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관 회장
“연구성과 활성화를 위해 범부처 차원의 중장기 실행 로드맵을 만들어야 합니다. 또 이를 법제화하고 예산 배분과 평가도 통합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허재관 연구개발사업화정책연구회(이하 연구회) 회장은 성과가 저조한 국내 연구성과 확산을 위해 범정부 차원의 정책개발과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연구회는 구체적 정책과 법 개정 등에 대한 의견을 정부와 국회에 지속 건의할 방침이다.
연구성과 확산 분야 최고 전문가인 허 회장에게 기술사업화 혁신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우리나라에서 연구성과 활용 성공 사례를 꼽는다면.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1년 카이스트 교수가 학내에서 창업한 업체다. 이후 카이스트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하면서 학교에 지분 20%를 기부한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최근에 삼성전자에 인수합병 됐다. 최근 주가는 액면가의 640배까지 올랐다.
기술이전이 아니라 창업 후 코스닥 상장을 하고 인수합병을 통해 대박이 난 것이다. 만일 삼성전자가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초기 창업 단계, 아니 그 이전 연구개발 단계부터 지원·협력 했다면 이보다 더 빨리 로봇 기술로 세계를 평정했을 것이다.
-대기업 지원을 받아 성장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부작용은 없나.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 탈취나 경영권과 관련된 문제라고 보면 된다. 강행법을 만들어 그런 불공정행위를 막아야 한다.
한국의 연구개발 성과확산은 딥테크 스타트업 전략으로 가야 하는데 딥테크 스타트업은 출구까지 15년 이상의 투자와 기술혁신이 필요하다. 또 대기업과의 협력이 필수다. 그러나 대기업의 기술 도용, 경영권 장악 시도 등을 제대로 방지하지 못하면 딥테크 스타트업이 대기업과 협력하지 않을 것이고 협력한다고 해도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서 대기업에 흡수된다. 이와 관련 일본은 2년 전 '스타트업과 사업회사(대기업) 간 불공정거래 가이드라인(공정거래법의 하부 해석 지침)'을 제정, 이 같은 문제에 대처하고 있다.
-대기업이 기술을 도입해 미래 유망사업을 직접 키우면 되지 않나.
△대기업은 혁신의 과정과 경로가 길고 복잡해 추진 과정에서 중단된 경우가 많다. 진행되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때문에 GAFAM, 테슬라, 엔비디아 등과 같은 혁신기업과 국제적 경쟁을 하기도 어렵다.
대기업 집합체인 일본 경단련은 스스로 혁신의 한계를 느껴 스타트업과 협력해 생존할 수 있는 시스템과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이를 수용한 일본 정부는 '스타트업육성 5개년 계획(2023~2027년)'을 세웠고 이를 토대로 대기업은 스타트업과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스타트업 육성에 대기업의 협력과 지원을 유도하는 정책개발이 필요하다.
-확대재생산의 선순환 사이클 구축이란 무슨 의미인가.
△연구개발에서 연구성과의 활용·사업화까지는 보통 4단계를 거친다. 연구개발, 법적 권리화(특허 등) 및 노하우화, 보호 및 관리(유지), 활용·이용 및 사업화다. 이 가운데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어렵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가 성공해야 수익이 생기고 그 수익이 다시 첫 번째 단계에 투입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이클이 확대 재생산되면 선순환 구도가 정착된다.
선순환 사이클은 단순히 자금 지원이나 관리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는 각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와 과제를 해결할 정책을 개발해 선순환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힘써야 한다.
-최근 연구성과 확산, 기술사업화 등에 관해 관련 부처의 관심이 큰데, 성과는 어떤가.
△부처마다 규모는 다르지만 국가 R&D 자금을 사용해 대학, 공공연구소, 민간기업(특히 중소기업) 등에 연구개발 작업을 지원한다. 전체 국가 R&D 자금은 약 30조원이 넘는다. 또 각 부처마다 산하에 000기술진흥원 등의 명칭을 가진 조직을 두고 연구성과 보급·사용 및 확산을 도모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과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미흡해 보인다.
제도와 법규에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해결하지 못하니 성과가 한정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개발과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한 구체적 정책과 법 개정 등에 대해 연구회에서 지속적으로 정부와 국회에 건의하고자 한다.
-연구성과 확산을 위한 범부처 차원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부처마다 제각각의 하위전략으로 비효율적 행정을 수행하기보다 범부처 차원의 목표·비전·중장기 전략과 실행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또 이를 제도·법제화하고 예산 배분과 평가도 통합화해야 한다.
그러면 어느 부처가 주도적으로 범정부적 전략과 정책을 이끌어야 할까. △국가 과학기술정책을 수립, 실시, 평가, 조정하는 부서 △국가연구개발비를 조정 배분하고 그 성과를 평가 관리하는 부서 △딥테크 산실인 대학, 공공연구소 등을 관리하는 부서 △선순환 사이클 구축을 위하여 연구개발~활용의 전 단계를 연결해 관리·조정할 수 있는 부서 등을 감안해 범부처 정책 책임자들(차관보급)로 구성된 정책조정협의회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윤대원 기자 yun197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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