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영화 퍼펙트>
[이재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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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퍼펙트 데이즈' 스틸컷 |
ⓒ 티캐스트 |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로 일하는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는 고요하고 규칙적인 삶을 통해 자신의 작은 행복에 집중조명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매일 아침 전날 봐두었던 책을 접어두고, 이부자리를 개며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캔커피도 빠짐없이 챙긴다. 본업인 공중화장실 청소도 정성스럽게 하고, 점심에는 신사를 찾아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며 나뭇잎 사이로 내리는 햇살도 빠짐없이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런 히라야마의 규칙적인 일상이 제삼자의 시선으로는 평화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필사적으로 규칙을 지켜내는 것에 힘을 쓰고 있다. 다소 반복을 거듭하며 강박적이기도 한 히라야마의 하루에서 우리는 단순함 속에 담긴 깊이를 발견한다.
그가 철저히 지켜내는 일상 패턴은 단순히 삶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로 작용한다. 마치 과거의 무언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안전망처럼 기능하고 있는 정황을 포착할 수 있는데, 동료의 갑작스러운 퇴사나 조카의 예상치 못한 방문, 또는 과거 인연과의 마주침 같은 외부적인 상황들로부터 그가 신중하게 구축한 도로에 끼어들며 균열이 일어난다.
그 후로부터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히라야마의 표정에도 감정이 묻어난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동료의 말처럼 묵묵한 그가 이 루틴이 깨질 때마다 보이는 불안과 분노는 내면의 취약성이 가장 드러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단조롭던 일상에 변주곡이 울리고 히라야마의 감정변화를 음미하는 것이야말로 <퍼펙트 데이즈>의 가장 큰 매력요소다.
이런 순간들에서 그의 평소 침착하고 차분한 태도가 흔들리는 모습은, 그가 루틴을 통해 무엇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암시하게 된다. 특히 영화 중반부와 후반부로 갈수록, 히라야마의 일상적 행동들이 단순한 습관이 아닌 과거의 상처나 후회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기 위한 의식(ritual)처럼 보이는 측면이 강해진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는 대사로 표현되지 않은 과거의 이야기들을 추상적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해석의 관점으로 본다면 <퍼펙트 데이즈>는 단순한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다룬 힐링물이 아닌, 한 인간 심리의 복잡성과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더 깊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복잡성은 영화의 클라이맥스에서 히라야마의 마지막 표정 연기로 직결되는데, 시종일관 무표정이었던 그가 처음엔 웃다가, 후엔 울며 묘한 표정들이 교차하는 복잡 미묘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 영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명장면이다. 의식을 유지하던 히라야마가 자신의 안전망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아름다움, 감동, 슬픔)을 납득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의 이면에는 자신의 세상을 지키려는 것보다 치유의 시간을 마치고 훨훨 떠나가려는 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현재 순간을 직시하고 감사하는 삶의 태도를 견지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히라야마의 알상들을 곱씹다 보면 같아 보여도 전혀 다르다. 각기 다른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발생하며, 히라야마의 일상에 소소한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의 알상도 마찬가지다. 완벽한 계획을 통해 성공적인 하루를 꿈꾸지만, 우리의 일생은 전적으로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는다.
<퍼펙트 데이즈>는 그 완벽함을 재정의한다. 완벽한 날이란 무결점의 날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건들까지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날, 즉 코모레비(木漏れ日)를 말한다.
평생 같게 지켜낼 수는 없다. 춤추는 노인이 장소를 옮겨 춤을 추고, 원래 있던 건물이 사라진 것도 몰랐던 것처럼 모든 만물은 변한다. 완벽하게 지켜내려고 애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흠이 있더라도 완벽한 날들, 좋든 싫든 그날들이 모여 '퍼펙트 데이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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