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전세계 정부나 기업을 막론하고 인공지능(AI) 전략이 무거운 숙제 아닌 곳이 없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들은 AI 사업 전략이 성패를 가른다. 미국과 중국은 하루가 다르게 엎치락 뒷치락 AI패권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 정부도 유럽연합(EU)에 이어 세계 두번째로 '인공지능(AI) 기본법'을 제정하고 'AI 3대 강국'에 도전 채비를 갖췄다. 내년 초 AI기본법 시행을 위해 주요 하위 규정 정비에도 착수했다. 그 중에는 AI의 핵심인 학습용 데이터를 제공하고 관리하는 체계도 포함됐다. 민간에서 활용할 AI 학습용 데이터를 유통·활용까지 원스톱으로 지원할 통합 제공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정부는 'AI허브'를 통해 833종의 AI 학습용 데이터를 구축해 제공 중인데, 단순 학습 데이터 제공에 그치지 않고 민간이 필요로 하는 데이터 수요를 찾아내고, 활용의 편리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AI산업 발전을 위해 하드웨어 지원에 집중돼 있던 정책의 시각이 데이터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반갑다.
AI 강국을 위해 AI반도체 개발만 지원하는 것으로는 반쪽짜리다. 안심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AI 산업이 성장한다. 2025.2.19/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사진=뉴스1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싶다. AI가 사람의 말을 정확히 이해하고, 영상을 분석하고, 자율주행차를 운전하려면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패턴을 담은 영상, 문서, 음성 같은 비정형 데이터를 대량으로 학습해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정형 데이터들이 개인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AI 개발에 활용하기 쉽지 않은게 문제다. 사실 정부도 그동안 손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을 개정해 가명처리된 비정형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 2021년부터는 마이데이터 사업을 도입해 금융, 의료, 통신 등 다양한 데이터를 개인이 직접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공공데이터도 대거 개방했다. 그러나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여전히 '빛좋은 개살구'라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비정형 데이터의 기본 속성이 완전한 가명처리가 어렵고, 다른 기관의 데이터를 결합하기 위한 승인절차가 까다로워 사실상 활용을 포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금융·의료 등 민감한 분야의 비정형 데이터는 여전히 '사용 불가'다.
AI 강국을 위해 대대적으로 제도를 손보는 김에 데이터 정책의 새 판을 짰으면 한다. 그간 우리나라의 데이터 정책은 '보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개인정보가 유출돼 국민들이 금전적, 시간적 피해를 입지 않도록 개인정보를 봉쇄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었던 게 사실이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디지털 정보는 '단순 보호'가 아닌 '안전한 활용'에 정책의 핵심을 둬야 한다"고 조언해 왔다. 하물며 데이터를 먹고 자라는 AI시대에는 더더욱 적극적 활용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올 1월 전세계를 놀라게 한 '딥시크' 뒤에는 사실 중국 정부의 데이터 개방 정책이 있다. 중국은 개인정보보호법을 도입하면서도 AI 연구와 산업 발전을 위해 데이터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 의료, 교통 등 다양한 산업 데이터를 정부가 중개하고, 기업이 연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데이터가 있으니 AI 모델이 고도화되고, 새로운 서비스가 계속 탄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데이터 정책의 초점을 새로 짰으면 한다. 가명정보 활용 기준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연구·산업 목적의 데이터 활용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실질적으로 기업이 안심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공공 데이터도 과감하게 개방해 의료, 금융, 교통 등 다양한 산업 데이터를 가명 처리한 후 AI 연구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데이터 이동과 결합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 또 데이터 활용에 궁금한 점이나 어려운 점을 하나의 규제기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원스톱 처리 체계도 갖춰야 한다. 금융, 의료, 건설 등 소관부처마다 쫓아다니며 각기 다른 기준을 맞추라고 책임을 넘기면 안된다. AI 강국을 위해 AI반도체 개발만 지원하는 것으로는 반쪽짜리다. 안심하고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어야 AI 산업이 성장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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