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오만에 1-1 무승부, 전략·전술 없는 졸전... 예선 통과해도 그 다음이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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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7차전 대한민국과 오만의 경기에서 1대1로 비긴 대표팀 선수들이 허탈해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지난 2024년 6월, 말레이시아 아시아축구연맹(AFC) 본부에서 진행된 2026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조 추첨 당시, 한국 축구는 역대급 '행운의 조'에 편성됐다며 환호했다. 한국은 이라크, 요르단, 오만, 팔레스타인, 쿠웨이트와 함께 B조에 편성됐다.
이는 한국 입장에서는 의심할 나위없는 최선의 대진표였다. 한국은 지난 2차 예선에서 '임시감독(김도훈-황선홍)' 체제에서도 조 1위를 지켜내며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포인트에서 호주를 따돌리고 아시아 톱3 자리를 지켜내 3차 예선 톱시드를 배정받았다. 이로써 한국은 3차 예선에서 같은 톱시드(1포트)에 포함돼 가장 부담스러운 강적이었던 일본과 이란을 모두 피하게 됐다.
또한 조 추첨에서는 각 포트별로 가장 부담스럽다고 평가되던 상대들을 신기할 정도로 모조리 피해갔다. 2포트의 호주와 카타르, 3포트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우즈베키스탄 등 아시아 전통의 강호들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하위 포트에서도 파울루 벤투 전 한국 감독이 이끄는 4포트의 UAE를 비롯해, 5포트의 중국, 6포트의 북한까지, 전력 차를 떠나 특수한 관계와 원정 텃세 등으로 까다롭다는 우려를 받던 팀들을 모두 피했다.
더구나 B조에서 한국 외에는 월드컵 본선 경험을 지닌 팀들이 전무했다. 조 추첨 당시 기준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한국은 22위를 기록하며 B조 6개국 중 가장 높았고 나머지는 모두 50위권 밖이었다.
물론 이라크와 요르단도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고, 한국을 제외한 B조 상대팀들이 모두 중동국가라는 부담은 있었지만, 설사 이들이 아닌 다른 팀이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 수월한 조 편성이 나오기는 어려웠다. 축구 전문가들과 외신들도 대부분 B조에서는 한국이 무난하게 조 1위로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할 정도였다.
'행운의 조'인데... 경기 왜 이러지
3차 예선이 어느덧 중반을 넘긴 2025년 3월, 한국축구의 현실은 정작 '꿀조'의 이점을 살리지 못한채 아슬아슬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20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6북FIFA 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B조 7차전에서 오만과 졸전 끝에 1-1 무승부에 그쳤다.
한국은 4승 3무(승점 15)로 일단 무패행진과 B조 선두는 지켰지만, 2위 요르단과 3위 이라크(3승 3무 1패, 승점 12)에 불과 3점차로 쫓기게 됐다. 25일 요르단과의 홈 8차전에서 승리하면 월드컵 본선행을 조기에 확정할수 있지만, 만일 패하기라도 하면 자칫 3위까지 밀려날수도 있다.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의 전술과 경기 운영을 둘러싼 책임론이 높다. 홍 감독은 지난해 7월 K리그 울산 HD 감독을 지휘하다가 대한축구협회의 러브콜을 받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대표팀을 이끈 이후 10년 만의 귀환이었다.
비록 대표팀 선임과정을 둘러싼 잡음은 있었지만, 최소한 월드컵 예선은 무난히 통과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손흥민·김민재·황인범·이재성·황희찬 등 유럽파 선수들이 주축이 된 대표팀의 전력과 이름값은 역대 최고수준으로 꼽힌데다, 3차예선에서 최상의 대진운까지 선물받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출범 반 년을 넘겼음에도 홍명보호의 행보는 불안하기만 하다. 지난해 9월 5일 열린 홍명보호의 데뷔전이자 3차예선 1차전인 팔레스타인전에서 0-0 무득점 무승부에 그치며 첫 경기부터 불안하게 출발했다. 이후 오만전부터 요르단-이라크-쿠웨이트를 상대로 4연승을 달리며 정상궤도로 진입하는듯 했으나, 지난해 11월 열린 팔레스타인과의 원정 6차전, 이번 오만전까지 2연속 1-1 무승부에 그치며 다시 주춤했다.
7경기 무패행진이라는 성적이 겉보기에는 준수해 보이지만, 전력상 한국보다 약팀들을 상대로 절반 가까이 무승부를 기록했다는 것은, 그리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이 승점을 내준 팔레스타인의 FIFA 랭킹 101위, 오만은 80위에 불과해 B조에서도 최약체로 꼽히는 팀들이었다.
한국은 7경기에서 13골을 넣었지만 실점도 무려 6골이나 허용했고 클린시트는 단 두 번 뿐이었다. 승리한 경기도 상대를 압도했다기보다는, 고전하다가 경기 막판에 선수 개인의 활약으로 흐름을 뒤집고 신승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김민재 부재보다 황인범 빠진 중원 공백 더 두드러져
오만전은 홍명보 감독의 고질적인 약점들이 또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난 경기였다. 사실 한국은 이번 A매치 2연전을 앞두고 내부적으로 상황이 좋지 못했다. 수비진의 핵심인 센터백 김민재가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낙마했고, 중원을 책임지던 황인범도 소집은 됐지만 몸 상태가 좋지않아 오만전에 나서지 못했다. 이강인과 백승호는 오만전 경기도중 부상을 당하며 교체됐다. 이밖에 손흥민·황희찬 같은 유럽파 선수들 다수가 혹사와 부상 후유증 등으로 컨디션이 썩 좋지 못했다.
그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감독의 위기관리와 대처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어느 팀이건 주축 선수가 부진하거나 결장하면 팀 전력이 흔들리는 것은 마찬가지다. 축구에서 항상 모든 선수들을 최상의 전력으로 유지하고 경기에 임할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유능한 감독들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불리한 조건에서도 어떻게든 대안을 만들어낸다.
홍명보 감독은 이번에도 베스트 멤버들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을 때 전략적-전술적 대안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오만전만 놓고 보면 김민재의 부재보다 황인범이 빠진 중원의 공백이 더 두드러졌다. 한국은 중원에서의 볼 배급과 공격 전개에 답답한 모습을 보였고, 이는 주민규-오세훈 등 최전방 공격수들이 오만의 밀집수비로 고립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황희찬의 전반 선제골도 교체투입된 이강인이 개인 기량으로 만들어낸 킬패스 덕분이었다. 정작 한국은 선제골이 터지기전까지는 단 1차례의 슈팅도 시도하지 못할 만큼 준비한 대로 경기를 풀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이 불안한 리드를 이어가던 후반 중반에는, 오만이 스피드가 좋은 공격수들을 투입하며 공격을 강화하는데도 이에 대한 발빠른 대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홍 감독은 선수단을 28명이나 대거 차출하고도 포지션이 겹치는 2선 자원만 무려 9명이나 뽑았다. 중앙 미드필드 자원이 부족한 비효율적인 스쿼드 탓에 부상당한 황인범과 백승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카드가 부족했다. 정작 공격강화를 위해 투입한 배준호·오현규·양현준 등은 교체 시점도 늦었고 결과적으로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홍명보 감독은 2014년 대표팀 1기 시절에도 믿었던 플랜A와 몇몇 주축 선수들이 부진하면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약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바 있다. 당시 홍 감독은 '의리축구'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자신이 지도했던 런던올림픽 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중용했으나, 브라질월드컵 당시 박주영·이청용·기성용·구자철 등 홍 감독이 신뢰했던 유럽파 선수들 다수가 경기력 저하를 드러내며 부진하자 졸전 끝에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피하지 못했다.
이제 월드컵 본선을 걱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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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7차전 대한민국과 오만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 연합뉴스 |
지금의 2기가 어쩌면 1기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나마 당시는 세계 강호들을 상대해야 하는 월드컵 본선이었다면, 이번에는 아시아 예선이라는 것이다. 홍명보호가 무승부에 그친 팔레스타인, 오만은 아시아에서 결코 강호라고 부를 수 없는 팀들이다. 지난 3번의 무승부에서 홍명보호는 대부분 단조로운 U자 빌드업과 유럽파 선수들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며, 아시아권에서조차 공격전개 능력에서 답답함을 드러냈다. 전임자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경질될 수밖에 없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러한 '무전술'이었다.
더구나 홍명보 감독은 오만전을 앞두고 인터뷰에서 김민재의 부상을 둘러싸고 소속팀 바이에른 뮌헨을 탓하는 발언을 했다가 소모적인 논란만 자초하고 말았다. 김민재에 대한 뮌헨의 '혹사와 선수보호 소홀' 문제를 비판했던 홍 감독은 독일 언론으로부터 '내로남불'이라는 반박을 당했다. 정작 본인은 부상에서 갓 회복해 몸 상태가 좋지 않은 황인범을 무리하게 차출해 네덜란드 언론으로부터도 저격을 당하는 가하면, 이강인과 백승호까지 이번 A매치에서 연이어 부상을 당하며 이들의 소속팀에게 원성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현재 한국축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홍명보호가 예선을 통과할수 있을까'가 아니라 '월드컵 본선에서 경쟁력이 있을까'라는 의구심이다. 이번 북중미 대회부터는 월드컵 아시아 본선 티켓이 8.5장으로 늘어났다. 한국은 설사 이번 3차예선에서 월드컵 직행 티켓이 주어지는 상위 2위 이내에 들지 못해도 최소한 4위 이내에만 들면 '패자부활전'격인 4차 예선(각 조 1위가 월드컵 본선행), 대륙간 플레이오프(PO)까지 무려 두 번의 기회가 더 남아있다. 오만전 무승부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한국이 4위 이하로 밀려나 월드컵에 아예 못나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국축구의 위상은 이제 월드컵 진출에만 만족하는 차원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해 '본선에서의 경쟁력'으로 평가받아야 하는 팀이다. 아무리 일부 핵심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빠졌다고는 해도, 아시아권에서도 이렇게 플랜B 없이 졸전을 거듭한다면, 한국보다 전력상 강호들이 즐비한 월드컵 본선에서는 결코 선전하기 어렵다. 현재 홍명보호의 주축인 유럽파 선수들 중 언제든 내년 본선 시점에서 노쇠화와 부상으로 인한 폼 하락을 겪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홍명보 감독 체제에서 부침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역시 자국 감독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이끄는 라이벌 일본은 C조에서 가장 먼저 북중미월드컵 본선행에 성공하면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일본은 20일 바레인을 홈에서 2-0으로 제압하고 6승 1무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전 세계에서 북중미월드컵 진출권을 가장 먼저 따낸 국가이기도 하다.
홍명보 감독은 아직 지난해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절차를 둘러싼 공정성과 특혜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상태다. 축구 팬들의 시선이 곱지 않은 가운데 성적과 내용으로 비판 여론을 불식시켜야 했지만, 경기를 거듭할수록 오히려 의구심만 커져가고 있다. 이대로라면 월드컵 진출에는 성공한다 할지라도, 홍명보 감독 체제를 과연 본선까지 유지해야 하는지 문제 제기가 나올 가능성도 크다.
요르단전을 비롯한 남은 예선 3경기에서 홍 감독은 과연 여론의 부정적인 평가를 반전시킬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