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인] 유도 세계선수권 2연패 도전 김민종한국 유도 남자 최중량급 최초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민종이 지난 17일 경기도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유도장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용인=최현규 기자
2024 파리올림픽 유도 남자 100㎏ 이상급 준결승전.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1분 남짓. 김민종(25·양평군청)이 치열한 신경전 끝에 업어치기 한판으로 눈앞의 거구를 번쩍 들어 올렸다. 매트에 눕혀지자마자 패배를 직감한 상대 사이토 다쓰루(일본)는 그대로 엎드린 채 고개를 묻었다. 한국 유도 남자 최중량급 사상 첫 은메달리스트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8개월이 지난 지금. 김민종은 올림픽의 여운을 털어내고 다시 뛸 준비에 여념이 없다. 지난 11일 2025 회장기 전국유도대회 겸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그는 사실상 2025 국가대표 선발을 확정하며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6월 국제유도연맹(IJF)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연패에 도전하는 김민종을 17일 경기도 용인대학교 무도대학 유도장에서 만났다. 그는 “진천 선수촌에서 이렇게 오래 나와 있는 게 처음”이라며 “올림픽이 끝나고 8개월 만에 시합을 뛰었는데 큰 무대를 한 번 경험하고 나니까 그래도 아직 감이 조금 남아 있는 것 같다”며 운을 뗐다.
우물 안 개구리
용인=최현규 기자
183㎝, 130㎏. 한국인치고는 건장한 체격이지만 사실 김민종은 동 체급 국제 표준보다는 작은 편에 속한다. 지난 파리올림픽 무대에서 마주한 상대들도 키와 몸무게에서 김민종보다 한참 컸다. 김민종은 “경기 전에 계체량을 할 때 워낙 좁은 공간에서 붙어서 대기하곤 하는데 다른 선수들의 등만 보고 서 있을 정도여서 ‘이게 맞나?’ 싶을 때가 많다”며 “기는 죽지 않지만 일단 압도되는 게 당연하다”고 웃어 보였다.
물론 체격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건 김민종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11세에 유도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도자들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고3 때였던 2018년 바쿠 세계선수권에서 처음 시니어 무대를 밟았는데, 그때 상대가 말도 안 되게 컸어요. 손을 저를 향해 뻗었는데 앞이 안 보일 만큼 손이 큰 거예요. 은사님들이 그간 해줬던 말들이 어떤 건지 그때 처음 알았죠.”
체격에서의 약점은 스피드와 기술로 채웠다. 주특기 업어치기, 빗당겨치기 등 헤비급 선수들이 많이 구사하지 않는 경량급 기술들을 연마하면서 자신의 강점을 키워왔다. 김민종은 “체격 차이를 처음으로 느낀 그 날 경기에서도 결과적으로 이기긴 했다”며 “기술만 잘 익혀 놓으면 작은 것도 그렇게 불리한 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다”고 말했다.
도쿄에서 파리까지… 거듭된 성장
김민종은 선수 생활 가장 큰 성장의 순간으로 생애 첫 올림픽이었던 2020 도쿄올림픽을 꼽았다. 당시 16강에서 메달을 향한 여정을 마쳐야 했지만 이때 새긴 가르침이 지금의 김민종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일단 정신력 싸움에서 이기는 법을 배웠다. 판정시비 등의 변수가 잦고 순식간에 승부가 갈리는 유도 종목 특성상 정신력을 가다듬는 게 필수였다.
김민종은 “도쿄 때는 올림픽은 처음이다 보니까 경기 내용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흥분했던 것 같다”며 “상대를 잡아먹으면 이긴다는 생각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제 페이스를 잃어버렸다”고 짚었다.
3년 뒤 파리에선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경기장에 나섰다. 김민종은 “멘털적인 성장이 가장 컸다”며 “큰 무대에 대한 압박감부터 털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마인드 컨트롤이 되자 예상했던 대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데 많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파리올림픽 결승전에서 헤비급 ‘전설’ 테디 리네르(36·프랑스)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김민종은 “아무래도 프랑스 홈이다 보니 그 선수와 맞붙게 됐을 때는 분명 응원이 더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며 “시합장 분위기나 관객들의 압박을 견디는 게 관건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리네르와 지도 하나씩을 주고받으며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김민종은 결국 경기 시간 16초를 남겨두고 허리후리기를 허용해 무릎을 꿇었다. 패배 직후 김민종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메달 색을 아직 덜 칠한 것 같다”며 눈물 지었다. 멀리서 응원하러 온 가족들을 떠올린 까닭도 있었지만 남다른 승부욕 때문이기도 했다.김민종이 프랑스 파리 샹 드 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유도 혼성 단체전 우즈베키스탄과 패자부활전에서 상대를 제압한 후 포효하고 있다. 파리=윤웅 기자
리네르를 상대로 다음을 기약하며 필승 의지를 다졌던 그 마음은 아직도 그대로다. 리네르를 넘어서는 게 가능할지 묻자, 김민종은 인터뷰 중 어느 때보다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조건 가능하게 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한 뒤, “당시 결승전에서도 리네르가 유독 긴장하고 왜소해 보여서 이길 수 있겠다 싶었다. 만약 다음에도 같은 무대에서 만나면 그땐 꼭 이기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올림픽에선 승부욕과 함께 남다른 동료애도 확인했다. 김민종은 당시를 떠올리며 개인전 은메달보다도 혼성 단체전 동메달의 기쁨이 더 컸다고 밝혔다. 리네르와 결승전에서 무릎을 다치고도 단체전에서 부상 투혼을 불사했던 건 오로지 동료들의 목에 메달을 걸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유도 혼성 단체전 독일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골든 스코어에 접어든 후 김민종이 대표팀 동료들과 룰렛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파리=윤웅 기자
“지금도 단체전 경기만 보면 잠이 안 와요. 같이 죽을 만큼 힘든 훈련을 버텨서 그런지 그 무대에 섰다는 것만으로도 전우애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대표팀에선 ‘막내 라인’인데 동료들이 믿어줘서 더 부담 없이 경기했던 거 같아요.”
단순함이 무기… “스트레스 없어요”
김민종의 최종 꿈은 ‘그랜드 슬램(메이저 대회 석권)’이다. 한국 남자 유도 최중량급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도 그 꿈을 향한 하나의 목표일 뿐이다. 김민종은 “세계선수권은 한 번 우승했으니 이제 나머지 대회에서도 정상에 서고 싶다”며 “그 꿈을 이루고 나서 은퇴하고 싶은데, 어쩌면 그때쯤엔 또 다른 목표가 생길 것도 같다”며 웃었다.
꿈을 위한 여정에 걸림돌은 없을까. 태극마크의 부담도, 일상처럼 따라다니는 부상도, 쟁쟁한 경쟁자들도 김민종의 큰 꿈 앞에선 사소한 것에 불과하다. 스트레스나 고민거리가 생기는 일도 잘 없다. 이번 선발전을 앞두고도 발목 부상을 얻었지만 그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김민종은 “어릴 때부터 정육점을 하는 집에서 고기를 많이 먹고 자라서 그런지 근육 회복력이 좋다. 선수 생활 중 수술이 필요한 만큼 크게 다쳐본 적도 없다”며 “선수촌의 치료 시스템이 워낙 잘 돼 있어서 금방 또 좋아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이어 “지금은 오랜만에 입촌하는 만큼 하루하루 반복되는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라고 전했다.
그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 역시 매우 단순하다. 좌우명을 묻자 김민종은 “그냥 하자. JUST DO”라고 대번에 답했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도 그렇게 단순화해서 생각하면서 성적이 따라왔던 것 같다”며 “완벽한 것도 좋지만 완벽 자체에 대한 부담감이 생길 때도 있다. 일단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뭐든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