회장님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부터 열심히 일하자고 말하고 있다. 위에서부터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중견·중소기업으로 확산시키자"고 제안했다. '일을 많이 하려고 해도 현행 주 52시간 근무제가 걸림돌이 되지 않냐'는 질문도 던져 봤다. 그는 "정말 주 52시간 동안 집중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느냐"면서 "3분만 집중해서 '새 이름'을 써보라"고 했다. 1분도 집중하지 못하고 낑낑거리자 "거 봐라, 하루 8시간 집중하면 죽는다. 지금 치열하게 일하고 있지 않다는 것만 깨달아도 훨씬 더 생산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현답을 내놓았다. 서 회장은 "노사 문제를 억지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된다. 경영자는 직원 입장이 돼 보고, 직원들은 회사 입장에서 한 번씩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 바이오 산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선진국에 뒤처진 데 대해서는 과거 제도적인 문제일 뿐 조금씩 발전해 나가고 있다고 봤다. 서 회장은 "제약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참여가 제한되면서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지 못했다"며 "뒤늦게 대기업들이 참여하고 기존 제약사들도 신약 개발에 뛰어들고 있으니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바이오 산업은 앞으로 한국에 중요한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서 회장은 다른 총수들과 달리 꾸준히 강연을 이어왔다. 지난달에도 모교인 건국대 졸업식에 참가해 축사에서 "과감히 돌진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도 그는 바이오 사업을 하는 후배들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서 회장은 "바이오 사업은 확률 사업이다. 특허를 받으면 성공 확률이 1%, 이후 동물 임상 데이터가 나오면 5%, 임상 1·2상 등 데이터가 나오면 15% 정도까지 올라간다고 보면 된다"며 "이 때문에 서로 뭉쳐서 정보와 기술을 공유하고 융합하면서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뭉쳐 있으면 투자를 받기도 좋다. 혼자서 하려고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또 "이런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바이오 인큐베이팅 센터를 만들고, 장비와 공간을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대기업 역시 바이오 기업들을 인큐베이팅하고 투자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 역시 3000억원 정도의 바이오 기업 투자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셀트리온이 투자했다는 것 자체가 글로벌 시장에서 하나의 인증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이렇게 대기업들이 바이오 벤처에 적극 투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모든 답은 현장에 있다"며 경영자가 현장을 자주 찾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서 회장은 2015년 유럽에서 셀트리온이 만든 세계 최초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영업을 하던 도중에 아일랜드 한 병원 간호사로부터 병원에서 정맥주사(IV)로 투여해야 하는 기존 인플릭시맵 제형 대신 자가투여할 수 있는 피하주사(SC) 제형의 필요성을 들은 뒤 한국으로 돌아와 SC 제형 개발에 매진해 결국 성공한 바 있다. 서 회장은 "책상에 아무리 앉아 있어 봤자 소용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큰 기업을 만들었는데, 성공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서 회장은 "성공이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성공인 것 같다"며 "직원들, 주주들, 더 나아가서는 국민을 위해 사는 것, 이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게 성공인 듯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아직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서 회장의 목표는 셀트리온을 '순이익 10조원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셀트리온의 지난해 순이익은 4189억원이다. 그는 '작은 약속도 반드시 지키는 사람'으로 남겠다며 꼭 지켜봐 달라고 덧붙였다.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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