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헤럴드DB]
[헤럴드경제=최은지 기자] 서울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신생아 7명과 직원 2명이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에 집단으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RSV 유행 계절에 초기 확진자 발생 당시 감염을 막을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신생아 중 절반이 감염됐다는 지적이다.
당국은 해당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신생아와 산모들을 전원 퇴원 조치하는 한편, 산후조리원 측의 대응과 관련해 조사에 착수했다.
19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월 말부터 3월 중순까지 서울 양천구 소재 A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신생아들이 집단으로 RSV에 감염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헤럴드경제와의 통화에서 “전수검사를 한 결과 현재까지 총 7명의 신생아와 산후조리원 직원 2명이 RSV에 감염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부 영아는 상태가 위중해 3차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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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영아가 지난 8일~12일 사이에 RSV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산후조리원은 13일에서야 보건당국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에 감염된 영아들이 산후조리원을 퇴소한 이후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A 산후조리원 측은 감염 원인이 불분명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건당국이 신고 접수 후 곧바로 역학조사에 착수하고, 16일 전수검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추가 확진자가 확인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을 종합할 때 당국은 확진자 모두 A 산후조리원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시 관계자는 “보건당국은 신고받고 바로 역학조사에 착수, 시와 합동으로 역학조사를 했다”며 “전수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17일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신생아와 산모를 전원 퇴실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RSV는 일반적으로 감기와 유사한 증상을 나타내는 급성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인 만큼, 초기 증상이 발현됐을 때 감기로 오인하기 쉽다.
신생아의 경우 보편적인 감기 증상 대신 보채거나 식욕부진 등의 증상으로도 나타날 수 있어 보다 면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RSV는 국내에서 1세 미만 영아의 세기관지염과 폐렴의 가장 흔한 원인으로, 생후 6개월 미만 영아는 RSV 고위험군에 속한다.
특히 산후조리원에 입소한 경우 산모와 영아가 24시간 함께 있지 못하는 환경이기 때문에 조리원의 초기 대처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경미한 증상으로 시작하지만, 면역력에 취약하고 호흡기관 발달이 미성숙한 영유아들은 증상이 악화될 경우 모세기관지염이나 폐렴 등 폐 감염 징후를 보여 입원치료를 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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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산후조리원을 이용한 확진 영아들 대부분이 산후조리원에서부터 감기와 비슷한 증상이 보였는데, 이에 대해 조리원 측이 소극적으로 대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신생아들은 산후조리원 퇴소 후 감기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호흡 곤란 등 증상이 심각해진 후에야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산후조리원에서 첫 번째 RSV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곧바로 당국에 신고를 했다면 감염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고, 확진된 영아들도 빠른 치료를 통해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A 산후조리원은 신생아 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당국이 조사에 착수했을 당시 신생아 13명과 산모 12명이 입소해 있던 상황이었다.
모자보건법 15조의4에 따르면 산후조리업자는 감염이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소독 등 환경 관리, 임산부·영유아의 건강관리, 종사자·방문객의 위생관리를 준수해야 한다.
또한 임산부나 영유아에게 감염 또는 질병이 의심되거나 발생한 경우 또는 화재·누전 등의 안전사고로 인한 인적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즉시 의료기관으로 이송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아울러 감염 또는 질병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면 확산 방지를 위해 소독 및 격리 등 조치를 취하고, 이러한 내용을 바로 산후조리원의 소재지를 관할하는 보건소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정부는 역학조사 결과가 나오면 A 산후조리원의 대응의 적절성을 따진 후 처분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A 산후조리원이 감염을 인지한 순간부터의 조치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며 “역학조사 후 행정처분에 대해서는 관할 보건소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인구비상대책회의에 참석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
RSV는 모든 연령대에서 감염될 수 있지만 2세 이전의 영유아에서 발병률이 특히 높다. 우리나라는 겨울철인 10월~3월이 RSV 유행 시즌으로 본다.
RSV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다만 RSV 예방 항체주사(베이포투스, 성분명 니르세비맙)가 지난 2월부터 국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베이포투스가 국가예방접종사업(NIP)에 적용되지 않아 현재는 50~80만원의 자비 부담을 해야 하고, 일선 병원에 직접 예약해야만 접종이 가능하다.
정부가 저출산 대응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할 것을 주문하면서 정작 영유아에서 발병률이 높은 감염병에 대한 지원은 손 놓고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국가예방접종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해 영유아들에게 무료로 베이포투스 접종을 지원하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및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인구 비상대책회의에서 “출산율 반등의 모멘텀이 지속하도록 저출생 대응에 보다 역량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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